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새로운 내용이 없다. 모두 문재인 정부 정책의 답습이요, 판박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단계적 동시행동”도 남북 상생을 위한 “한반도 평화경제체제”도 모두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요, 정책적 의도다. 집권 초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가 오늘처럼 경색되고 적대적으로 된 것에 대한 통찰이 없다. 그것을 그대로 가져오겠다니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현상의 반복일 가능성이 크다. “동시행동” 앞에 가져다 붙인 ‘조건부 제재완화(스냅백)’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협상 카드 정도다. 북한에 이야기할 만한 정책 축에도 끼지 못한다. 국내용에 가깝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그냥 되돌리면 되는데 구태여 그것을 정책으로 포장하여 내놓을 필요가 있을까? 기껏 내놓는 것이 “북한이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분명하게 우리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입장을 밝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따지고 보면 그런 입장도 순전히 우리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에게도 잘못에 대한 나름 이유가 있을 법한데 그것을 섣불리 인정하겠는가 말이다. 북한의 행동은 북한 정권의 결정이다. ‘잘못한다’는 지적에서 지키지 않을 경우의 대응이다. 생각이라도 해보았는지 모르겠다.
셋째, 북한이 없다. 평화정착의 직접적 상대가 북한인데 북한에 대한 고려가 없다. 우리의 시각에서만 평화를 볼 것이 아니다. 북의 시각에서도 평화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모두 남한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다. 공약에서 말하는 “한반도 평화정착의 최우선 과제로 북핵 문제”를 볼 것이 아니다. 평화정착 과제의 하나로 북핵 문제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평화정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북핵 문제 해결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북핵 문제에만 매달리면 평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보라! 지금이 그런 상황에 딱 봉착해 있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평화정착을 위해 반드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상대가 있다.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이 “단계적 동시행동”을 반드시 수용할 수 있게 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기회만 있으면 미국을 향해 한국 정부의 주도성을 이야기해 왔다. 이재명 후보도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주도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해 보았는가? 그런데 왜 그런 구태 반복만 이야기하고 있는가.
넷째, 이재명의 정치철학이 없다. 그의 포부나 의지, 돌파력과 결단 그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이대로는 분단고착이다. 공약을 작성한 참모들은 이재명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대로 훑어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억강부약” 강한 자는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는 신념은 노동판에서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약자를 누르는 강자 미국을 향해서도 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평등 한·미관계와 북·미관계를 풀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를 가지고 미국과 당당히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엇갈리고 모순적인 남북관계개선과 한미동맹강화를 풀어내야 한다. 이재명은 “소통없는 정치는 썩는 물과 같다”고 했다. 그의 내면세계에 자리 잡은 정서, 인생 밑바닥으로부터 그를 일으켜 세운 힘이 소통이다. 그런 소통을 북한을 향해서도, 미국을 향해서도 해야 한다. 소통할 때 남북관계는 여지없이 좋았다. “정치적 판단 기준은 국민뿐”이라고 한 이재명. 대외정치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재명의 말을 이렇게 바꾸자.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 미국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 한국과 북한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로 남북한이 함께 잘사는 대동세상을 향해...” “이재명은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통일정책 공약대로라면 “이재명은 못합니다”가 될 것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 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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