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최신형 정치부장, 정리=김해원 기자] 미·중의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문제 등 군사·안보 문제를 포함해 무역·산업 등 경제분야까지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미·중 정상은 연일 서로를 겨냥한 날카로운 설전을 주고받으며 패권 경쟁에 물러설 뜻이 없다는 신호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자원을 집중하고 있고 내년 '시진핑(習近平) 집권 10년'을 맞는 중국도 대(對)중국 포위망에 균열을 내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양국 갈등이 격화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했던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을 신속하게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위기 때마다 미국의 동북아 동맹 체제에서 '약한 고리'로 꼽히며 흔들리고 있어서다. 이에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7일 세종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향후 한국이 받는 압박은 강도를 더할 것"이라며 "새로운 외교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정 위원과의 일문일답.
◆"미·중 경쟁, 역내→글로벌로 확대...韓외교 어려운 숙제 직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10~15일 동아시아 4개국을 순방했다. 대미 견제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하는가.
"베트남, 캄보디아, 싱가포르, 한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다. 왕이 부장의 이번 방한은 미국의 대중 압박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의 방한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는 아프간 사태 이후 떨어진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떻게 하든 대(對) 중국 전략을 본격화할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 입장에선 위 아세안 국가들과 사전 탐색이 있어야 한다. 호주, 일본 등은 대중 전략이 명확한데 한국이나 싱가포르 등은 중립적인 국가로 꼽히기 때문에 사전 점검 및 소통, 견제 차원의 다목적 포섭의 방한으로 해석된다."
-왕이 방한 이후 미국·영국·호주의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가 발족됐다. 우리 정부에도 압박이 될 것인가.
"트럼프 대중 전략은 역내로 포커스를 뒀다면,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전략은 전 세계로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오커스 발족은 한국 정부의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전통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영어권 5개국 정보 동맹인 '파이브아이즈(Five Eyes)', 미국·일본·인도·호주 등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전부 바이든 정부의 다자주의적 전략이다. 다자주의 전략 틀을 만들어서 중국 봉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특정한 포커스를 두고 중국을 압박시키는 전략이다. 한국은 글로벌 차원에서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역내 측면이면 우리가 움직일 틈이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의 글로벌 차원의 전략에서는 고립될 수도 있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 역내에 집중됐을 때도 전략적 모호성 리스크가 컸는데, 글로벌로 확산됐을 때 한국 위기는 어느 정도인가.
"역내 경쟁은 과거처럼 역내 이외 국가와 새로운 통합체를 만들어서 미·중 간 균형을 이루는 게 가능했다. 그간 한국은 중견급 외교를 추진했는데, 미·중 갈등 속에서 멕시코나 캐나다, 호주, 유럽 등 국력 비슷한 국가와 연대하는 균형자 외교가 가능했다. 하지만 글로벌 차원으로 가면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유럽까지 들어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간 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유럽과 호주, 캐나다가 전부 미국 편에 서면 공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3세계 국가와 연대하기도 쉽지 않다. 어려운 국면에 직면했다."
◆"국제 정세 흐름 변화...한국 외교 전략적 모호성 불가능"
-한국 외교가 미·중 간 양자택일을 할 순간이 올까. 기존 '전략적 모호성' 버려야 할 때인가.
"앞으로 한국 외교가 전략적 모호성으로 움직일 공간은 줄어들 것이다. 과거엔 중국문제를 역내 국가만 다뤘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차원에서 주요 어젠다가 될 것이다. 특히 오는 12월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는데 가치, 인권,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까지 들어올 경우 전략적 모호성은 어려울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헤게모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인도·태평양문제에 유럽국가도 개입할 조짐이 있는데 미·중 갈등이 사실상 글로벌 게임이 된 것이다. 당장 미·중 간 선택은 리스크가 크다. 다만 흐름과 방향을 인지하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이런 구도가 가속화된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할지 전략을 짜야 한다. 이미 국제 정세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흐름을 모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 된다."
-향후 기업들 타격도 우려되는데, 한국 기업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군사적 리스크보다 경제적 리스크 즉, 4차 산업 혁명을 중심으로 한 기술 경쟁이 더 격화될 것이다. 물론 남중국해나 대만 이슈도 뜨겁지만, 군사출동은 워낙 리스크가 커서 양국 모두 조심할 것이고 대신 반도체와 배터리 등 기술 갈등은 치열해질 것이다.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삼성 등 국내 대기업에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공급망)을 만든 것도 이 같은 측면이다. 미국 주도의 서플라이 체인에 중국도 불만이 많겠지만, 미국 역시 쉽게 봐주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여기에 대응해 리스크 분산을 해야 한다. 물론 중국 시장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장도 고려해야 한다. 4차 산업 혁명의 모든 기술력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척을 지어서 갈 순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계속 중국의 기술 우위를 막으려고 노력할 것인데, 그런 상황에 한국 기업이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미·중 패권 경쟁에서도 머리를 잘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대만 TSMC 등을 보면 국제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 글로벌 기업으로 올랐다."
◆"中, G2 갈등 격화될수록 공산당 체제 강화할 것"
-최근 중국 내 연예계 정화 운동,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 확산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동부유 정책' 목적은.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사회주의 체제, 공산당 체제는 강화될 것이다. 중국은 미·중 간 갈등 속에서 사회주의적 요소가 약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정신무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외부 리스크 속에서 내부를 컨트롤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든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국가를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그 단계 측면에서 '공동 부유'를 내놓은 것이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지난 7월 1일, 공산당 100주년 이후 '할 말 하겠다'는 기조로 강한 중국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강한 중국, 중국의 내부 통제 흐름은 향후 더 강화될 것이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 계기 남·북·미·중 4자 회담 가능성은.
"남·북·미·중 회담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코로나19 상황으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의 입지도 불안한 상황이어서 불가능하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남·북·중 3개국 정상회담을 하려고 할 것이다. 코로나 상황을 봐야 하지만 북·중관계를 봤을 때는 나름 밀접하기 때문에 북한은 중국이 움직일 경우 나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이 문제다. 내년 대선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 내 반중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도쿄올림픽에는 불참했고, 시진핑 주석이 방한도 안 했는데 왜 가야 하는지 등 여러 요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3국이 만났을 때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하는데 대북제재로 인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내년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새 정부도 들어선다. 다음 정부의 과제는 무엇인가.
"미·중 갈등에서 한·중 관계가 영향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음 정부에서도 중국과 전략적 소통은 이어가야 한다. '외교·안보분야 2+2' 소통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미·중 경쟁 속에서 상호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따라서 국가 전략을 짤 수 있다. 또한 미·중 갈등이 4차 산업혁명 협력으로 번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중국도 한국의 첨단 분야 아니면 협력하고 싶어하는 게 없을 것인데, 중국도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반도체 동맹 등 가능한 것이 있으면 협력해야 한다. 또한, 국내에 번진 반중 정서에 대해서도 정부가 주도해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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