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만화를 즐겨보며 만화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다. 캐릭터의 생명을 불어넣는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누야샤,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 원피스 루피, 타이타닉의 잭 도슨 등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목소리의 주인공 강수진 성우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성우계의 미남으로 불리죠? 그게 성우가 된 후 얼마만에 이룬 성과인가요?
A. 걔네들이 미남이지, 저는 미남이 아니에요. 성우된지 6~7년 정도 됐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많이 하게 되고,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꽃미남 캐릭터들을 맡게 된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는 성우 경력 10년차부터 많이 하게 됐고요.
Q. 처음 맡은 꽃미남 캐릭터는 뭔가요?
A. 알라딘을 했던 게 첫 주연이었던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대표적으로 어떤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연기하셨나요?
A.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실텐데, 란마 1/2를 비롯해서 현재까지는 ‘원피스’에 루피라는 캐릭터와 ‘명탐정 코난’에서 남도일이라는 캐릭터를 계속 맡고 있고요. 명탐정 코난과 함께 양대 탐정 시리즈물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김전일이라는 탐정을 하고 있어요. 탐정을 하다 보니까, 탐정을 꽤 오래하고 있네요. 저는 근데 추리력이 별로입니다(웃음). 그리고 외국영화에서는 ‘타이타닉’, 로미오와 줄리엣, ‘캐치미 이프유캔’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라는 배우의 목소리 연기를 전담하고 있어요.
Q. 행인1, 행인2, 행인3으로 시작해 코난 남도일, 원피 루피, 이누야샤까지 강수진 개인의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중요했던 순간은 언제였던 것 같나요?
A. 누구나 다 시작을 할 때는 지나가는 사람, 행인1, 행인2, 행인3, 학생1, 학생2, 학생3로 시작을 하겠죠. 그렇게 시작을 해서 현재의 제가 되기까지 중요한 순간과 고비는 꽤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중간에 성우를 잠깐 그만두려고 하면서 다른 걸 하려던 적도 있었어요. 다른 걸 생각했을 때 그쪽에서 잘 됐으면 현재의 모습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쪽에서 처참하게 참패를 했어요. 돌아와서 재기를 하기까지 굉장히 힘든 기간도 있었고, 중요한 배역을 맡아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저의 이름이 알려지고, 가치가 갑자기 상승할 수 있는 여러번의 계기와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죠.
Q. 어디 쪽으로 한눈을 팔았었나요?
A. 제가 원래 성우가 꿈이거나 연기에 관심이 없었어요. 전공이 연출이나 제작 쪽이거든요. 라디오 FM 음악프로그램 연출을 하는 게 꿈이고, 희망이었는데 어찌됐든 성우가 됐고요. 성우를 하는 동안에 성우라는 직업이 싫었던 건 아닌데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시절이어서 구조적 모순과 불합리, 이 직업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부당함에 대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을 했나봐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원래 하고 싶었던 제작과 연출에 관련된 일을 하자고 제안한 선배가 있어서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합류를 했다가 1년반만에 처참하게 바닥을 쳤어요.
Q. 제일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A. 기억이 안나요. KBS 공채를 통해서 KBS 전속성우가 되고, 첫 대본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행인1이나 행인2, 단역과 엑스트라 같은 한 두 마디의 대사였을텐데 그때의 기억은 없어요, 저에게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거든요. 학생과 지망생의 입장과 직업으로서의 성우의 입장은 다르지만 KBS의 성우로 들어가기 이전에도 학교에 다니면서 대본을 많이 접하고 그런 상황과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성우로서 드디어 데뷔를 하는구나’라는 감흥이 있었긴 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Q. 커리어의 고민 속에서 자리를 꾸준히 지킬 수 있었던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꾸준하게 지키지 못했고, 중간에 다른 길을 갔다가 돌아오긴 했지만 돌아왔을 때는 현재 내 자리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열심히 했고요. 저 혼자 열심히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열심히 하고 성실히 잘 해야 되는 게 기본이긴 하지만 제가 한 결과물에 대해서 평가해주시는 분들과 좋아해주시는 팬 분들이 성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나름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잘해서하기 보다 주변에 많은 분들의 보조도 있었고, 보시는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성원을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성우의 자리에 대한 소중함을 언제 가장 크게 느꼈나요?
