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정유정 작가가 말하는 불완전한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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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1-08-1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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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실 행복이 아닐까? 행복을 위해 돈을 벌고 행복을 위해 맛있는 걸 먹고 행복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또 다른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 행복이 제때 오지 않으면 우울감에 빠지곤 한다. 너무 큰 행복이 찾아오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에 불안해지곤한다. 그래서 인지 행복은 늘 불완전한 상태인 것 같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될까? 이야기꾼 정유정 작가와 완전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정유정 작가]


Q. 완전한 행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완전한 행복이라는 건 없어요. 저는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목적보다는 우리가 어떤 일을 시도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하나의 성과라고 생각하거든요. 생일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축하하면서 맛있는 밥을 사먹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행복은 인생에서 얻어지는 성과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불행과 결핍, 불운도 내 삶의 요소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행복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한테 결핍돼 있는 것과 불운한 것, 불행한 것들을 거부하고 ‘이건 내 인생의 요소가 아니야’라고 하면서 행복만을 추구했을 때 과연 완전한 행복이 얻어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완전한 행복’이에요.

Q. 작가님에게 행복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A. 일단은 가장 근본적인 행복을 주는 것은 저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에요. 저희 셋째 고양이가 작년 가을에 우리 집에 왔어요. 보호소에서 2주 된 아기 고양이를 데려다가 젖 먹여서 길렀거든요. 지금 8개월 정도 됐는데,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너무 보고 싶어서 맨날 집에 전화해서 보여 달라고 해요. 소설을 쓸 때 힘들 때도 저한테 되게 힘이 됐고, 고양이만 보면 그냥 행복해요. 그리고 책이 나오고 북콘서트를 통해서 독자 분들 얼굴도 보고 유튜브로 제 모습도 보여드리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점에서 행복해요.

Q. 북콘서트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A. 도서관 같은 경우는 유튜브로 하는 경우도 있고요. 큰 문화 공간 같은 곳에서는 거리두기를 하고 오프라인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요.

Q. 미디어를 통해서 만나는 것과 직접 만나는 건 다르지 않나요?

A. 다르죠. 지난번에 포항에 독자 분들을 만나러 내려가서 몇 년만에 북콘서트를 했어요. 대형 콘서트를 하는 굉장히 큰 홀이었는데 한 200명 정도 띄엄띄엄 앉았죠. 방역수칙 지켜가면서 했는데 눈물 날 것 같았어요. 저는 강연을 원래 잘 안 하는 편이에요. 소설이 끝나고 홍보 행사를 하느라 두 달 정도를 서울에 올라와 있는 기간이 있거든요. 나머지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광주에 있는 집에 그대로 콕 박혀서 소설을 쓰는 편이에요. 2~3년에 한 번씩 이렇게 두 달 동안 나와서 독자 분들을 만나기 때문에 그때 독자 분들을 만나면 저에게 큰 힘이 되죠. 글을 쓸 때 독자와 만났던 그 시기에 강연 가고 그랬던 것들이 저한테 큰 힘이 돼요.

Q. 요즘에는 어떤 것을 기획하고 계세요?

A. 인간의 욕망에 관한 소설을 한 두 권 정도 더 쓸 것 같아요.

Q. 한권의 책을 쓰는데 보통 2~3년 정도 걸리는 편인가요?

A. 네. 더 나이 먹기 전에 좀 자주 쓰려고 해요. 그리고 지금 코로나 시기라서 어차피 우리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잖아요. 해외 행사 같은 것들도 엄청 많이 잡혀 있다가 미디어 행사로 전환되거나 취소도 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는 시기에 집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작가들마다 글이 잘 써지는 장소가 있다는데 정유정 작가가 창작을 하기 편한 곳은 어디인가요?

