올해 들어 잇달아 수주 뱃고동을 울리며 주가 상승 기대감을 키우던 조선주가 고전하고 있다. 철강 제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함에 따라 선박용 후판(두께 6㎜ 이상의 철판) 가격도 급등하면서 2분기 들어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선가 인상에 따른 실적 개선이 주가를 높일 수 있는 만큼 '저가매수' 전략이 유효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3달 가까이 부진하는 주가…고점 대비 20% 하락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조선3사(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주가가 3개월 가까이 약세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주 주가가 연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지난 5월 초와 비교하면 20% 가까이 하락한 모양새다.
지난달 30일 종가 기준 한국조선해양 주가는 13만50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10만8500원) 대비로는 20.27%(2만2000원) 상승한 수치지만 지난 5월 11일 종가(16만500원)보다는 18.69%(3만원) 낮은 수준이다. 추세상으로도 연초부터 5월 초까지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5월 초를 고점으로 꾸준히 하락하는 모양새다.
대우조선해양의 주가 추이도 한국조선해양과 유사하다. 지난달 30일 종가는 3만2500원으로 지난해 말(2만7400원)보다는 높지만 5월 11일 종가(4만300원) 대비로는 19.35%(7800원) 하락한 상태다.
무상감자로 인해 7월 23일부터 8월 9일까지 거래가 정지된 삼성중공업 주가는 지난해 말 대비로도 약세다. 지난달 30일 종가 기준 삼성중공업의 주가는 6540원으로 지난 3월 31일 종가 7770원은 물론 지난해 말(7040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주가 발목 잡은 악재는 후판 가격 상승
조선주 주가가 부진한 배경에는 원자재가격 인상에 따른 실적 악화 우려가 자리한다. 특히 선박 건조에 필요한 주요 철강재인 후판 가격이 상승하면서 조선3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후판 가격은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국내 후판 유통가는 톤당 13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후판 유통가가 톤당 72만원이었음을 고려하면 가격이 7개월 새 80.55%나 상승한 셈이다.
조선3사가 대량 발주를 통해 유통가 대비 낮은 가격에 후판을 조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후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은 조선3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철강업계가 하반기 후판가격 협상 자리에서 조선업계에 후판 공급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후판 가격 상승은 후판의 원자재가 되는 철광석 가격 상승에서 기인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톤당 126달러였던 철광석 국내수입 평균가격은 상반기 들어 182달러로 44.44% 상승했다. 중국 다롄상품거래소(DCE)에서 거래되는 철광석 가격도 지난해 말 톤당 986.5위안에서 지난달 29일에는 톤당 1118위안으로 13.32% 올랐다.
▲2분기 '빨간불' 켜진 조선3사 실적
후판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손실은 이미 2분기 실적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이미 영업손실이 확정됐고 대우조선해양도 영업손실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후판 가격 급등 예상에 따른 대규모 공사손실충당금 설정이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은 2분기 연결기준 3조797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897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컨센서스(시장전망치)가 -1307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어닝쇼크'다. 또 지난 1분기 67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한 점을 감안하면 한 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삼성중공업도 1조7155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실적은 437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컨센서스(1377억원)를 상회하는 손실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영업이익 적자가 유력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2분기 실적은 매출 1조4069억원, 영업손실 583억원이 예상된다.
▲수주는 계속 좋은데…실적 반영 언제쯤
조선3사가 올해 들어 잇달아 수주 뱃고동을 울리며 기대감을 높였던 점을 감안하면 조선주의 주가 약세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절반 가까이를 수주했다. 총 2452만CGT(표준선환산톤수)의 44%에 달하는 1088만CGT를 수주하면서다. 수주 금액은 267억 달러(약 30조6650억원)로 전체 발주액의 49% 규모다.
수주를 알리는 뱃고동은 7월 들어서도 계속됐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1일 여객선 등 10척을 8530억원에 수주한 것을 시작으로 △LNG운반선 1척(2155억원) △LNG선 4척(9112억원) △LNG운반선 2척(4571억원) △LNG운반선 7척(1조5614억원) 등 7월에만 3조9982억원어치를 신규 수주했다. 올해 수주 목표치(149억 달러)도 이미 초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달 5일에는 LNG운반선 3척을 6545억원에, 27일에는 LNG운반선 1척을 2236억원에 수주했다고 밝혔고,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4일 7253억원 규모 고정식 원유생산설비 수주를 알렸다. 두 조선사도 수주목표를 70~80%가량 달성한 상황이어서 연간 수주 목표치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올해 풍부한 수주가 실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2년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조선업계에는 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이른바 '헤비테일' 방식의 건조계약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 건조에 2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3사의 실적 개선은 빨라도 내년 말부터나 시작되는 셈이다.
▲주가 떨어진 지금, 저가매수 기회일까
일각에서는 주가가 떨어진 지금을 오히려 저가매수 기회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전망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조선주가 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클락슨리서치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125포인트였던 신조선가 지수는 7월 말 기준 142포인트로 13.6% 증가했다. 특히 중고선가 지수는 93포인트에서 156포인트로 67.74%나 급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주들은 비싼 돈 주고 중고선을 사기보다는 조선사에 의뢰해 새 선박을 인도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경제가 정상화 조짐을 보이면서 해상운임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선가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조선업 업황에 대한 의심이 강해지는 3분기를 매수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며 "업황 주기가 긴 조선산업은 한 번 개선이 시작되면 장기간 일관된 방향을 유지한다. 최근 후판 가격 인상도 결국 선가로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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