A. 성우생활을 하면서 신인상 빼고는 중요한 상을 비교적 많이 타봤다고 할 수 있는데 상을 받을 때도 그런 감회를 느끼긴 하지만 상을 받을 때보다는 직간접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에요. 그게 좋은 피드백이든 비판이든 간에 피드백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을 통해서 제가 발전할 수 있는 생각의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한 연기활동이 누구를 감동시키거나 치유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요. 그냥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 뿐인데, 그걸 듣고 즐기시는 분들이 감동, 감격, 치유를 받았다고 하실 때는 굉장히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제가 하는 것들이 악영향이든, 좋은 영향이든 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요.
Q.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성우가 작업하는 현장이 드라마 촬영이나 영화촬영, 음반작업, 공연현장처럼 스펙타클 하거나 재밌는 일이 발생하는 액티브한 곳은 아니에요. 그래서 재밌거나 섬뜩하거나 돌이키기 싫은 에피소드가 많지 않아요.
Q.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자라서 더 자랑스러워 할 것 같아요.
A. 저희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이나 프로그램 속에서의 저의 목소리는 많이 안 들었어요. TV나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게임도 많이 하지 않아서 오히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영향력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친구들을 통해서 아빠가 하는 게 재밌다는 걸 듣고 저한테 물어보고 다시 친구들한테 전해주는 편이에요.
Q. 성우를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 있나요?
A.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청력이 양쪽의 차이가 있어요. 헤드폰을 쓰고 일을 하는데 헤드폰을 한쪽만 써요. 한쪽은 원래 오리지널 소리를 듣고 한쪽으로는 제 목소리를 들어야 돼서 멀티테스킹이 되어야 돼요. 동시에 화면과 대본을 동시에 봐야 돼서 시력도 난시가 되기도 하고 청력도 양쪽이 잘 안 맞는 부작용이 있긴 하죠.
Q. 강수진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리게 됐나요?
A. 제일 많이 알려지게 된 건 ‘타이타닉’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제일 널리 알려진 것 같아요. 그 전에 ‘알라딘’이라는 작품도 하긴 했지만 타이타닉과 로미오와 줄리엣이 설과 추석명절에 방송이 됐는데 그 시청률이 어마어마 했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성우라는 직업이 지금보다 방송국에서의 대우가 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성우가 시청률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고, 미국드라마나 영국드라마의 더빙을 많이 했었어서 성우의 비중이 지금보다는 컸었죠. 돈을 많이 주는 것보다 더빙 영화가 방영이 되면 자막이 나갈 때 ‘주인공: (디카프리오), 성우:강수진’이라고 나왔었어요. 그러니까 시청자들이 “디카프리오 역을 강수진이 했구나”라는 걸 알 수 밖에 없죠. 제 얼굴은 몰라도 강수진이라는 이름은 각인이 됐죠.
Q. 평소에도 캐릭터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때가 있나요?
A. 맡는 역할 캐릭터에 성격과 성향, 행동에 따라서 화술과 마인드를 바꾸는 거예요. 마인드와 화술을 바꾸면 전체적인 이미지가 변해요. 바뀐 이미지를 통합해서 목소리라고 생각을 하죠. 근데 음색이 바뀌는 건 아니고, 캐릭터가 바뀌는 거에요. 그래서 연기할 때의 캐릭터 목소리와 실제 저의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성격이 달라지는 것뿐이죠.
Q. 캐릭터가 아닌 실제 강수진의 성격은 어떤가요?
A. 시크하고 친화력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굉장히 내성적인 편이고요. 그래서 친숙하게 사람을 사귀지도 못하고, 사람 사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많은 친구가 있지 않아요. 친구를 사귀는데 오래 걸리는 만큼, 친해지면 오래가죠. 오래가는 친구는 있을 지언정 편하게 여러 사람을 대하거나 사귀지는 못해요. 사교적이지 못하고 조금 못됐어요(웃음). 내성적인데도 불구하고 연기를 하고 강의도 하고, 강연도 하고 카메라 앞에 서고 무대도 서기도 하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성격은 내성적일지언정 보고 느끼는 감수성은 굉장히 발달 된 것 같아요. 그 열정들이 내성적인 저의 성격을 뛰어넘은 거죠.