A. 저는 제 집 제 방에서 해야 돼요. 카페에서 하면 좋다는 분도 있고, 도서관에서 하시는 분도 있고, 백색 소음이 좋다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저는 백색 소음은 별로 안 좋아하고요. 누가 있다거나 그러면 아무것도 못해요. 근데 제가 글 쓰는 방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저희 집 고양이들이 다 몰려와서 발밑에 있거나 아니면 노트북 뒤에 누워서 방해하는데 그건 좋아요(웃음). 그래서 같이 장난도 치다가 글도 쓰다가 그렇게 한 2년을 보내요.

Q. 자기애의 늪에 빠지면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정유정 작가는 자기애의 늪에 빠지면 왜 위태롭다고 생각을 하는 건가요?

A. 자기의 늪에 빠지면 일단 문제가 뭐냐면 시각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돼요. 타인은 전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죠. 타인을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나의 행복만 생각하고 나의 이득만 생각한다면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첫째 문제인 거고요. 둘째는 모든 것이 나를 향해있기 때문에 타인은 나를 위한 도구로 생각할 수가 있어요. “너는 나를 위해서 평생 동안 헌신해라”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 위험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Q. 작가님께서는 자기애에 빠질 때는 언제인가요?

A. 건강한 자기애라는 게 있어요. 문제가 되는 자기애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는 것인데 스펙트럼이지 어떤 증상을 딱 가리키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여기 하얀 부분이 자기가 아예 없는 사람이라면 이쪽 까만 부분은 완전한 행복에서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자기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이거든요. 우리 보통 사람들은 딱 중간에 있어요. 아주 건강한 자기애를 갖고 있거든요. 자기애가 없으면 안 돼요.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맨날 남한테만 헌신하다가 나는 헌신짝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건강한 자기애는 필요해요.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자기애와 자존감을 만드는 게 바탕이 되어야 해요. 문제는 까만 어두운 쪽으로 가 있는 아주 극단적인 나르시시즘이죠.

 

[사진= 김호이 기자]


Q. 자기애가 자존감과 비슷한 건가요?

A. 비슷한 건 아닌데 거의 동질하다고 보시면 돼요. 자기애가 있어야만 자존감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진정한 자존감은 실질적인 성취와 함께 자기 이상에 충실한 삶을 살 때 생기는 거거든요. 여기에서 실질적인 성취라는 것은 반드시 어마어마한 업적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가령 내가 이번에 미술대회에 작품을 출품하겠다고 생각을 했다면 일단 작품을 완성해야 하잖아요. 시도를 해야죠. 근데 미리 내가 저기서 과연 입상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걸 미리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안 되죠. 실패하더라도 시도하고 또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 입상을 했든 못 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어쨌든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을 성취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런 사소한 성취라도 자기 인생에서 차근차근 쌓이면 그것이 자존감이 돼요. “나는 내가 마음먹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모여서 자존감이 만들어진다고 봐요.

Q.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소설 끝냈을 때요. 저는 소설을 시작할 때도 ‘과연 이걸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되게 많고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과연 이것을 끝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리고 끝내고 나면 또 ‘독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데 일단은 소설을 끝냈다는 데서 성취감을 느껴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제 성취하고는 큰 상관이 없어요. 그냥 그것은 기쁜 일인 거죠. 근데 성취는 끝냈다는 것에 있는 거예요. 좋은 평가를 받든 나쁜 평가를 받든 나는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다 만들어냈다는 게 내면적인 성취거든요. 그리고 외부로부터 “ 이 소설 이야기 정말 재미있다“ “의미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외부적인 성취가 되겠죠. 그렇지만 가장 자존감에 기여를 하는 것은 내면적인 성취라고 생각해요

Q. 나태주 시인과 인터뷰를 했는데 시인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나의 역할은 쓰는 거고 독자의 반응은 그들의 역할이다“라고 하셨던 게 생각이 나요.

A. 그렇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는 부분에 전전긍긍하면 인생이 불행해져요. 우울해지고요. 그래서 그 부분은 그냥 독자의 몫이에요. 본인들이 읽고 비판을 하든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 글을 제대로 써냈느냐 하는 것이죠.

