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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칼럼] 가계빚 혼쭐내겠다는 금융당국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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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입력 2021-09-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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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최근 신임 금융위원장이 부임하면서 언론은 ‘가계부채와의 전쟁 선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서슴지 않고 쏟아냈다. 정말 그런 선동적 표현을 했는지 취임 이후 보도 자료를 확인해 보니 '선제적 대응', '잠재리스크 뇌관 제거', '금융 불균형 완화', '잠재부실과 거품 양산', '금융안정 위협', '영국은 재앙을 알지 못했다', '과도한 부채 누적' 등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전쟁은 아니더라도 가계부채와의 대테러전을 치르겠다는 각오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가계부채는 정말 사회악인가? 소크라테스는 신성모독과 청년을 혹세했다는 고발로 받아든 독배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변명했다고 플라톤이 전한다. 그러나 가계부채에 대한 변명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평생을 가계부채의 혜택으로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과 의무감으로 필자가 가계부채의 변명을 대신 시도해 본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낸 이후 관련 금융연구원과 같이 내놓는 대국민 설득용 내러티브(narrative)를 요약하면 이렇다. (1)가계부채가 규모와 속도에서 세계 최대이고 (2)이 돈들이 주택가격 폭등과 주식시장 버블에 쏟아져 들어갔는데, 특히 이를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어 더욱 상황이 불량하며 (3)이런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테이퍼링, 금리 인상을 하면 조만간 자산버블 붕괴, 신용 붕괴 등 금융위기가 발생할 거라는 것이다. 이를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LTV, DTI를 조임은 물론 차주별 DSR을 도입하여 소득이 있는 자만이 -전세 대출도 제한에 포함하면 집 있는 자만이- 부채 혜택을 보는 사회를 만들어 가계부채의 김매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지난 1월 세계의 부채 파동(Global Waves of Debt)이란 특별보고서를 내면서 세계부채는 2018년까지 GDP 대비 230%에 도달했고, 2010년 이후 세계의 부채 증가는 글로벌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만의 가계 부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부채를 GDP에 대비하는 것은 DTI와 유사한 개념으로 국가의 소득 대비 상환 능력을 보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2020년 한국 가계부채 비율은 104%로 전년 대비 16.5% 증가했지만, 기업부채 비율도 역시 111%로 16.7% 증가했다. 세계은행은 부채 종류 구분 없이 국가별 총부채의 증가를 주목하는데, 한국의 총 부채비율은 2020년 259%로 미국(296%), 일본(418%), 영국(304%)에 비해 낮은 상황이다.

한편 한국 경제는 국가부채가 약 43%로 선진국에 비해 극히 낮고 대신 민간부채가 높은 상황이다. 즉, 2020년 미국 등 선진국은 국가부채를 사상 초유의 규모로 늘렸지만, 한국은 정치권과 경제 관료들의 자만심·정쟁·탁상공론으로 가계경제 지원에 소홀하게 되면서 가계는 생존을 위해 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장 잘산다는 미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약 10조 달러 이상, GDP의 약 50% 가까이 기업·가계를 지원했다는 것을 주목하자. 이에 반해 주택가격을 잡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난을 받던 한국 정부가 가계부채, 청년 투기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세계 경제의 부채 증가는 달러화가 금본위제의 사슬을 끊고 국가가 필요에 따라 화폐를 발행하는 순수 법정 화폐제도로 들어선 1970년 이후 고질적인 현상이다. 세계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까지 세 번의 부채 파동이 있었고, 모두 금융위기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은 불평등 확대와 함께 케인지안이 퇴장하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보수정치와 손잡으며 탄생시킨 금융 세계화의 부수적 피해라는 견해도 있다. 또한 같은 기간 만성적인 저성장이 진행되었는데, 이를 극복하려는 중앙은행과 정부의 반응인 저금리가 부채 파동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많은 경제학자들은 저성장의 배경에는 소득 불평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추세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은 줄기차게 저금리를 고수하겠다고 주장한다. 언론과 금융당국은 테이퍼링이 다가왔다고 강조하지만, 필자가 보는 -최근 세계경제포럼 기조연설까지 포함해서- 제롬 파월의 일관된 시그널은 국민, 특히 서민들의 고용과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통화 긴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이 태도는 최대 고용(maximum employment)이 법적 의무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무가 명시되지 않은 우리 경제, 금융당국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금융위기의 희생양으로 가계와 청년을 당장 마녀사냥하겠다는 것과는 상당히 비교된다.

저성장과 소득 불평등의 시대에 가계는 부채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금융회사의 꽤 상위권 고연봉자였음에도 주택담보대출, 자녀 둘의 교육을 감당하면서 한시도 마이너스 대출을 놓아본 적이 없다. 이런 경제 환경에서 많은 베이비부머가 은퇴 후 대비는 꿈도 못 꾸고 퇴직하며, 일부는 소상공인 대열에 합류한다. 또한 많은 청년이 학자금 대출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사회 초년병부터 자산보다는 부채와 친해야 한다. 이들에게 부채는 향락 수단이 아니고 하루를 살기 위한 도구이다. 일부 서민 또는 청년은 더 악화할 불평등의 타개책으로 주택이나 주식에 목숨 걸고 투자했다. 한 해외연구는 경제적 불평등과 가계부채, 주택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은 빈자의 사회적 욕구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와 금융이 그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주택이 사회적 욕구 실현의 1순위라는 연구도 있다. 이것이 필자가 보는 가계대출 증가의 진정한 내레이터이다.

일부 소수의 영끌, 빚투는 핀셋으로 집어 정리하는 것이 맞는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선거 패배를 서민 가계대출에 잘못 화풀이하면 일본형 장기 불황도 무시할 수 없고, 자살률·범죄율·우울증 증가라는, GDP로 산출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가계부채로부터 금융 시스템만 보호하고, 서민 가계 회복을 외면한다면 성장은 차치하고 심각한 사회적 불안이 찾아올 수도 있다. 가계대출이 위험하다면 국가부채로 대체해 주는 과감한 경제정책이 저성장 극복과 가계부채 위험을 동시에 개선하는 대책일 것이다. 일시적인 재난 지원으로 생색내지 말고 복지금융을 생각해 볼 때다. 그래도 꼭 가계부채를 회수하고 싶으면 샤일록에 대한 재판처럼 서민가계에서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도려가기를 바란다.


조수연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 석사 △하나금융투자 상무 △ 금융투자분석사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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