Q. 원피스와 코난, 이누야샤는 오랫동안 청소년, 성인들과 함께 성장했고 동시에 지금 어린 친구들도 이 캐릭터들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캐릭터들이 이렇게 오랜시간 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원작자가 만화를 잘 그려서 그렇죠. 재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원작이 인기 있어서 그런 거예요. ‘명탐정 코난’, ‘원피스’ 같은 장수하는 것들은 원작의 타이틀이 그만큼 탄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움직이지 않는 정지되어 있는 생명을 움직이고 말하는 생명으로 생동감 있게 만들어가는 게 저희의 작업이잖아요. 그 애니메이션 작업의 매력이 정지되어 있는 생명을 살아움직이게 하는 게 매력인데 그걸 잘하면 더욱 더 캐릭터가 인기 있긴 하겠죠. 그렇지만 1차적으로는 원작의 매력이 제일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원작의 매력을 더 실감나게 하는 게 저희들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뭔지를 철저하게 잘 분석해서 잘 어울리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본인이 맡은 캐릭터가 본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A.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도 있고, 제 본연의 모습과 괴리가 분명히 있는 것들도 있어서 그 괴리를 좁히고 원작의 매력을 살아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해요. 근데 실제 저의 모습과 괴리가 있는 게 대부분이에요. 생긴 것들이 저보다 99% 훨씬 잘 생겼고요. 성격도 저보다 좋고, 훨씬 사교적이고요. 훨씬 저보다 잘난 놈들이 99% 많아요. 그것부터가 괴리에요. 근데 성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그렇게 저보다 잘 생기고 잘나고 성격도 좋고 부자인 저보다 잘난 놈을 성우이니까, 제가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성우이니까, 디카프리오를 하죠. 제가 만약에 성우가 아니라 일반 연기자였으면 타이타닉의 주인공 같은 역할을 과연할 수 있었을까요?
Q. 남도일, 루피, 이누야샤 등 굵직한 주연들을 맡으셨는데, 대체로 셋 모두 느낌이 다릅니다. 각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특히 포인트를 두는 부분은 뭔가요?
A. 목소리는 비슷하고, 연령대는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완연하게 성격이 다르죠. 남도일이라는 천재 추리소년의 벤치마킹 대상은 ‘코난도일’ 원작의 셜록홈즈거든요. 결국 남도일이라는 추리를 하는 탐정으로서의 이미지는 셜록홈즈와 같은 캐릭터에요. 그래서 굉장히 차갑고 재수 없어요. 셜록홈즈와 대척점에 있는 악역인 모리아트 교수는 성향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선과 악의 위치가 다를 뿐이지, 성향적으로는 유사점이 많고 그게 사실 인간이에요.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사람들은 선과 악을 양분해서 구분 지어요. 셜록홈즈와 모리아트는 인간의 내면에 공종하고 있는 선과 악인 거예요.
그중에서 선의 위치에 있는 셜록홈즈를 벤치마킹한 게 코난이고요. 다만 10대라는 청소년 감성에 맞게 미란과의 로맨스를 섞었죠. 그렇지만 기본적인 캐릭터의 정체성은 차가운 선에 있는 것이고, 거기에 중점적으로 신경을 쓰고 기본적인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원피스의 루피는 한마디로 개차반이에요. 정말 단순 무식하고요. 안하무인이고, 천방치축인데다가 무대포 소년이죠. 정말 언터처블한 감당이 안 되는 소년이거든요. 근데 우리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감당이 안 되고, 단무지고 천방지축일 수밖에 없었던 건 성장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거든요.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해적들 사이에서 거친 어른들 세계 속에서 올바르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에요. 근데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루피에게 열광하는 건 근본은 착한 아이이기 때문이에요. 정의감과 의협심, 우정과 동료애가 넘치는 아이라는 거죠. 정의감과 의협심, 우정에 상처를 받거나 거기에 위험을 감지할 때는 영웅이 되죠. 그래서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요즘에는 나이가 먹으면서 겁 없고 죽음이라는 두려움 조차 없던 루피가 커다란 사건과 계기를 통해서 두려움을 알게 되고, 친구들 뿐만 아니라 죽음과 슬픔을 알게 되면서 성장 진행 중인 캐릭터라고 봐요.
그리고 이누야샤가 성격적으로 저와 제일 비슷한 것 같아요. 시크하고, 사교적이지 못하고, 여자는 좋아하는데 내색 못하지만 내적으로는 순수한 캐릭터거든요. 사교적이지 못하고 시크한 이유는 이누야샤의 콤플렉스 때문이거든요. 탄생에 대한 콤플렉스로 시작이 돼서 콤플렉스가 성격화 돼서 그런 거라고 봐요. 저도 청소년 시절에 콤플렉스 덩어리 였거든요.
그래서 성격이 비슷한 것 같아요.