Q. 저도 기사나 글을 쓰면 나는 못 쓴 것 같은데 뭔가 큰 반응이 있을 때도 있고 나는 잘 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썼어요? 라고 들을 때가 있어요. 작가님께서도 책을 쓰실 때 나는 잘 쓴 것 같은데 큰 반응이 없거나 나는 못 쓴 것 같은데 큰 반응이 있었던 것들이 있었나요?

A. 그럼요, 있죠. 가령 ‘진이지니’ 같은 경우는 진심을 다해서 썼고 정말로 만족스러운 작품인데 ”우리가 정유정한테 원하는 건 이게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건 독자와 나의 반응이 다른 경우죠. 나의 기대와 독자의 반응이 다른 경우인데 그것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에요.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지만 책을 쓸 때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쓸 수는 없어요.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고 독자의 평가를 기다려야 하는 게 작가의 숙명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Q. 정유정 작가는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세요?

A. 제 일을 할 때 행복해요.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고통스러우면서 행복한 거예요. 독자들에게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있잖아요. 예전에 무명 시절에는 ‘이 책을 내가 과연 낼 수 있을까. 나는 책 한 권 낼 수 있는 날이 올까‘ 이런 불안이 있었지만 이제는 내 책을 내주는 어떤 무대가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이 순간이 행복하고 동시에 글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거죠. 창작의 고통도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거 비하가 이런 순간에 굉장히 많이 돼요. 하지만 우리는 회복 탄력성이 있고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또 그런 순간이 금방 회복이 되잖아요. 이 위기를 넘기면 또 회복이 돼서 ’다시 쓸 수 있겠다‘ 하는 방향으로 또 나아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고통과 행복은 동시에 찾아오는 것 같아요. 항상 인생에서 완전하게 행복한 순간이야 라는 순간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있으면 반드시 그에 반대되는 불행이 꼭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은 어떤 면에서는 또 공평해요.

Q.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행복이 무언가를 성취해 가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나를 불행한 것들을 다 제거해 버리는 게 행복은 뺄셈이라고 생각해요. 내 인생에서 행복한 것만 남기고 불행의 요소들은 다 제거해버리겠다는 말이에요. 굉장히 삐뚤어지고 무서운 얘기인 거죠.

Q. 왜 무섭다고 생각하세요?

A. 만약에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그걸 제거해버리겠다거잖아요. 이렇게 한다면 무섭지 않겠어요? 만약에 나를 쫓아다니면서 못 살게 구는 사람이 있는데 ’나 그 사람 때문에 곧 죽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내 인생의 불행의 요소예요.‘라고 하면 그 사람은 제거의 대상이 되는 거죠.

Q. 행복은 불행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평생 행복할 수가 없거든요.

A. 행복하기만 하면 행복이 뭔지 몰라요. 불행과 어둠과 그늘이 있고 그림자와 결핍이 있어야 내 강점이 확 부각이 되죠, 내게 부족한 게 하나도 없으면 내 강점이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만약에 나한테 100억의 재산이 있어요. 그리고 나를 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전부 나를 사랑해주면 이 세상에 무슨 재미가 있고 행복할까요? 그게 그냥 당연한 건 줄 알 텐데 말이죠. 이게 고맙고 이게 내 인생에서 너무 좋은 일이라는 걸 알려면 불행이 있어야 하고 불운이 있어야 돼요. 그것이 내 삶의 요소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내 인생에서 불운한 것들과 결핍된 것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행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많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잖아요. 만약에 작가님 처해 있는 상황 중에서 또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상황 속에서 딱 한 가지 불행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떤 불행을 제거하고 싶으세요?

