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경제] "회색 코뿔소가 몰려온다"...식어가는 경제동력에 정부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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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입력 2021-10-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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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계부채 눈덩이...10월 중 '가계부채 관리방안' 발표

  • 생산 0.2%↓·소비 0.8%↓·투자 5.1%↓...트리플감소

지난 8월 26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붙은 대출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할 수 있는 '회색 코뿔소'와 같은 위험요인들은 확실하고 선제적으로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거시금융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는 계속적인 경고로 이미 알려져 있는 위험요인들이 빠르게 나타나지만 일부러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있다가 큰 위험에 빠진다는 뜻이다.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 대표이사가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발표한 개념이다. 예측과 대비가 어려운 사태를 의미하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는 차이가 있다.

이날 회의에는 홍 부총리 외에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고승범 금융위원장,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자리했다.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 4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2월 이후 7개월여 만이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가계부채 대응 방향과 최근 경제·금융 상황에 대한 점검, 향후 정책 대응 방향, 주요 대내외 리스크 요인·대응 등을 논의했다.
 
빚투·영끌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정부 "더 옥죄겠다"
홍 부총리의 '회색 코뿔소' 발언은 빠르게 증가하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805조9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800조원을 돌파했다. 1년 전(1637조3000억원)보다 170조원 가까이 불어난 것. 증가율로는 10%가 넘는다.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집값 급등이 주원인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을 지수화해 매월 발표하는 종합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 12월 95.2에서 올해 8월 101.8로 6.93% 상승했다.

이처럼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분위기가 계속되자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하게 됐다.

이와 함께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을 위해 각종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도 가계대출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영끌과 빚투로 주식·암호화폐에 투자하는 20~30대 청년층이 증가한 것도 가계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 가세했다.

재정·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은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 속도가 실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며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6%로 잡고 상환능력 내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이달 중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대출이 꼭 필요한 수요자들의 경우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을 폭넓게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가계부채 증가율(작년 동기 대비)은 2분기 기준 12.8%로, 나머지 연령층의 증가율(7.8%)을 크게 웃돌았다. [그래픽=연합뉴스]

 
코로나 4차 대유행 여파로 생산·소비·투자 모두 감소
더 큰 문제는 홍 부총리가 언급한 '회색 코뿔소'가 가계부채 외에도 곳곳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지속되면서 실물경기가 좋지 않다. 같은 날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산업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했다.

전 산업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 지수는 111.8로 전월보다 0.2% 감소했다. 업종별로 보면 광공업 생산과 서비스업 생산 모두 줄었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 지수(계절조정)는 118.5로 전월보다 0.8% 줄었다. 업태별로 보면 슈퍼마켓·잡화점(-6.0%), 대형마트(-4.2%)에서는 전년 동월 대비 판매가 줄었다. 설비투자 역시 전월보다 5.1% 감소했다. 지난해 5월(-5.7%) 이후 15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코로나19 4차 확산이 본격화하면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세 지표가 동시에 '트리플 감소'한 것은 지난 5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생산과 지출이 전월보다 약화하면서 지난달에 이어 경기 회복세가 주춤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로 대면서비스업 중심으로 회복세가 둔화한 측면이 있고 지난달 지표 수준이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과 같은 101.3이었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0.3포인트 하락하며 102.4로 집계됐다. 두 달 연속 내림세다.

어운선 심의관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개월 연속 하락한 것과 관련해 "코로나19 4차 확산 등 하방 요인이 없지 않지만 수출 호조, 백신 접종 확대, 소비심리 반등, 정부의 지원정책 등 상방 요인도 여전히 있어 이런 흐름이 경기 전환점 발생 신호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8월 전(全)산업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 지수는 111.8(2015년=100)로 전월보다 0.2% 줄었다.[그래픽=연합뉴스]

 
기업 체감경기 '뚝'...코로나 확산 지속, 유가·물류비 상승 탓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나빠지면서 신음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 따르면 전산업 업황지수는 84로 전월(87)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BSI는 기업활동의 실적과 계획, 경기 동향 등에 대한 기업가 자신들의 의견을 직접 조사, 지수화해 전반적인 경기 동향을 파악하고자 하는 지표다.

다음 달 전산업 업황전망지수도 86으로 전월(87)에 비해 1포인트 하락했다. 경기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호전될 것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제조업 상황도 좋지 않다. 9월 제조업 업황 BSI는 90으로 전월 대비 5포인트 하락했다. 원자재가격과 물류비 상승으로 고무·플라스틱이 11포인트 급감했다. 전자·영상·통신장비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해외공장 가동률 둔화와 반도체 공급 부족을 이유로 10포인트 떨어졌다. 자동차 역시 해외공장 가동률 둔화와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8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업황 BSI도 일제히 내림세다. 9월 대기업의 제조업 업황 BSI는 전월 대비 5포인트 하락한 101을 기록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전월에 비해 4포인트 떨어진 78을 나타냈다.

BIS가 전월 대비 감소한 것과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지속, 유가·물류비 상승, 추석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 반도체 수급난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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