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잘못된 전쟁이 남긴 힘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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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1-08-2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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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2001년 뉴욕의 110층 쌍둥이 무역센터 빌딩이 테러범들의 민간 항공기를 이용한 자살공격으로 무너져내렸다. 미국의 본토가 처음으로 외국으로부터 공격받아 3000여명의 미국 시민이 죽는 사상 초유의 비극이 발생하였다. 당시 미국인들이 이 공격에 대해 느낀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고, 모든 차량들은 성조기를 차에 붙이고 다니면서 결전의 각오를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이 보복전쟁을 벌이는 것은 국민정서상 불가피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을 부시 대통령이 선언하였을 때, 필자는 미국 친구들에게 테러는 바이러스와 같아서 환경이 나쁘면 발생하는 것인데 이를 외과수술 방식인 전쟁으로 척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때 미국 친구들은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1개월도 못 되어 끝날 가벼운 전쟁이라는 자신감을 보이면서 전쟁을 시작했다. 그때 필자는 미국 지인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은 발등의 불이니 꺼야 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다가 머리를 들어보면 뒷산에 호랑이가 내려올 것이라는 경고를 해주었다.

전쟁을 시작한 이래 20년을 끌다 8월 말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인 알카에다 본거지 척결도 사실상 달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프간에 천문학적인 원조를 해주고도 지속가능한 민주정부 하나 제대로 못 세우고 빈손으로 철군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국력만 엄청나게 소진하고 탈레반 세력은 더 강성해져서 복귀함으로써 아프간이 다시 테러의 온상이 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미국이 벌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전쟁이 되어버렸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잘못된 지역에서 잘못된 목표를 향하여 국력을 소진하는 동안 잠재적 도전국이 근력을 키워서 한 마리 호랑이로 등장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지도자들이 전략적 판단을 잘못하면 국가에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상 중요한 연구사례가 될 것이다. 당시 미국 정가를 주도하던 네오콘들은 그 전쟁을 통해 위대한 미국의 위력을 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위상이 더 강화할 될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제 무대 뒤로 사라지고 지금의 미국민들이 그들의 잘못된 판단의 부담을 오롯이 짊어지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네오콘들은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은 해외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특히 민주 정부를 많이 세우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소위 공세적 현실주의 관점에서 필요 시 미국 군사력을 해외에 선제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의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미국 예외주의와 팽창주의가 결합된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2조 달러의 비용과 25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테러와의 전쟁을 보면서 지금 미국민들의 정서는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경찰 역할을 할 필요가 없고 미국은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고립주의적 시각이 만연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자국 안보만을 위해서는 해외에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여태까지 패권국으로서, 자유국가의 리더로서 미국은 세력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외에 미군기지를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런 미국이 이제 중동지역과 유럽지역에서 미군을 철수하거나 그 규모를 줄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미국이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이를 비난하였던 중국이 막상 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니 미군의 철수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은 다시 이슬람 테러세력의 요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프간과 인접해 있는 세속적 회교국가들의 정부가 위험해지고 이들 나라가 근본 이슬람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중국 신장지역 위구르 회교도들의 독립을 지원할 것이다. 이것은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중국 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운동을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니 중국이 다급해졌고, 미군의 철수로 힘의 공백이 생긴 아프간에 중국이 개입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갑자기 중앙아 국가들을 순방하고 탈레반 제2인자를 베이징으로 초청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국제정치와 지정학은 힘의 공백을 싫어한다. 미국이 비우는 자리는 다른 세력이 그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다. 미국 덕분에 국경지역 안정을 누리던 중국이 급해졌다는 것은 이런 지정학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이제 중국이 자기 뒷마당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련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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