A. 저는 불행한 시기를 많이 건너왔어요. 저는 누가 20대로 보내줄게 하면 ’나 그럼 자살할 거야‘라고 그러거든요. 저는 불행하고 불운한 20대를 건너왔어요. 그리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좌절의 30대를 건너왔고요. 그리고 40대에 이르러서야 저의 무대를 얻었고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거든요.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어요. 그런 세월들이 쌓여왔기 때문에 지금 현재가 저로서는 최선의 상태인 거예요. 앞으로 더 최선을 다해서 더 좋은 작가가 되면 좋겠지만 그러려고 또 노력도 하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딱히 내 인생에서 제거하고 싶다 이런 것은 없어요. 그래도 제거하고 싶은 게 뭐냐 그러면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삶에서 얻었던 상처들이요. 깊은 상처들이 있어요. 상실감에서 온 상처도 있고 배신감에서 온 상처도 있는데 그런 마음의 상처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Q. 그런 상처를 없애기 위한 정유정만의 방법이 있나요?

A. 없어요. 상처는 상처대로 안고 가는 게 제가 삶을 사는 방식이에요. 저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순간적으로 잊을 수는 있어요. 근데 진심으로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냥 그 상처를 껴안고 가는 거예요.

Q. 몸에 나는 상처는 금방 치료할 수 있지만 암이나 몸속에서 발생한 상처는 건강검진을 하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A. 너무 힘들어요. 그것을 이겨내는 게 진짜 강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가끔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가도 그것에 쓰러질 때가 있어요. 과거가 나를 덮쳐 와서 쓰러뜨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근데 어떡하겠어요. 끙끙 앓아야지. 앓고 나면 또 일어날 용기가 생기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고 완전히 이겨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Q. 소설가라는 직업은 행복과의 거리가 가깝나요, 먼가요?

A. 소설가라는 직업 특성상 너무 행복하면 뾰족해지질 않아요. 행복한 사람들은 부드럽고 완만한 편인데 그게 소설을 쓰는 데는 상당히 걸림돌이 돼요.

Q. 삶에 약간의 비탈길 같은 게 있어야 소재 같은 것도 잘 떠오르는 건가요?

A. 자기가 모든 게 다 충족이 돼 있고 별로 문제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무슨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가 있겠어요. 소설을 쓰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거든요. 근데 모든게 만족스러우면 그 질문을 발견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항상 결핍이 있어야 되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 큰 결핍이 있기 때문에 그 결핍을 소설로 쓴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Q. 정유정 작가는 어떤 결핍이 있나요?

A. 결핍이 많죠. 근데 남들이 봤을 때는 ”그게 결핍이야“라고 할 수 있는 결핍들이 많아요. 근데 나는 결핍이라고 느끼는 거죠. ”좀 더 내가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재능에 대한 결핍감도 있어요. 그리고 ”소설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좀 더 젊었으면 좋겠다“ 하는 결핍감도 있고요, 젊음에 대한 결핍, 건강에 대한 결핍, 관계에 대한 결핍도 있어요. 나는 사랑만 받고 싶지만 사랑만 받는 건 아니잖아요. 미움도 받고 비난도 받고 비판도 받고 그러는데 사실 비난과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거기에 대한 결핍이 있다 보니까, 노력을 하게 되는 거죠. 조금이라도 그런 것들에 대한 마음을 바꿔보기 위해 노력도 하게 되거든요. 사람의 동기는 대부분 결핍에서 온다고 봐요.

Q. 지금의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때를 그리워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A. 그렇죠. 인간이 대체적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아주 다정한 방식이 추억이거든요. 그 다정한 방식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Q. 언제 행복하세요?

A. 소설 끝냈을 때 행복하고요. 매일매일 행복한 것은 햇볕비치는 창가에 앉아서 아무 시름없이 제 고양이랑 놀고 있을 때 행복해요. 그리고 소설이 꽉 막혔다가 어느 순간에 딱 트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러면 말도 못하게 행복하죠. 그래서 마구 쓰기 시작하면 그럴 때 행복하고요, 또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때 행복해요. 우리 나이가 되면 맛있는 걸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어요. 소화도 잘 안 되고 살도 찌고 탈이 나요. 젊을 때는 별걸 다 먹어도 탈이 안 나는데 나이가 드니까 뭘 잘못 먹으면 탈이 나요. 저는 입맛이 초딩 입맛이어서 되게 자극적인 걸좋아해요. 떡볶이, 매운 엽떡, 치킨 그런 걸요. 근데 그걸 먹고 나면 소화가 안 돼요. 소화를 못 시켜서 배가 아프고 화장실 들락날락하고 그리고 또 살도 쪄요. 마르게 보이지만 그건 제가 키가 크기 때문이고 살이 찌면 몸이 일단 둔해져요. 그래서 안 쪄 있다가 찌면 옷도 잘 안 맞고 옷값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먹는데도 예전에는 ”몇 개만 먹을 거야“라는 생각이 없이 이제는 ”내가 다 먹을 거야“ 그러다가 이제 나이가 드니까 ”난 이거 열 개만 먹어야지“ 이렇게 변했어요.

