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구들과 가끔 찾는 제주도는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기엔 혼자 가기에도 참 좋다. 방역수칙 잘 지키며 코로나를 피하는 ‘피코’에 제격이다. 짧은 휴가, 숲과 바다를 찾아 제주에 갔다 이건희와 이중섭, 두 거장을 맞닥뜨렸다.
지난 7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로 27 <이중섭미술관>에서 70년 만에 서귀포로 돌아온 화가 이중섭의 귀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이중섭(1916~1956)은 일제 강점기 북한에서 태어나 월남, 한국전쟁 전후를 남한에서 보냈다. 소, 가족, 게, 어린이, 은지화, 서귀포 등이 열쇳말(키워드)이다. 여기에 이건희, 삼성이 더해졌다.
2층에는 ‘아빠 이중섭’이라는 제목의 미디어아트도 상영 중이다. 이중섭의 가족 사랑을 잘 보여주는 편지와 작품을 음악과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미술관 옥상에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 구도과 비슷한 포토존도 설치됐다.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중섭 가족은 전쟁을 피해 제주로 온 피난민이었다. 서귀포 1년은 초가집 방 한 칸 세 들어 살던 궁핍한 시기였지만 온 가족이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으로 가득하다. 많은 작품에서 그런 추억이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삼성측으로부터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 하늘이 내린 축복과도 같은 선물이었죠. 우리 미술관 규모가 크지 않으니까 이건희 콜렉션 중 이중섭 화가의 서귀포 시절과 연관있는 대표작품 12점을 추려서 보내주신 듯합니다. 다른 이중섭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으로 기증했고요.”
그의 대답에 ‘관리의 삼성’을 떠올렸다. 작품을 기증하기 전 삼성가(家)는 이미 어디에 어떻게 할지 다 치밀한 계획이 있었고, 실제로 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 주로 기증했지만 지역 문화예술도 잊지 않았다. 이중섭미술관 말고도 강원도 박수근미술관, 대구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 5곳에 각각 인연이 있는 작품을 기증했다.
삼성이 직접 하면 이렇다. 하지만 그와 사뭇 다르게 진행되는 ‘이건희 유훈’이 있다. 여기엔 ‘3류 행정관료’가 맞닿아 있다.
정부에 5000억원을 기부한 ‘중앙감염병 전문병원’이 그것이다. 미술품 기증과 함께 삼성가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 대응 극복을 위해 모두 7000억원을 기부했다. 이중 5000억 원을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써야 한다고 용도를 특정했다.
기부약정서에 삼성측이 서명하는 순간부터 이 5000억원은 정부의 몫이 됐다. 하지만 행정 관료들은 기부금 관리위원회 구성조차 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이 자리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획재정부가 거액 기부금을 이유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설계 등 초기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당초 2026년 건립 예정이었지만 빨라야 2028년에 가능할 거라 한다. 계획이 없으니, 관리도 없다. 실행력은 있을 리 만무하다.
P.S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위 칼럼이 나간 이후 아래와 같이 입장을 밝혔습니다.
▲삼성 기부금이 들어오면서 기획재정부에서 총사업비 규모 변경을 이유로 사업적정성을 재검토하게 됐다. ▲재검토가 끝나면 2022년 상반기 설계, 26년까지의 완공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 ▲기부금위원회 구성과 사업 일정 지연은 관련이 없다.
이 계획, 입장이 잘 이행될지 계속 지켜보고 살펴보겠습니다. 노력하는 대한민국 관료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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