Q. 강수진 성우의 가장 좋은 동료는 누구인가요?
A. 많아요. 어느 한 동료를 꼽기가 쉽지 않죠. 좋은 선후배들이 너무 많고, 좋은 제작진과 PD들도 너무 많아서 어느 한명을 꼽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일로서는 일 잘하는 동료가 제일 좋고, 동시에 인간적으로 신뢰감 있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같이 유지할 수 있는 동료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좋겠다고 섣불리 기대하는 것도 조심스럽고요. 그런 사람이 동료로서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동료를 만나는 건 쉽지 않고, 이상적인 동료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이 크고 그 실망감 때문에 동료와 가까워지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과 개인적인 관계는 완전히 분리시켜요. 일을 같이 하는 좋은 동료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는 철저하게 분리 시켜서 따로 만나기도 하고, 일과 사적인 관계를 연결시키는 건 철저하게 절제시키고 있어요.
Q. 어린 시절 어떤 콤플렉스들이 있었나요?
A. 성장기, 콤플렉스 때는 외모 콤플렉스가 굉장히 컸고요. 키가 작아서 콤플렉스 였었고요. 그리고 출생의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안계셨거든요. 제가 2~3살 때쯤에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제 기억 속에는 없어요. 돌아가신 후에 사진을 통해서 아버님의 모습을 알고 있는 거지, 제가 기억하는 아버님의 모습이 없거든요.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학교생활하면서 커나가니까, ‘내가 아빠가 없는 게 일반적인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되면서 콤플렉스로 작용하는 기간이 꽤 있었어요. 그리고 굉장히 집안이 가난해서 콤플렉스 였고, 그러다 보니까 이 콤플렉스들이 사람을 소심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선물공룡 디보에서 디보라는 주인공 역을 맡으셨는데, 평소 하시던 캐릭터와 달라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A. 그동안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제가 했던 캐릭터와는 거리감이 있는 생소한 캐릭터 일 수 있어요. 근데 애니메이션 외에도 KBS의 장수 어린이 유아교육 프로그램인 ‘TV유치원 하나 둘 셋’을 제가 10년 이상을 했었어요. 거기서 공룡 캐릭터를 하기도 하고, 수많은 캐릭터들을 했어요. 1인 다역을 하거나 거기서 노래도 부르고 수많은 캐릭터들을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저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보가 교육방송인데, 유사프로그램들을 모니터링 하고 그러니까 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캐스팅이 됐을 거예요.
Q. 본인이 한 대사를 통해 치유 받았던 경험이 있나요?
A. 제가 그 캐릭터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연기를 통해서 치유받는다기 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작품 자체에 대한 치료효과와 감동의 효과인거죠. 배우로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긴 한데 연기자로서 치유를 받기보다 그 작품을 대하는 청취자, 시청자, 독자로서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Q. 만화를 보면서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세요? 아니면 성우의 입장에서 보세요?
A.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봐야 되는데 분석적으로 보게 되는 버릇이 있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많이하고 있지만 제가 일을 하면서 보는 애니메이션 외에는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아요. 애니메이션보다 영화나 연극을 더 좋아해서 팬의 입장에서 더 많이 찾아봐요.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들이 있긴 있지만 광팬은 아니에요.
Q. 많은 성우 분들이 다른 직종의 비슷한 나이대 직장인들에 비해 젊게 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성우님께서도 젊게 사시는 것 같으세요? 젊음의 비결이 있나요?
A. 젊게 사는 것보다 철이 안 들어요. 철이 안 들어야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성우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연기할 때 실제나이보다 감성적으로도 그렇고, 외모적으로도 젊게 사는 것 같아요. 감성이 고이지 않아야 그 감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본인이 녹음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나요?
A. 제가 녹음한 건 많이 봐요, 모니터링도 많이 하고요,
Q, 이를 통해 어떤 피드백을 받으세요?
A, 굉장히 다양한 피드백들을 받죠. 프로그램에 따라서 좋아해주시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다양해요.
Q. 자신과 안 어울리거나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 때도 있을텐데 얼마나 연습을 하시는 편인가요?
A. 대부분이 저의 본연의 모습과 괴리가 있는 캐릭터들이에요. 근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의 이름들은 다르지만 유형별로 패턴이 있어요. 그래서 그 패턴을 익히면 크게 다르지 않고요. 그것에 비해서 영화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연기하는 살아있고 실체적인 캐릭터들이잖아요. 실체적인 등장인물을 나와의 괴리를 어떻게 좁히고 녹아내느냐는 정말 쉽지 않아요.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하는 분들은 오랜기간 작품 속 인물로 동화되는 기간이 필요하잖아요. 작품하나 만드는데 수개월, 수년이 걸리는데 비해서 저희는 몇 시간 내에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내야 되거든요, 사실은 불가능한 거예요. 촬영하는데 6개월이 걸렸으면 최소한 한달은 그 인물로 살아봐야 되지 않을까요(웃음). 어떤 배역이든 나와 같은 건 없어요.