Q.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문학은 원래 인간의 본성을 조명하는 것인데, 본성을 조명하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저는 문학이라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안에는 밝은 부분도 있고 어두운 부분도 있어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죠. 자기가 밝은 부분만 갖고 있다고 하면 사실 인생을 사는 데 굉장히 고달파요. 남들이 헌 신짝처럼 남들이 이용하고 버림받고 이럴 수 있어요. 남들에게 내 것을 다 뺏기고 내가 차지해야 될 것도 차지하지 못하고 나는 상처받고. 이렇게 살 수 있거든요. 불행해지죠. 그래서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간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가 다 양립하고 있고, 어느 순간에 양쪽에서 무엇이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소에는 밝은 면이 우리를 지배해요. 기왕이면 친구에게 잘해주고 싶고, 기왕이면 배려해 주고 싶고 또 기왕이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어해요. 내 이익뿐만 아니라 기왕이면 공공의 이익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고요,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의 폭력성이라고 하는 외부에서 어떤 사건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어떤 사건이 내 안으로, 내 삶 속으로 치고 들어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평상시 들여다보지 않고 평상시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이 어두운 부분이 딱 눈을 뜨는 거예요. 그걸 저는 인간 내면의 숲이라고 하는데요. 이 숲 안에는 욕망이라든가 증오라든가 질투, 시기, 폭력성 이런 것들이 살아요. 나를 시험하는 것들이에요. 내 인생에서 온갖 말썽을 일으키는 것들이고 이 운명이 외부에서 휘몰아 쳐들어온 힘과 이 어두운 숲에서 야수 중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만나게 되면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이 딱 뒤바뀌는 기로인 것이거든요. 이 기로에 선 인간들이 저의 주제예요. 이때 이 기로에 선 인간이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인가 최악의 선택을 할 것인가 그 부분이 문제인 거죠. ’진이 지니‘ 같은 경우는 최선의 선택을 한 케이스예요. 그리고 ’완전한 행복‘이나 지금까지 제가 써왔던 소설들은 다 최악의 선택을 한 인간들을 쓴 거예요.

근데 저는 인생이 뒤바뀌는 순간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 그중에서도 최선이냐 최악이냐 이 선택은 보통 자기가 이성적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본성에서 튀어나와요. 그래서 제가 인간의 본성에 굉장히 호기심을 갖는 거예요.


Q. 그러면 작가님의 인생에서 뒤바뀐 기점은 언제인가요?

A. 저의 어머니가 아파서 3년 반 정도를 저랑 병원에서 같이 살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기점은 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예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를 사건이고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저의 20대를 동생들과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살았거든요. 타인에게 헌신하는 삶을 산거예요. 어차피 가족도 타인이거든요. 그 시기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시기인 거죠. 저는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나서 집을 사고 그 이후에야 작가가 되려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마흔이 넘어서 등단을 한 거고요.

Q. 우리의 인생이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다가도 한 순간의 사고나 아픈 기억이 있으면 인생이 뒤바뀌어버리잖아요.

A. 맞아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그건 정말 무시무시한 힘이에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관심이 되게 많은 거예요. 어떤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이 인물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거죠.

