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수가 적막을 깬다. "아니, 내가 캐디백을 내리려는 데 경비가 내리지 말라고 하자나, 그러더니 캐디냐고 묻더라."
이야기를 듣던 사람은 "별일이 다 있네요"라며 웃었다. 적막을 깬 사람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8승에 빛나는 이강선(72)이고, 이야기를 듣던 사람은 7승을 거둔 조철상(63)이다.
앞 조인 조철상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일찍 1번 홀(파4) 티잉 그라운드에 와서 말을 걸었다. "내 머리가 희어서 그런가"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모두 박장대소했다.
분위기가 유쾌해졌다. 이강선은 이정환(30)을 보고는 "어, 너 군대 갔다 왔냐"라고 물었다. 이정환은 모자를 벗고, 깍듯하게 "네 다녀왔습니다"라고 답했다.
티잉 그라운드가 두 전설의 만담에 빠졌다. 덕분에 '굿샷~'과 박수 소리도 커졌다. 무관중인 것을 잠시 잊을 정도다. 본인 차례가 됐을 때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72세의 호쾌한 스윙과 함께 환호가 터졌다.
기자회견장에서도 유쾌함은 이어졌다. 통산 11승에 빛나는 최윤수(73)와 국가대표 송민혁(17)이 나란히 앉았다. 나이 차이는 무려 56세.
최윤수는 "출전 기준이 5년에서 역대 우승자로 바뀌면서 출전하게 됐다. 나오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기대에 부응하고자 이강선과 같이 나오기로 했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송민혁은 "추천 선수로 출전하게 됐다. 대선배님(최윤수), 김동은(24) 프로님과 함께해서 영광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송민혁은 최윤수가 누구인지 몰랐다. 송민혁은 "한 조로 편성된 뒤 검색해봤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말에도 최윤수는 "나보다 드라이버가 100m는 더 나간다. 이런 선수가 있음에 코리안 투어가 발전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최윤수는 송민혁의 눈을 보며 "앞 3홀, 끝 3홀에 집중해야 한다. 라운드마다 목표 점수를 정하고, 점수에 도달했는데 우승하지 못했다면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조언했다.
두 선수는 56년의 세월만큼 골프를 시작한 방식도 달랐다. 어린 시절 최윤수의 집은 골프장(전 서울 컨트리클럽)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 옆이었다. 덕분에 출입도 자유롭고, 주말이면 일(캐디)을 했다. 이후에는 연습장에서 숙직을 했다. 밤새도록 골프채를 휘둘렀다. 송민혁과는 정반대다. 송민혁은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골프에 전념하고 있다. 함께 방문한 연습장에서 공이 홀에 들어가는 소리에 매료됐다.
최윤수는 1987년 7회 대회(신한동해오픈)에서 썬중샌(대만)을 7타 차로 누르고 우승했다. 당시 우승 상금은 1200만원. 30년 뒤인 지금은 2억5200만원이다. 최윤수는 "당시 우승 상금은 평균 500만원 정도였다. 1000만원이 넘어가는 것은 신한동해오픈이 유일했다. 우승하고 대만 선수가 아닌, 한국 선수의 이름이 올라서 많은 이들이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최윤수는 이날 버디 1개, 보기 9개로 8오버파 79타를 때렸다. 이에 대해 그는 "90타를 치자고 다짐했다. 오늘 79타를 쳤다. 11언더파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코리안 투어의 산증인인 최윤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귀감이 되는 선수로서 코리안 투어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73세 노인은 주름 잡힌 입을 어렵사리 열었다. "일본은 선수에 대한 대우가 좋고, 선후배 관계가 잘 돼 있다. 골프장과 갤러리에게도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대우와 선후배 관계가 없다. 빈약하고,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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