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면 ‘한국도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간처럼 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군은 유령군대나 다름없는 아프간 군과 다르고,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 도하 평화협약(2020년 2월 체결)도 문재인 정권의 평화구상(종전선언)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잡아두기 위해 한미 동맹국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을 통해 한국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은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는 게 아프간 사태의 진정한 교훈”이라는 거다.
문 이사장의 주장은 안보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오랜 논쟁의 두 축 중 진보좌파의 견해를 대변한다. 그는 국제정치 이론상으로는 이상주의자(실용적 이상주의자?)에 가깝고, 남북이라는 맥락에선 ‘동맹파’에 대비되는 ‘자주파’로 지칭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이래 이런 햇볕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북에 대한 선의(善意)를 강조하고, 안보에 대한 감성적(정치적) 접근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상황인식에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낸다.
‘카불의 교훈’에 대한 엇갈린 시선
문 이사장은 탈레반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준 아프간의 ‘도하 협약’과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구상’도 다르다고 했다. 물론 구체적인 맥락이나 내용은 다르겠지만 양쪽 다 실질적인 진전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선 같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개선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구상(프로세스)은 지속가능한 성과 없이 몇 차례의 정상회담만으로 끝났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뒤처리를 위해 열린 1815년 빈회의(Congress of Vienna)에서 나왔던,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Le Congrès danse, mais il ne marche pas)는 말을 떠올리게 했을 뿐이다.
어떻게든 한반도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문 대통령의 선의와 집념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국민의 뇌리에 남은 것은 흡사 ‘갈라 쇼’ 같았던 남북, 북·미 간 정상회담 위로 오버랩 되는 북한 지도부의 경멸과 막말뿐이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한·미군사훈련을 축소하고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린 ‘대북전단 살포금지법’도 만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냉소와 조롱뿐이었다.
‘열린 자주국방’으로 가야
문 이사장이 제기한 “전시작전권의 조기 환수“ 주장도 톺아볼 필요가 있다. 전작권 환수를 자주국방의 핵심으로 본 것인데 자주국방이란 지정학적 안보환경 속에서 독자적으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종합적 생존전략을 확보하는 것이다. 관건은 전작권의 환수보다는 동맹을 활용한 국제협력적 자주국방, 곧 ‘열린 자주국방’의 실현 여부에 있다. 그런데도 문 이사장은 “동맹과 미군을 상수로 간주하는 타성에서 벗어나라,…미군에게만 기대려했던 아프간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지 마라”고 질타했다. 자주국방도 단계가 있다. 전후(戰後) 가장 성공한 동맹으로 꼽히는 한·미동맹을 어떻게 아프간 군의 대미(對美) 의존에 견줄까.
자주국방을 위해서는 안보수요에 상응하는 전력(戰力)의 확보는 물론 국민의 확고한 안보의식에 기초한 무형의 정신전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 과연 그런 방향으로 나아갔는지부터 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한·미연합훈련은 축소되고, 군 내부는 잇단 부조리와 기강해이 논란에 시달렸다. 이런 일들은 군(軍)에 대한 이 정권의 인식과, 안보보다는 대북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처럼 비친 행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프간 사태 앞에서 국민이 안보 걱정을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런 일이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걱정을 해야 경각심도 갖게 되고 대비도 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진보좌파는 이런 유의 불안감에 덤덤해 하거나, 부정적이다. “냉전시대도 아닌데 공연히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고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안보불안을 구실로 반민주적 행위를 자행했던 탓일 게다. 그렇다고 걱정까지 안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스냅백? 줬다가 빼앗기가 더 어렵다
제발 걱정 좀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말이 아닌 성과로 보여 달라는 게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 기세등등하던 운전자론, 중재자론, 촉진자론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문 이사장은 민주당의 대선주자인 이재명 지사의 외교안보 자문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임동원, 이종석 등과 함께 라고 한다. 이로 미루어 이 지사 캠프의 대북정책은 문 이사장의 지론인 ‘스냅백’(snapback)방식이 골간을 이룰 게 분명하다. ’스냅백’ 방식(이론이 아니다)이란 게 뭔가. 북에 제재를 완화해주되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때는 다시 제재를 가한다(원상복구)는 것이다.
제재를 풀었다가 다시 가한다고? 그게 가능할까.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뭐든 풀기는 쉽지만 원상복구 하기는 어렵다. 북이 고분고분하게 그걸 받아들일까.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재(再) 제재에 흔쾌히 동의해줄까. 애초 유엔 제재도 중‧러의 반대 속에 간신히 성사시켰다. 제재 후에는 중국이 ‘뒷문’을 열어줌으로써 그 효과를 얼마나 반감시켰나. 그런데도 풀었다가 다시 묶는다고? 아마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북정책이 作名家들의 놀이터
‘스냅백’이란 역대 정권 대북정책의 근간을 이뤄온 ‘당근과 채찍’ 정책에 다름 아니다. ‘스냅백’이란 영어이름만 안 썼을 뿐이다. ‘당근과 채찍’이 북에 먹혔던가? 천만에. 북은 당근만 받아먹었을 뿐이다. 일찍이 중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 장렌구이(공산당 중앙당교교수)의 말대로 햇볕정책이란 미인계(美人計)를 썼더니 ‘미인’만 받고 ‘계’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문 이사장을 비롯한 진보좌파 쪽 사람들의 언어구사 능력은 인정하나, 이건 아니다.
대북정책이 작명가(作名家)들의 신조어(新造語) 경쟁 놀이터가 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조금 자제할 때도 됐다. 실체보다 이름(명칭)에 더 신경을 써서야 제대로 된 대북정책이 나오겠는가. 대북정책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북의 실체를 보지 못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통일부장관까지 지낸 인사가 김정은을 “훌륭한 CEO”라고 추켜세우는 그런 인식 속에서 균형 잡힌 대북정책이 나오겠는가.
이쪽에서 어떤 정책이나 제안을 들고 나가도 북이 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물론 인정한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후속 조치에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자, “북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 이사장이 대북담론계의 좌장이라면 그런 한계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역량과 상상력을 보여줘야 한다. 언제까지 보수우파 탓만 할 건가.
‘카르텔’이 된 진보좌파 4인방
나는 진보좌파 진영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우파진영은 그런대로 세대교체가 됐다. 이홍구 안병준 이상우 한승주 하영선 등의 뒤를 이어 현인택 윤덕민 김성한 홍규덕 등이 활동 중이다(연령순, 직함 생략). 그러나 진보진영은 임동원, 정세현, 문정인, 이종석, 4인이 30여년째 대북 진보담론을 틀어쥐고 있다. 4인 중 통일부 장관을 지낸 사람만 셋이다. 그러다 보니 정체돼 있다. 역동성도 참신한 발상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 전문가는 이들이 “박스권에 갇혀 있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남북문제에 매달려온 후학들의 기회마저 막고 있는 셈이다. 진보 쪽에도 역량 있는 전문가들이 줄을 서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지난 5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입장에서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외교안보 노선을 고집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이제는 어른답게 후학들에 물려주고 물러나야 한다.”(조선일보 2021년 5월 17일자)
문 이사장이 ‘스냅백’ 운운할 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이 2018년 가동 중단된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 중이고, 우라늄 농축 징후까지 포착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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