Q. 이런 탐구들을 스스로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뭔가요?

A. 욕망이죠. 제가 독자 분들에게 재밌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인 거죠. 그게 끊임없이 저를 추동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소설을 쓰면 ”이번 소설이 재미있지만 뭐가 아쉽다“ 이런 이야기들을 귀담아들어요. 다음에는 이 부분을 개선해서 한 단계 레벨업 된 이야기를 선보여야겠다는 욕망이 저를 밀고 가는 거죠.

Q.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뭘까요?

A. 인간에 관한 이야기예요. 인간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그런 학문들이 인문학이죠. 인간의 문명, 인간의 문화. 그리고 문화 예술을 다 포함해서 인간의 내면까지. 어떻게 보면 심리학이죠. 거기까지 다 인문학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생물학은 인간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인문학은 인간을 가장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문학적으로 탐구하는 그런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Q. 요즘에는 세상에 어떤 궁금증들이 있나요?

A. 세계적인 현상인데 sns나 미디어, 출판물 이런 것들이 자기애와 자존심, 행복에 대한 강박증처럼 ”너는 행복해야 돼“,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너는 누구보다 잘 났어“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증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만약에 나의 완벽한 모습만을 밖에 보여주려 한다면 밤이 돼서 잠자리에 누우면 너무 허망할 것 같거든요. 내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거고 내게 좌절이 온다든가 결핍이 온다든가 불운이 오는 것도 삶의 요소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행복하다하고 나는 잘난 사람이고 특별한 사람이고 나는 불행한 것들이 오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불행이나 힘든 것들이 실질적으로 오는 걸 막을 수 없잖아요. 그러면 받아들이기 힘들고 외면하고 회피하게 돼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요즘 되게 눈여겨보고 있고요.

이와 함께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고 나머지는 다 인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도구적 시각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거든요. 길고양이라든가 우리가 기르는 반려견들을 너무 쉽게 유기하고 또 길고양이들이 시끄럽게 운다, 쓰레기를 찢는다, 그래서 쥐약을 넣고 데려다 죽이고 다른 동네로 쫓아버리잖아요. 길고양이 같은 경우는 영역이 있거든요. 그 영역에서 내쫓으면 죽으라는 말이에요.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한다는 거죠. 그 생명들도 사실은 우리와 동등한 생명이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때로는 인간이 가장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긴 해요.

A. 인간이 되게 복잡한 존재예요. 잔인하면서도 때로는 어마어마하게 다른 사람이나 다른 자기에 대해서 연민을 품고 관용하는 존재이기도 해요. 저는 인간을 생각하는데 그런 모순된 감정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되게 슬픈 존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잔인한 면도 있지만 되게 관용하고 연민하는 면도 있어요. 또 되게 치사하고 치졸하지만 되게 또 존엄한 부분이 있고요. 인간이 타 생명체에 비해서 인간만이 가지는 존엄성이 있거든요. 저는 그래서 인류가 되게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 파멸형에 가더라도 인류를 또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그런 존엄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건 인간이 가지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를 헌신할 수 있는 희생의 마음이고요. 인간은 복잡한 존재인데 저는 어쨌든 파멸의 열쇠도 인간에게 있지만 구원의 열쇠도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Q. 요즘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인류애를 상실했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해요.

A. 네 맞아요. 그렇지만 인류애가 빵빵해지는 사건도 있어요. 인간이 다 그런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그게 독서량에 좌우돼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시각은 넓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세상을 넓은 시야로 볼 수 있는 소양을 많이 기르면 좋아요. 이분법으로만 생각하면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게 되고 세상이 되게 편협해져요.

Q. 타인을 이해하고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A. 타인을 이해하고 저를 이해하기 위해서 첫째는 이입을 해보는 거죠. '나라면 어땠을까' '왜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유를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보고 '그 안에 어떤 진실이 있을까'를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고 상상을 하죠. 상상을 하고 들여다보는 눈은 직접적인 관계에서 온 자신의 경험도 필요하고 책을 읽음으로써 오는 간접적인 경험도 필요해요.