Q. 가장 맡았으면 하는 캐릭터와 맡기 싫은 캐릭터는 뭔가요?
A. 예전에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절대 악 이런 걸 하고 싶은 게 꿈일 때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해보고 싶은 역할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다만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니까, 꽃미남이나 주인공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고요. 저의 감성이 가장 자연스럽게 잘 묻어나오고, 가장 자연스럽게 매칭이 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게 단역이어도 좋고, 배역의 비중에 상관 없이요. 가장 자연스럽게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Q. 성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목소리 보다 중요한 건 뭐죠?
A. 마음이 잘생겨야 돼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 훨씬 좋겠죠. 근데 좋은 목소리 보다 중요한 건 뚜렷한 개성과 연기력, 그리고 열정과 뛰어난 감수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Q. 직업만족도는 5점 만점에 몇점 인가요?
A. 성우가 직업만족도가 높은 건 연기에 대한 성취감과 일 자체는 높아요. 5점 만점에 4,7~4.8이라고 봐요. 연기라는 일, 성우라는 일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요. 연기를 하면서의 카타르시스와 작업과정에서의 몰입감과 성취감은 높은데, 그것에 대한 대우와 인식, 사회적 포지션, 업계에서의 대우를 봤을 때는 만족도가 높지 않아요. 너무 저 평가 되어 있다고 봐요.
Q. 시간이 지나면 목소리도 바뀝니다.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한 비결이 있나요?
A.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예전에는 없었는데 요즘에는 생리적으로 목소리가 변할 수밖에 없죠. 최대한 물리적인 변화가 빨리 오지 않기 위해서 물을 많이 마시거나 목에 좋다고 하는 차를 많이 마시는 것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고요.
Q. 성우의 생명력은 언제까지라고 보세요?
A. 목소리가 안 나올 때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라서 언제쯤 내가 은퇴를 할까, 떠날 때를 알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는 게 제일 좋을까 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지금은 작품에 따라서는 캐릭터와 이별을 하는 순간이 있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성우라는 직업으로서는 제가 물리적으로, 생리적으로 저희 목소리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그것에 맞게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을 때 까지 연기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Q. 강수진이 그리는 성우로서의 빅피쳐가 있나요?
A. 없어요. 저 그렇게 어렵게 안 살아요. 꿈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살아왔어요(웃음). 나름 하고 싶은 건 있긴 해요. 국내창작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이 웹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변형된 형태의 콘텐츠로 개발돼서 그 속에서 성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후배 성우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고, 제대로 평가 받고 대우 받을 수 있는 직업군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쓰고 싶어요.
Q. 지금보다 더 크기 위해서 강수진의 개인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저는 더 이상 안 클래요. 원래 저는 탑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추구하는 방향대로, 소신대로 하다 보니까, 그 결과라고 생각해요.
Q. 순수했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계속 순수하세요. 노력해야 돼요. 근데 그게 쉽지 않아요.
Q.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한 강수진만의 비결이 있나요?
A. 비결은 없어요. 세상에는 비결이 있는 건 거의 없어요. 세상에 어떤 일이든, 어떤 분야든, 어떤 공부든 비결을 얘기하면 그 비결대로 될까요? 비결을 찾지 말고 열심히 성실히하세요.
Q. 마지막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인생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부자 건 가난한 사람이건 세상에 작은 상처 하나, 혹 하나 달고 있지 않은 사람 없다고 하죠. 떡은 남의 떡이 커 보이고, 혹은 내 혹이 훨씬 커 보인대요.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누구나 다 힘겨움과 고통은 다 하나씩 반드시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건데 그걸 나만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처럼 생각하세요. 웬만한 고통을 나를 성장시켜 줍니다.
웬만한 고통을 객관적으로 보면 큰 고통이 아닐 수도 있고요. 그 고통이 크게 느껴지는 건 나의 나약함 때문 일수도 있어요. 정작 본인에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정말 힘들 때는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씀하세요.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손을 뻗으세요. 힘든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혼자 감내하거나 혼자 좌절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와달라고 하는 게 낫고요. 그렇게 도와달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웬만한 고통은 내 친구이거니 생각하사고, 그 고통이 나를 성장시켜 줄 거라고 생각하시고 열심히 노력하세요. 인생에 터널에 들어가야 될 때가 있어요. 터널은 입구가 있으면 출구도 있는데 출구로 빠져나와야 하거든요. 근데 터널은 움직여주지 않아요. 터널에 들어가고 빠진 사람이 움직여야 출구가 나오죠. 나오려고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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