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3대째 총리 숙원' 결국 좌절...장관 자리도 위태
이날 선거에서 최대 이변은 개혁 성향을 앞세워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던 고노 다로 일본 행정개혁담당상의 성적이었다.같은 수(각각 382명)의 당 소속 국회의원(중·참의원)과 일반 당원이 표를 던져 고노 담당상이 유리할 것으로 점쳐졌던 1차 투표에서 고노 담당상은 255표를 얻어 예상을 깨고 1표 차이로 기시다 전 외무상에 석패했으며, 2차 투표에서는 무려 89표차의 큰 차이로 패배했다. 특히 1차 투표에서 국회의원 표는 86표에 불과해, 146표를 받은 기시다 전 외무상뿐 아니라 114표를 얻은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에게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실상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이끌고 있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98명)의 영향력과 조직력의 성공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기시다 전 외무상은 현재 별도의 파벌인 기시다파로 독립한 상태지만, 과거 호소다파에 소속했으며 아베 전 내각 당시에는 아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호소다파는 무파벌인 다카이치 전 총무상을 내세워 고노 담당상을 견제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노 담당상은 아베 내각 시절부터 아베 전 총리와 의견 충돌이 잦았고, 이에 아베는 고노의 차기 총리 등극을 결사 반대해왔다.
고노 담당상은 지난해 9월 총재 선거 당시에도 출마 의향을 보였지만 결국 출사표를 던지지 못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출마 선언 전 만난 아베 전 총리로부터 "출마 같은 건 스스로 결정하라"는 말을 들으며 문전박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고노가 소속한 파벌인 아소파(54명)의 수장이 아베와 정치적으로 결탁한 사이인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 겸 부총리였던 것 역시 악재였다. 아소 부총리는 고노에 대한 공개 지지는커녕, 아소파에 자유 투표 방침을 내리며 사실상 '비(比)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선거 전날 밤에는 기시다와 다카이치의 선거 캠프가 만나 '선거 연대'에 합의하기도 했다. 두 후보 중 한 사람이 결선 투표에 진출해 고노 담당상과 경쟁할 경우, 두 세력이 표를 몰아주기로 한 것이다. 다카이치 캠프 측에선 이날 협상에 아베 전 총리가 직접 참석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고노 담당상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베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반(反)아베'의 기치를 내걸어 이번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 고노 담당상을 지원한 세력 역시 아베의 정적이었던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파벌인 이시바파(11~14명)와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을 위시한 일부 청년·초선 의원 등 소장파 세력이 주를 이뤘다. 스가 요시히데 현 일본 총리의 연임을 밀었던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의 묵인으로 일부 니카이파(47명)도 고노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결과적으로 호소다파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이들 세력의 입지는 위태로운 상태다. 우선 고노 담당상은 '3대(代)'째 총리 역임에 실패했다는 오명과 함께 당내 입지는 물론 향후 내각 대신(장관) 자리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고노 담당상의 조부인 고노 이치로(1898∼1965)는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며 농림상을 거쳐 내각에서 부총리까지 올랐지만, 총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부친인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1993년 자민당 총재를 역임했지만, 당시에는 자민당이 야당이었기에 결국 일본 총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자민당 총재 중 총리를 하지 못한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로 소수다.
고노 담당상이 이번 선거에 출마하자,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은 지난달 15일 아오키 미키오 전 참의원 의원회장을 찾아가는 등 직접 선거 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아오키 전 회장은 과거 '참의원 지도자'로 불리던 자민당 내 정치 거물로 다케시타파(52명)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선거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기시다 신임 자민당 총재는 속속 차기 당 간부와 내각 인사에 대한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고노 담당상을 사실상 한직에 가까운 당 홍보본부장에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략적인 내각 요직의 윤곽도 나오고 있지만, 고노 담당상의 장관 선임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고노 담당상이 자칫 이시바 전 간사장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과거 전면적으로 아베 전 총리에게 반기를 들고 총재 선거에 출마해 결선투표까지 진출하는 등 아베를 가장 실질적으로 위협한 인물이었다.
이후 이시바 전 간사장은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주류 세력으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으며 세력이 쪼그라든 상태다. 이시바파는 한때 소속의원이 50명을 넘기며 당내 주요 파벌로 꼽혔지만, 이시바 전 간사장이 실질적인 정치 권한을 모두 잃으면서 파벌 이탈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 이번 선거 결과로 지난 1일 또 한 명의 소속 의원이 이시바파 탈퇴를 선언했고, 이시바 전 간사장의 '은퇴설'까지 떠돌았다. 다만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설을 일축하고 총재 선거 구조 개혁 등 당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스가 총리의 당 총재 당선에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자민당 원로 인사인 니카이 전 간사장도 정계 퇴출 수순을 걷고 있다. 니카이 전 간사장은 마지막까지 스가 총리의 연임을 추진한 반면, 아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기시다 신임 총재에 대해서는 지지의 입장을 끝까지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니카이 전 간사장은 82세라는 고령의 나이로 정계 은퇴 여론도 큰 상황이다.
◇'지지율 4% 자객' 다카이치, 자민당 거물로 부상...아베, 전면 복귀하나?
반면 총재 선거 초기 차기 총리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4%에 불과했던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중앙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극렬한 극우 성향으로 그간 정계 주변을 맴돌 수밖에 없었던 다카이치는 이번 선거에서 '아베의 자객'으로서 고노를 견제한 일등공신에 올라섰다. 또한 유세 과정에서 대학 교수 출신으로서 조리 있는 토론 실력도 주목받으며 대중 여론의 재평가를 받은 것도 크게 작용했다.전날 기시다 신임 총재는 다카이치를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자리에 선임했다. 정조회장은 당내 권력 순위 3위에 해당하는 핵심 요직이다. 우리 식으로는 당 정책위원장에 해당하는 자리로 당과 내각의 정책 방향을 조율하는 중책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아베 세력은 중앙정치 전면에 복귀하는 모양새다. 기시다 캠프의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으로 선거 전날 밤 다카이치 캠프와 선거 연대에 합의한 아마리 아키라 당 세제조사회장은 총재에 이어 당내 이인자 서열인 간사장에 선임됐다.
그는 과거 한때 '3A'로 불릴 정도로 아베와 아소의 지근거리에서 활약하며 당과 내각의 요직을 거친 실세 인사 중 하나로 꼽힌 인물이다. 다만 아마리는 2016년 뇌물수수 혐의로 경제재생상에서 물러났기에, 이번 간사장 선임 결정에는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한편 아소 부총리는 2012년 12월 26일부터 지금까지 일본 현대사에서 최장 재무장관·부총리로 재임하며 교체 여론이 컸던 탓에 당 부총재로 물러나며, 그 자리는 아소파 인사인 스즈키 슌이치 전 환경상으로 내정됐다.
아울러 기시다 신임 총재는 당내 최대 중책인 당 4역(간사장·정조회장·총무회장·선거대책위원장)을 사실상 아베의 측근으로 채워넣으며 총리 취임 전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1일 아즈미 준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이를 두고 "아베 전 총리에게 업혀가는 정권"이라면서 "이 정도면 아베 전 총리가 (총리를) 하는 게 낫다"고 비난했으며, 전날 아사히신문은 자민당 내부에서 새 정권이 아베 전 총리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비치면서 오는 11월 중의원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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