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현직 수뇌부가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며 국정 주요 현안을 숙의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열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임 여부가 결정될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1년여 앞둔 시점이라 최고 지도부 인선과 관련된 사전 교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1979년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관계에 대한 정세 판단과 해법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대미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지만,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방중과 신임 주미 대사 부임 등을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밖에 민심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규제, 저출산 대책과 사교육 부담 완화, 폭우 피해 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이 이뤄질 전망이다.
◆회의 개최 정황 곳곳서 확인
중국 수뇌부는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 베이다이허에 모여 여름 휴가를 겸한 비밀 회동을 갖는다.
베이다이허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가량 떨어진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시 해안의 휴양지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여름철 최고 지도부의 지방 시찰과 7월 중앙정치국 회의가 종료된 직후 시작된다.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달 21~23일 시짱(티베트)자치구 병합 70주년을 맞아 현지 시찰에 나선 바 있다.
시 주석 외에 권력 서열 7위 이내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도 각각 구이저우성과 지린성을 시찰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한정(韓正) 상무부총리 등도 폭우·태풍 피해를 수습하고 코로나19 재확산에 대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7월을 보냈다.
이어 지난달 30일 중앙정치국 회의가 열렸다. 통상 7월의 중앙정치국 회의는 상반기 경제 운용 현황을 점검하고 하반기 대책을 수립하는 자리다.
중국은 상반기 12.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1분기 18.3%에 달했던 성장률이 2분기 들어 7.9%로 둔화된 상황이다.
이에 인민은행은 15개월 만의 지급준비율 인하로 1조 위안(약 177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 나선 바 있다.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전 세계 전염병 상황이 계속 변화하고 외부 환경도 복잡해져 국내 경기 회복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균형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한 경제 회복세에도 중국 내부의 위기감은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중앙정치국 회의 종료를 기점으로 중국 중앙·지방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이 베이다이허에 집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시 주석 등 최고 지도부의 동정 보도가 사라지는 것으로 베이다이허 회의 시작, 다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회의 종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차기 지도부 인선 논의될까
특히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올 가을로 예정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 개최 일정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
관영 신화통신은 "(중앙정치국) 회의는 다른 사항에 대해서도 검토했다"고 뭉뚱그려 표현했다. 구체적인 일정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7월 26일 열린 중앙정치국 회의 때는 같은 해 10월 18기 6중전회를 개최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앞서 2011년 7월 22일의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도 17기 6중전회 개최 일정이 확정된 바 있다.
6중전회의 경우 최고 지도자의 임기 종료 혹은 권력 교체를 1년 앞둔 시점에 진행되기 때문에 차기 지도부 인선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내년 11월 개막하는 20차 당대회를 통해 시 주석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난다.
다만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이 사라진 상태라 시 주석의 재집권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6중전회는 시 주석 외에 다음번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단과 25명의 정치국원 구성을 위한 기본 그림이 그려지는 자리다.
6중전회 전에 중국 수뇌부가 총출동하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차기 지도부 인선을 둘러싼 계파 간 물밑 교섭과 줄다리기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 정가에서는 내년 당대회 개최를 준비하는 영도소조가 꾸려졌다는 말이 돈다"며 "베이다이허 회의와 6중전회를 거치면서 차기 지도부 윤곽이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홍콩 명보도 "올해 6중전회는 가을에 열릴 게 확실하다"며 "중요한 인사의 임면안이 다뤄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내년 20차 당대회 이후 최소 5년은 시 주석의 1인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단에 새로 포함될 후계 그룹으로는 후춘화(胡春华) 국무원 부총리와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서기, 리창(李强) 상하이시 당서기 등이 거론된다.
시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딩쉐샹(丁薛祥) 중앙판공청 주임도 상무위원단 진입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장칭웨이(張慶偉) 헤이룽장성 당서기 등 다른 류링허우(六零後·1960년대 출생) 세대의 깜짝 발탁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 권력층으로 꼽히는 중앙정치국 정치국원 인사도 관심사다. 공산당 내에 정치국원에 대한 연령 제한 규정은 따로 없다.
다만 신임 정치국원은 63세 이하의 정부급(正部級·장관급) 관료나 상장(上將·대장) 계급의 군인 중 선발하는 게 관례다.
이에 따라 현재 정치국원 25명 중 최소 11명, 최대 과반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전 19차 당대회 때는 12명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미·중 관계, 내정 해법도 고심
베이다이허 회의 안건으로 오를 외교·안보 분야의 최대 현안은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든 미·중 갈등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한 뒤에도 대중 공세 수위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
첨단기술·금융 등 미국이 비교 우위를 점한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중국을 밀어내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전방위 경제 제재에 나섰을 때보다 더한 위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최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텐진을 방문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양측의 공방은 거셌다.
왕 부장은 △사회주의 전복 시도 △발전 이익 침해 △주권 훼손 및 내정 간섭을 미국이 절대 손대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마지노선으로 제시하며 강경 일변도의 발언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완전히 접은 건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는 "셔먼 부장관은 중국과 격렬하게 다퉜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최고위급의 방중이었다"며 "미·중 양국이 완전히 제 갈 길을 가는 상황에 이른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대사에 이어 친강(秦剛) 외교부 부부장이 주미 중국대사로 새로 부임한 게 미·중 관계 변화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친 대사는 "(양국 관계는) 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또한 거대한 기회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건강하고 안정된 미·중 관계는 양국 인민과 국제 사회의 공통된 기대"라고 부임 소감을 밝혔다.
시 주석 입장에서는 미국에 밀리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도, 그렇다고 미국과 강대강으로 충돌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전현직 수뇌부가 관련 사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겠지만 시 주석이 궁지에 몰리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핵심 사안은 아니지만 빅테크(대형 IT 기업) 및 사교육 규제와 재해 수습 등 다양한 내부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도 이뤄질 수 있다.
지난달 중앙정치국 회의는 하반기 정책 과제로 기업의 해외 상장 감독·관리 강화, 3자녀 출산 정책 보완, 홍수 대책 세밀화, 코로나19 방역 및 백신 접종 지속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내년 재집권을 염두에 둔 시 주석이 공산당 인기를 떨어뜨리거나 민심 동요를 초래할 수 있는 악재들을 용인할 리 없다"며 "디디추싱 사태와 같은 일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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