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계약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인수합병 절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이후 거래가 깨지는 일은 흔하진 않더라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대개 실사 과정에서 다른 문제점이 발견됐거나, 계약 체결 시점과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는 명분을 제시하기 마련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인수 포기 과정이 비근한 사례다. 계약 체결이 지연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나타나며 계약이 무산됐다.
남양유업의 경우 '단순 변심' 외에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장을 찍고 보니 지나치게 싸게 팔았다는 후회가 찾아든 것이다. 계약 체결 당시엔 한앤컴퍼니가 비싼 가격에 남양유업을 인수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당시 한앤컴퍼니는 남양유업 오너일가가 보유한 지분 52.63%를 31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주당 82만원의 가격으로 당시 남양유업 주식의 약 두 배 수준이다. 그러나 연이은 악재로 실적이 악화됐던 남양유업의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싼 가격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실적 악화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보면 싼 가격에 회사를 넘겼다는 후회가 남을 만도 하다. 남양유업의 2019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531억원. 인수가와 비교하면 약 5~6배 수준의 멀티플이 적용됐다. 경쟁자인 매일유업의 EBITDA 멀티플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이러한 가치 평가는 남양유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2013년 대리점 갑질 파문 이후 잊을 만하면 악재를 겪었다. 올해는 코로나19를 마케팅에 이용한 '불가리스 사태'로 브랜드 가치 하락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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