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최근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 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고발은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마저 흔들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제3자의 고발, 그중에서도 명예훼손 고발의 문제점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타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시민단체, 또는 개인이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이른바 '제3자 명예훼손 고발'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명예훼손 고발에 나서고, 이 같은 고발이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 계속돼 왔다.
제3자를 통한 명예훼손 고발은 사실 자체를 말해도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비리 폭로에 대한 일종의 '입막음'을 위해 사용됐다는 비판이 적잖다. 또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반대편을 고발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민생사건 수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상황도 발생한다.
본지 취재진과 만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명예훼손 고발을 친고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고죄는 범죄의 피해자가 고소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뜻한다. 명예훼손이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제3자 명예훼손 고발이 계속 발생할 뿐더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명예훼손 친고죄로 바꿔야"…전문가들의 제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력자는 한 개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하는 데 도덕적인 부담이 있다. (제3자 명예훼손 고발로 인해) 공인에 대한 비판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수사기관을 동원해 입막음을 한다는 비판에 처할 수 있는데, 제3자 고발은 이 같은 부담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9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던 PD수첩 제작진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고소에 나서면서다. 해당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공공성 있는 사안을 보도 대상으로 했고, 악의적인 공격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명예훼손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시민단체 등에서는 "법 집행이란 이름을 빌린 언론자유 탄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이같이 고위공직자가 고소하는 사례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암묵적으로 시민단체가 대신 나서 명예훼손 고발을 하는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접 고발하는 것은 어려운 그런 (시대적) 상황이 됐는데, 제3자의 고발을 통해서 우회할 수 있게 된다.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사례와 비교하며 "일본의 경우 명예훼손죄는 친고죄로 규정돼 있고, 대부분의 국가도 그렇다"고 꼬집었다. 그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고발한 사건에 수사력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 명예훼손은 당사자간 일인데 왜 국가가 나서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명예훼손은 기준이 애매해 더 위험성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사실임을 전제로 공익성인지 아닌지에 따라 처벌 여부를 따지는데, 공익성 개념에 대한 잣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명예훼손 범죄 자체를 비범죄화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공인들은 반론 창구가 있다. 자신의 발언을 정정할 플랫폼이 있는데, 굳이 제3자가 고발해서 형사 처벌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3자가 고발해서 형사 처벌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이런 걸 가능하게 하는 법체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 권익이 우선시돼야 하지만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민단체가 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손 변호사는 "결국 제3자가 고발하고 수사에 착수한다는 게 수사력 낭비이고 표현의 자유 위축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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