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영변 원자로 재가동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미 대북 협상의 변수가 커졌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카드를 꺼내든 것은 중단된 북·미 대화 재개를 앞두고 영변 핵시설이 여전히 유효한 대미 협상카드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경제 재재 타개 등 협상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 징후...北 플루토늄 원자로 가동 재개한 듯
29일(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7월 초부터 영변 핵시설 원자로에서 냉각수 방출 등 여러 징후가 있었다"며 북한이 영변의 플루토늄 원자로 가동을 재개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조성된 영변 핵시설은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약 891만 m²) 규모로 북한 핵물질 생산의 최대 거점으로 꼽힌다. 국제사회와 미 정찰위성은 5MW 원자로의 열기와 증기 방출 여부 등을 실시간 정밀 감시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실시간 감시를 받고 있는 영변 핵시설에서 냉각수를 방출한 것은 의도적으로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임기 말을 맞은 문재인 정부와의 협상보다 미국과 직접 상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2년 반만에 다시 꺼내든 '영변 核카드'...협상 유효성 재확인
북한이 실제 핵시설 재가동에 들어갔다면 2018년 12월 이후 2년 반 만에 '영변 카드'를 다시 꺼내든 셈이다. 앞서 북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핵 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북제재 해제와 맞바꾸려고 했지만 결렬됐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영변을 무력화할 테니 민생과 관련한 다섯 종류의 제재를 완화해 달라"고 제시했고, 미측은 ‘영변+α’를 요구했다.
북한이 다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것은 향후 북·미협상의 재개를 앞두고 협상카드의 유용성 등을 재확인하는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 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영변핵시설의 재가동 징후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강조해 온 국방력 강화,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를 위한 핵활동의 일환으로 볼수 있으나 영변 핵시설이 여전히 유효한 대미 협상카드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날 IAEA 분석 결과와 관련해 "긴밀한 한·미공조 하에 북한 핵미사일 활동 지속 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한·미 정부가 IAEA의 주요 회원국인 만큼, 북한의 영변 플루토늄 원자로 재가동을 사전 인지하고 긴밀한 협의를 진행해온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양국은 대북 정책 공조 모드를 더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대북 공조 모드 강화할 듯..."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긴요한 시점"
이런 가운데 이날 미국을 방문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인도적 지원을 통한 '한반도 프로세스' 재가동을 거듭 강조했다. 노 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가급적 여러 분야에서 북한과의 인도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패키지를 만들어가고자 미국 측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이 긴요한 시점"이라며 "일단 가능한 분야에서 필요한 사전 준비 같은 것을 해놓고 기회가 되는 대로 북측과 협의를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북측의 동의 내지는 긍정적 반응이 있어야 이러한 협력 프로젝트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최근 아프간 사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제시한 북한의 영변 카드로 인해 오히려 미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 본부장은 오는 9월1일까지 워싱턴DC에서 미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등 미국 조야 인사를 만날 예정이다. 이번 방문은 성 김 대표의 방한 계기에 이뤄진 한·미 간 협의를 이어가기 위한 것으로, 미국 측의 초청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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