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벽화였고, 윤석열 후보를 비롯한 각 대선후보와 여야 주요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등시끄러웠던 그림이었지만 검은색 페인트가 그림을 집어삼킨 것과 동시에 그 많던 논란들도 사라졌다. 줄리 벽화가 검은 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것은 지난 7월 31일 저녁 무렵, 놀랍게도 줄리 벽화는 빠르게 대중들의 기억에서 삭제됐다.
사흘여가 지난 오늘(2일) 벽화가 있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중고서점 건물 벽면에는 줄리 벽화가 있었는지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색의 벽면이 낙서를 가득 담은 채 서있을 뿐이다. '쥴리의 꿈'이니 '영부인의 꿈'이니, '쥴리의 남자들'이니 하는 것은 찾아 볼 수 없고 각 년도와 함께 나열됐던 이름도 없다.
여성혐오, 인권침해, 그렇게 난리더니...
'줄리 벽화'를 두고 야권과 여성단체는 '여성혐오'라거나 '인권침해'라는 주장을 폈다. 검증의 대상은 윤석열 후보인데 왜 배우자인 김건의씨의 결혼 전 사생활이 왜 논란이 되느냐는 비판이었다. '성녀-창녀 이분법적 프레임'이 작동됐다는 지적도 날카로왔고 공직자 검증을 이유로 사생활 침해 혹은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는 부정적 시각도 공감을 얻었다. 이미 그 자체로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시각이 깔려있는 것이라는 견해도 덧붙여 졌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여성 혐오적 흑색전선이 계속되고 있다"라며 "문제의 벽화에는 '쥴리의 남자들' 리스트가 등장했다. 이런 식의 비난은 남성에게라면 절대 행해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비난에 힘을 보탰다.
강 대표는 "이런 행태가 이어지면, ‘쥴리’ 의혹이 어떤 의미 있는 검증이라는 주장 이면에 사실은 여성 혐오와 성추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검은 페인트가 칠해진 뒤 논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비난할 만한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그림을 검은색 페인트로 덮어 버린 것을 정당화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또, 줄리벽화가 정말 '혐오'가 명백했다면 설령 검은 색으로 그림을 덮어버렸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지만 더이상의 추가 문제제기도 없는 상태다.
선택적 페미니즘?
'줄리벽화' 사태를 두고 분노하는 시각 가운데에는 '여성단체들의 선택적 페미니즘'을 지적하는 견해가 있엇다. 김건희씨에 대한 비방에 '여성적 시각'으로 분노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앞선 다른 사건에서도 '여성적 시각'으로 비판하고 분노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느냐 비판이다.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었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물이 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됐던 것이 한두건이 아니었는데 왜 그 때는 침묵했었느냐는 지적에는 날이 서있다.
지난 해 조국 前장관 딸의 거주지에 남자기자들이 한밤중에 초인종을 누르며 찾아간 것이나, 휴일에 식사를 하는 정경심 교수를 스토킹하듯 촬영한 사진, 조국 前장관 딸의 근무지를 찾아가 방해하거나 시위를 벌인 사건 등이 실예이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에 대한 공박도 날카롭다. '줄리 벽화'는 그냥 선거와 정치적 사안 대한 풍자로 볼 일이지 굳이 '여성문제'로 전이시킬 사안이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식의 대응이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자행됐던 '검증' 공세를 '남성혐오'로, 이 지사 부인에 대한 '혜경궁 김씨' 공세를 또다른 '여성혐오'로 치환시키도록 부추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민진 대표는 "대선 후보가 연루된 친인척 비리를 검증하고자 한다면 '쥴리'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비리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대선후보와 관련된 비리는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되받았다. 애시당초 김씨의 남자관계보다 재산형성 과정 등에 집중했다면 애초에 이 모든 논란은 불필요했을 것이라는 반박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캠프 대변인도 같은 견해다. 이 지사 측은 “결혼 전 사생활 조롱보다는 코바나콘텐츠 후원금 모금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 정말 중요한 윤석열 검사의 아내 김 씨에 대한 검증의 칼날을 날카롭게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벽화 그린 건물주 "사업하는 사람이 그린 벽화 하나에 온 나라 들썩이는 게 웃기지 않나"
개인이 자신의 건물에 그린 그림 하나로 '명예훼손'이나 '여성 혐오'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는 반응도 있다.벽화를 그린(의뢰한) 당사자인 여정원 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벽화와 자신을 둘러싼 세관의 관심이 과도하다"며 "사업하는 사람이 그린 벽화 하나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게 웃기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다.
여씨는 2년 전 호주 멜버른으로 여행을 갔다 봤던 벽화거리에서 본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림이 완성될 쯤 재밌는 문구를 넣고 싶어 '풍자적 의미'로 '쥴리'라는 화두를 던져야겠다 싶어 그림을 의뢰하게 됐다고 밝혔다.
왜 하필 '쥴리'를 벽화의 문구로 넣었냐는 질문에 여씨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며 "윤 전 총장 부인이 직접 나서 본인은 쥴리가 아니라고 해명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쥴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표현한 것이다. 대선 주자라면 국민에게 검증받을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여씨는 벽화는 "원래 사회 고발적 성격이 강하고 세련되지 않은 것"이라며 "사회에서 떠드는 얘기들을 검증해보자는 일종의 저항이며 민중의 아우성"이라고도 밝혔다.
벽화를 두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저질 비방이자 정치 폭력이며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인격 살인"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도 여씨는 "벽화나 그라피티(낙서) 문화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여씨는 벽화 문화가 "원래 사회 고발적 성격이 강하고 세련되지 않은 것"이라며 "사회에서 막 떠드는 얘기들을 검증해보자는 일종의 저항이며 민중의 아우성이다. '쥴리를 인격 살인한다'는 최 전 원장에게 "쥴리가 누구라고 확신하길래 인격 살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나"라고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관련 문구를 지운 데에 대해서는 "논란이 된 문구는 지웠고 그림까지 이래라저래라할 순 없다. 벽화가 화제가 된 만큼 덧칠한 흔적도 하나의 역사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씨는 "난 내 벽에다가 풍자한 것 뿐"이라며 "날 잡아먹으려 안달하거나 희생 또는 영웅으로 미화할 필요 없다"며 벽화를 둘러싼 각종 해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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