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면서 이따금씩 입에 올리게 되는 말이 있다. “이번만큼은 달라(This time is different).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도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의 개선 내지 진화는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금융시장의 속성 또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태풍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느낌이다. 먼 훗날 어떻게 서술되고 평가될지 매우 궁금한 ‘COVID-19 팬데믹’ 시기에 기존의 경제학·투자론·기술적 분석 등의 교과서들을 무색하게 만든, 미증유(未曾有)의 상승 랠리를 이어오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가격 급락의 위험에 떨고 있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값은 앞으로 어디까지 튀어오를지 모르는 공포를 유발하고 있고, 중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희망보다는 걱정을 키우는 것들이다. ‘장기적(長期的)’ 약세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미 달러화 가치가 슬금슬금 오르는 가운데,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매달 접하는 수출 호조 및 무역수지 흑자 소식에도 환율이 연내 다시 1200원대로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장금리도 급격히 상승하면서 유로존의 주요국 국채수익률이 마침내 마이너스(-) 영역을 벗어날 태세인 데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다”라는 돌림노래를 불러오던 중앙은행들은 말 바꾸기에 나서면서 그들도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음을 들키고 있다.
비록 그 주기가 그때마다 다를 수는 있어도 경기(景氣)는 순환한다. 호황이 이어지다 보면 과잉소비와 과잉투자 끝에 불황이 찾아오고, 불황의 깊은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대다수가 고통을 견디고 일부는 큰 부(富)를 이룬 이후 다시 경기는 살아나곤 했다. 그러한 경기순환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또 시기와 상황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는 수급(需給) 요인에 따라 주가와 금리, 원자재가격, 그리고 환율 등이 등락을 거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지금의 경기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경기를 전망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다만 오늘 칼럼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작년 3월 이후 금융시장에서 이어져 온 ‘코로나 장세’에 최근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여느 때보다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첫째, 인플레이션 조짐과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금리상승(정책금리의 인상이 아니다)이 예사롭지 않다.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비롯한 인플레 지표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데다 원자재가격의 급등과 중국의 전력난으로 인한 산업생산의 둔화는 앞으로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키울 소지가 다분하다.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금리는 당연히 오르게 되어 있으며, 통화정책 당국자들의 액션은 굼뜰지 몰라도 시장금리는 그들의 ‘기준금리 인상’을 기다리지 않고 앞서 내달리기 마련이다.
둘째, 빚으로 쌓아온 모래성의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때다. 이른바 ‘헝다(恒大) 사태’는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것이 어찌 헝다그룹만의 문제이겠으며 중국만이 안고 있는 문제이겠는가? 미시적으로는 뉴욕이든 서울이든 할 것 없이 시장참여자들이 빚을 내 끌어올린 주가가 급락세로 돌아선 뒤에는 ‘비자발적 장기투자’ 결심과 무관하게 강제로 청산되어야 할 포지션으로 인한 시장 충격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그 놈의 달러’를 찍어내거나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채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국가들이 겪어야
할 수모는 얼마나 비극적일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다 빚을 지고 있는 쪽에서는 항상 금리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데야···.
셋째, 국제정세의 변화가 매우 혼란스러운 데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정치적·이념적 갈등과 양극화는 딱히 어디라 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심화되고 있는 지구적 현상이다. 글로벌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어젠다(agenda)는 국민적·국가 간 합의를 온전히 이끌어내지 못한 채 추진되고 있고, 총 쏘고 미사일 날리며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방식의 전쟁은 이제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흔들리게 되는 뉴스들을 심심치 않게 접하는 시절이다.
“This time is different”는 금융시장에서 매우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명제다. 5% 정도의 조정도 허락하지 않은 최근 1년 반의 주식시장 강세 흐름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이례적인 환경 하에서 이례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한방향으로 달려온 결과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들의 말을 좀 더 경청할 필요가 있는 때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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