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위·조작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25일 새벽 여당 단독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것과 관련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와 최연숙 사무총장이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당이 야당 반대와 여론의 우려에도 언론중재법 처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내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지만 당 지도부는 외신기자단을 대상으로 별도의 설명회를 여는 등 개정안 강행 처리 의지를 거듭 표하고 있다.
29일 정치권에서는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정국을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뜨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전날에도 대변인 논평을 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힘을 싣는 더불어민주당을 재차 비판했다.
임승호 대변인은 민주당이 전날 개최한 언론중재법 외신간담회를 언급, "언론중재법 적용 대상에 외신이 포함되는지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이어 "외신기자들을 부른 자리에 한국어 자료만 제공하고, 영어 질의에는 제대로 답변조차 못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했다"며 "기자들의 의견을 듣는 외신기자 간담회가 아니라 언론중재법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외신기자 통보회'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싶으니 일단 통과시키고 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민의힘 소속 정진석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 선택해야 한다면 정부 없는 언론을 주저 없이 선택하겠다'는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발언을 인용하고 "문재인 정권은 정반대다. 그들은 언론 없는 정부를 간절히 원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최형두 의원 역시 SNS에 글을 올리고 "언론중재법이 언론재갈법, 언론징벌법이 돼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 지도부도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5일 새벽 4시경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여당의 일방적 의사 진행에 반발하며 의결 전 퇴장했다.
이후 민주당은 당일 본회의를 열고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로 본회의 개최를 30일로 미뤘다.
그럼에도 언론중재법 처리 강행을 두고 당 안팎은 물론 국외에서도 우려를 내놓자 민주당은 지난 27일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 설명회까지 개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자리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유권해석과는 정반대의 답변을 내놔 외신기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앞서 문체부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신문·신문사업자·방송·방송사업자 등의 정의에 대해 신문법 등을 따르고 있는 만큼 국내 언론사에만 적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당 미디어혁신 특위 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은 "법 해석상 언론 등에 외신도 포함된다고 보는데 문체부가 다른 안내를 한 것 같다"며 "문체부가 어떤 이유에서 안내했는지 확인해서 필요하면 문체부를 통해 전체 공지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체부의 유권해석처럼 외신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최종 해석될 경우 추가 보완 입법을 할 것이냐'는 질의에 "특위에서 아직 그 부분까지 논의한 바 없어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한 외신기자는 "문체부가 우리에게 답변한 내용과 정반대"라며 "정리도 안 된 상황에서 왜 30일에 통과시켜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법사위원인 김용민 의원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윤호중 원내대표가 소집해 비공개로 열린 언론중재법 추가 논의를 위한 미디어특위-법사위원-문체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줄 잇는 개정안 비판에 민주당 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눈에 띈다.
개정안 처리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송영길 대표는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는 의원들과 비공개 면담을 하고 이들 의원의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지도부 역시 심상치 않은 반대 여론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미디어특위(김용민)·법사위(박주민)·문체위(도종환·김승원) 소속 의원들과 연석회의를 열고 개정안 처리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언론과 시민단체 의견을 더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침묵을 유지 중인 청와대에서도 신중한 기류가 감지된다.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정국 경색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날 송 대표와 면담한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수석이 송 대표에게 청와대의 우려를 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날 방송 출연을 통해 "이 수석에게 직접 물어보니 송 대표와 잠깐 얘기를 나눴을 뿐, 전혀 그런 얘기(언론중재법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박 수석은 "언론중재법은 기본적으로 국회의 영역에 있는 문제"라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거듭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저희가 이 민감한 문제에 관심을 끊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회는 찬성과 반대 목소리가 용광로처럼 어우러져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을 도출해내는 민의의 전당"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머리를 맞대고 현명하게 이 문제를 잘 처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손해배상액 산정을 해당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과 연계하는 규정도 담았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과 관련한 청와대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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