Q. 직업만족도는 어떻게 되나요?

A. 저는 다 만족해요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작가로서 사는 것이 저의 존재의 의미예요.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뤘고 또 작가로 살면서 제 이야기를 이렇게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지금이 제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족하는 거죠. 하지만 언젠가는 이제 힘이 딸리거나 세상에 할 얘기가 없어지면 펜을 내려놔야겠죠. 강물은 위에서 밀려오는 새로운 강물에 의해서 밀려가는 거잖아요. 그걸 거스를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흐르고 있을 때는 어쨌든 간에 힘차게 흘러야죠.

Q. 초등학생이 길을 가다가 직업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하실 건가요?

A. 저를 모르는 사람이 직업 뭐냐고 물으면 대답한 적이 별로 없어요. 작가라고 말하면 제 자신을 많이 설명해야 돼요. 나는 뭘 썼다는 것에서부터 많은 것들을 설명해야 돼서 그게 참 부담스러워요.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그냥 있다고 해요.

Q. 소설가를 할 때 어떤 꿈을 가지고 시작했나요?

A. 저는 단지 최선을 다해서 재미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독자들에게 ”이 작가 이야기 잘 하네, 이야기꾼이네“ 이런 인정을 받으면 저는 그걸로 행복해요.

Q.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A. 처음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써야지“ 하면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처음엔 ”나만의 이야기를 써야지“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돼요. 사람들이 생각할 때 작곡을 하겠다 그러면 악보도 배워야 되고 악보 그리는 법도 배워야 되고 먼저 공부를 하잖아요. 그냥 어느 날 작곡하고 싶다 그래서 오선지 갖다 놓고 막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생각할 때 글을 쓴다 그러면 그건 배우지 않고 훈련하지 않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글도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듯이 훈련과 학습 그리고 교육이 필요해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글쓰기 훈련을 해야 되고요. 다른 사람의 장점, 그 분야에서 본인이 존경하거나 우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것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다 흡수가 된 다음에 나오는 게 자기만의 것이거든요. 독창성은 독특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다 습득한 다음에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독창성의 첫 걸음이에요. 그래서 독창성을 추구하려면 먼저 자기가 하는 일에 정통해야 돼요. 그 다음에 독특하고 신선한 것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 자기가 하는 일을 익히지 않고 먼저 독창성을 찾으면 4차원이 되겠죠.

Q. 전문가는 베끼지 않고 그걸 훔치고, 아마추어는 그걸 베낀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A. 맞아요. 훔쳐서 자기 걸로 만들어야죠.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소설가를 하기 전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셨나요?

A. 저는 소설이 곧 문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야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 얼마나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느냐. 그 의미 있는 이야기를 얼마나 말이 되게 하느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선보여지는 게 소설이에요.

Q. 때로는 간호사를 했던 시절이 그리워지지는 않으세요?

A. 저는 간호사로 5년을 했고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 직장생활을 했거든요. 총 14년 직장생활을 했는데 직장생활을 그리워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원했던 일은 아니었고 제가 거쳐 온 과정이었거든요.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 또 살기 위해서. 그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살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아요.

Q. 직장생활의 경험들이 소설을 쓰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나요?

A. 그럼요. 그건 저의 바탕이죠. 간호사 시절의 경험이 완전히 저의 세계관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Q. 그걸 만약에 하지 않았으면 또 아예 길 자체가 바뀔 수도 있었겠네요.

A. 다른 소설을 썼을 수 있겠죠. 다른 이야기를 했겠죠. 제가 이런 어두운 이야기, 인간이 벼랑 끝에 선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행복한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죠.

 

[사진= 김호이 기자]



Q. 간호사는 생과 사를 왔다 갔다 하는 순간들을 많이 보잖아요. 삶의 벼랑 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데 영향을 줬겠군요.

A. 그건 제가 살아온 세월이 항상 위태롭고 힘든 시기를 지나오기도 했고, 또 중환자실에 제가 근무를 했어요. 중환자실에 근무를 하면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생명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많이 보게 돼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고 대체적으로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많고 또 죽음을 흔하게 보게 되고요.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인생의 밝은 면만 보기보다는 이제 인생에 어렵고 힘든 부분들을 더 많이 보게 되죠. 그게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Q. 모든 이야기가 다 소설이 될 수는 없죠. 어떤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건가요?

