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따상'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장한 기업의 주가가 부진하면서다. 시초가가 공모가의 두배로 형성된 뒤 상한가를 치는 '따상' 신화는 옛말이 됐다. IPO 과정에서 공모가를 높이기 위해 무리수를 둔 점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를 마지막으로 코스피 상장사 중 따상에 성공한 종목이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상장 첫날 79% 상승으로 마무리한 카카오뱅크를 제외하면 IPO 기대주 중 첫날 상승 마감한 종목이 손에 꼽을 정도다. 크래프톤의 첫날 종가는 45만4000원으로 공모가(49만8000원) 대비 8.8% 하락했고, 한컴라이프케어(-6.6%)와 롯데렌탈(-5.9%)도 공모가 대비 하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상승 마감한 종목들의 주가가 부진한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달 16일 5만2000원에 상장해 첫날 종가로 6만1000원을 기록하며 공모가 대비 9.6% 상승했다. 하지만 고평가 논란을 빚으며 주가가 횡보한 끝에 지난 11일 6만4100원을 고점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23일 장 중 한때는 주가가 5만200원으로 떨어지며 공모가를 밑돌기도 했다. 결국 이날 에스디바오이센서 주가는 5만800원으로 마감하며 공모가를 밑돌았다.
공모가 대비 부진한 종목들은 대부분 금융당국으로부터 증권신고서를 한 차례 이상 반려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크래프톤과 에스디바이오센서 등에 대해 공모가 및 기업가치 산정 기준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며 증권신고서를 반려했다.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이들 기업이 제시한 공모가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돌려서 표현한 셈이다.
크래프톤의 경우 비교기업이 문제가 됐다. 게임기업보다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을 받기 위해 디즈니를 비교기업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바탕으로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지만 공모가 대비 부진한 주가는 시장이 이들의 청사진에 의문을 제시했음을 시사한다.
에스디바오이센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실적 전망이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 진단키트 판매 증가가 호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을 주요 비교기업으로 선정하면서 PER을 높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종식 시 진단키트 판매량이 급감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실적 성장 유지 가능성에는 의문이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들 기업은 공모가를 하향 조정했다. 크래프톤은 당초 55만7000원이었던 공모가 상단을 49만8000원으로, 에스디바이오센서는 8만5000원에서 5만2000원으로 낮췄다.
증권신고서가 반려된 기업들의 주가가 지지부진하면서 하반기 IPO 대어로 꼽히는 카카오페이의 상장에도 이목이 쏠린다. 카카오페이가 지난 2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금감원이 기업가치 산정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초 8월로 예정됐던 카카오페이증권의 상장은 9월로 미뤄질 전망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과거의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공모가 결정을 개인투자자 청약 이후로 미룸으로써 개인투자자 수요도 반영한 공모가 결정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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