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상장사의 인수·합병(M&A)과 기업분할 등이 소액주주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액주주의 의사는 무시되고 대주주나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요한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현대중공업 상장으로 울먹이는 한국조선해양 주주들
특히 최근 LG와 SK, 현대중공업, 롯데 등 대기업에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사례가 많아졌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상장된 모기업이 알짜 사업부를 떼어내 상장하거나 기존 비상장 자회사를 상장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지주사 할인 문제다. 일부 상장사는 국내 기관투자자 중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조차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며 반대표를 던졌지만 자회사 상장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었다.
가장 최근 지주사 할인문제가 불거진 곳은 현대중공업이다. 지난달 17일 공모가 6만원에 상장한 현대중공업은 이달 1일 장 마감 기준 11만3500원으로 89.17% 올랐다. 시총기준으로 4조7494억원 증가했다. 그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상장 직후 조선업 대장주로 등극했다.
반면 현대중공업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던 한국조선해양의 주가는 이 기간 11만8500원에서 9만7000원으로 18.14% 줄었다. 시총으로는 1조5216억원 줄었다.
양 사의 주가가 엇갈린 것은 기존 한국조선해양의 기업가치 대부분이 조선업을 영위하는 비상장 자회사 중 바로 현대중공업이 쌓아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업 계열사에 투자하려면 이제 한국조선해양을 거칠 필요 없이 현대중공업 주식을 곧바로 사면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기존 한국조선해양의 주주들은 현대중공업을 분사해 따로 상장하려면 기존 주주들에게도 현대중공업의 지분을 나눠주는 '인적분할'을 진행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적분할을 했더라도 지주할인은 피하기 어렵겠지만 양사 모두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수익과 손실의 상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지주사 분사와 상장은 '물적분할'이 대세다.
IPO 최대어 기대주 LG엔솔…LG화학 주주는 노심초사
상장 모회사의 비상장 자회사가 상장할 경우 모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지주할인'은 지난해부터 이슈였다.
지난해 LG화학이 배터리사업을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개인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당시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의 분사를 물적분할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은 LG화학 주주들에게 배분되지 않았다.
이에 LG화학의 2대 주주(10.33%)였던 국민연금도 핵심사업의 분사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문제를 이유로 배터리 사업 분할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결국 분할안은 주총을 통과했다. 분할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LG화학의 주가는 6%가 넘게 빠졌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GM의 리콜 사태로 상장 시기가 미뤄지고 있지만 빠르면 조만간 상장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관측이다. 그럴 경우 LG화학 주주들 입장에서도 본격적인 지주할인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LG 측은 배터리 사업부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진행한 사업분할이라는 입장이지만 개인주주들의 주주가치 훼손에 대해서 특별한 대책은 없다.
SK, 연이은 사업부 분할·상장 러시…지주할인 불가피
SK도 사업을 분할하면서 여러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2018년 SK케미칼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분사한 SK바이오사이언스도 지주할인을 유발한 것이다.
SK케미칼은 지난 4월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를 상장한 뒤 주가가 크게 내려갔다. 연초 45만원 선을 바라본 주가는 현재 26만원대로 내려갔다. 추가로 SK케미칼은 조만간 유틸리티 사업부를 물적분할 해 'SK멀티유틸리티'를 신설하고 이를 상장할 예정이다.
이에 SK케미칼의 움직임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싱가포르계 사모펀드 메트리카파트너스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을 팔아버리라는 주주제안서를 회사 측에 보내기도 했다. 지주할인을 유발하며 주가를 떨어트리느니 팔아버려 그 돈을 배당해버리라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실현될 가능성은 적지만 SK케미칼의 잇따른 자회사 분할과 상장에 대해 기존 주주들의 불만을 느낄 수 있다.
추가로 SK이노베이션도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사업부분을 물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 입장에서는 앞서 LG화학 주주들과 같은 일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프리미엄 퍼주는 M&A…주주가치 훼손
자회사 분사와 상장 외에도 주주들의 지분가치를 훼손하는 의사결정은 또 있었다.
최근 롯데그룹의 한샘 인수도 기타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 롯데쇼핑은 IMM PE를 통해 한샘의 조창걸 명예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30.21%의 인수에 나섰다. IMM PE 측과 조 회장 측은 이미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분 매각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롯데쇼핑이 확보할 한샘 지분은 5~6%로 인수 금액은 1조5000억~1조8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재 주가와 비교하면 약 70~100%가량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매겨진 가격이다.
이에 대해 한샘의 2대 주주 테톤 캐피탈 파트너스가 지분 매각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테톤 측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됐고, 그에 따른 수혜를 최대주주가 독식한다는 문제를 짚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영권에 과도한 프리미엄이 발생할 경우 이를 지불한 인수주체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주주환원 정책을 축소하거나 일감 몰아주기 등에 나서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증권업계가 지적하는 포인트다.
증권가 "일방적인 주주가치 훼손…ESG 경영에 반하는 일"
이처럼 소액주주의 주주가치 후손에도 불구하고 대주주가 특별한 견제 없이 주요한 결정을 진행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는 것에 대해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경영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구조로 번역되는'G'에 대한 얘기다.
회사의 경영진이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이사회는 전혀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일반 주주는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주주가 아닌 모든 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야 한다는 가장 기본의 원칙이 무시되는 것이 한국 자본 시장의 현실"이라며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재상장의 경우, 상장 이후 지분 평가액의 65% 정도가 할인되어 모회사 기업가치에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의 경우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 문제를 경영권 거래 시 소액 주주에 대한 의무공개매수 제도 등을 도입해 해결하지만 우리는 견제방법이 없다"며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이 정당화되는 거버넌스의 후진성과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기업 경영과정에서의 부작용,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소액주주의 권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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