A. 문학적 질문을 던져야만 소설이 될 수 있어요.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령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이라든가 아니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라든가 이런 것들이 많은 극적인 이야기들이 있어요. 극적인 이야기라 해서 다 소설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 이야기가 제게 어떤 문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해요. 그러니까 가령 ’7년의 밤‘ 같은 경우는 모티브가 된 사건이 저에게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어떤 무엇이 있을까‘라는 문학적인 질문을 던졌어요. 문학적인 질문이라는 것은 ’예‘나 ’아니요‘ 이걸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에요. 굉장히 긴 서사가 필요한 질문인 거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하나의 서사가 필요한 그런 질문인 거예요. ’완전한 행복‘ 역시 마찬가지예요. 불행의 요소를 다 없앤다고 해서 과연 인간은 행복해질까 라는 게 문학적 질문인데 저는 그 전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 사건이 저에게 그 질문을 던지면서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 소설 자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에요.

Q. 창작을 위해 가지고 있는 습관들이 있나요?

A. 있죠. 루틴이 있어요. 소설 작업에 들어가잖아요. 그러면은 저는 그 루틴대로 살아요. 새벽 3시에 일어나고, 일어나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메탈 음악을 들어요. 그걸 듣고 커피를 마셔요. 그리고 또 우리 고양이들과 잠깐 놀아주면서 이제 각성을 하는 거죠. 그리고 한 4시 정도 되면 소설 쓰기를 시작해요. 시작하면 중간에 아침도 먹고 12시면 끝내요. 그 시간에는 이야기의 진도가 나가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그다음에 오후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아침에 썼던 이야기를 고쳐요. 그리고 오후 5시가 되면 노트북을 덮어요. 그리고 운동을 하러 가요. 운동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작가로서 체력이 없으면 글을 쓸 수가 없거든요. 특히 장편은 체력이 없으면 못 써요. 한 이야기를 2년~3년씩 막 붙잡고 있어야 되니까요. 그래서 체력을 위해서 한 2시간 정도씩 운동을 해요. 그러면은 7시 반~8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그러면 저녁을 먹고 씻고 맥주 한 잔 마시다가 9시면 자요. 그리고 또 새벽 3시에 일어나요. 그 생활을 2년 이상을 해요. 그러고 나면 소설이 나오고 소설이 나오면 또 한 두 세 달 홍보하면서 독자도 만나고 이러면서 내 나름대로 회복기를 갖고 또 새로운 이야기에 들어가는데 이 루틴을 작가로 데뷔한 후 14년 동안 해왔어요. 그전에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도 6년 동안 해왔으니까, 이제 20년이 된 습관이라고 봐야겠네요.

Q. 어떤 이야기를 가진 이야기꾼이 되고 싶으세요?

A.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Q. 그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A. 서사나 문체가 일단 독자에게 재미와 의미를 줘야겠죠. 힘도 있고 아름답고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해요. 그런 이야기를 좀 써봤으면 싶어요.

Q. 수많은 이야기꾼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나요?

A.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근력이 되게 필요해요. 운동을 좀 많이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정유정 작가가 전하는 메세지]


Q.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A. 행복이라는 것이 미래에 어떤 덩어리로 나한테 오는 게 아니고 우리가 현재 해나가고 있는 가운데에서 행복이 성취물로 따라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현재에서 행복을 찾는다기보다는 그런 작은 행복들이 왔을 때 그것들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야 돼요. ’나는 이런 행복한 순간을 지나고 있구나‘ ’이런 행복한 순간을 얻었구나‘ 그리고 또 내일 가면 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미래는 아무도 몰라요. 미래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어요. 내가 미래에 없을 수도 있고 지구가 미래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현재에 충실하고 자기 이상에 충실한 그런 삶을 사는 게 행복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정유정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정유정 작가, 남세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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