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世宗實錄) 28년(1446) 9월조에는 ‘시월훈민정음성(是月訓民正音成, 이 달에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前身))는 이 기록에 따라, 음력9월 말일(9월 29일)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가갸날’을 선포하고 기념행사를 열었다.
1926년 가갸날을 선포함
왜 가갸날이었던가. 훈민정음은 창제된 이후 언문, 가갸글로 불렸다. 1910년대 주시경(周時經)이 큰 글, 하나 밖에 없는 글, 혹은 ‘한(韓)’ 민족의 글이란 의미로 ‘한글’이란 말을 창안했다. 그러나 대중이 즐겨쓰는 말은 아니었다. 조선어연구회조차도 한글을 ‘조선어’라고 부를 정도였기에, 사람들에게 익숙한 ‘가갸’라는 말을 채택해 ‘가갸날’이라고 붙인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가갸날에 대하여’라는 시를 썼다.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축일 제일 데이 시즌, 이 위에/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끝없는 바다에 쑥 솟아오르는 해처럼/힘 있고 뚜렷한 가갸날//데이보다 읽기 좋고 시즌보다 알기 쉬워요/입으로 젖꼭지를 물고 손으로 다른 젖꼭지를 만지는/어여쁜 아기도 일러줄 수 있어요/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알으켜줄 수 있어요/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 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한용운 ‘가갸날에 대하여’ 중에서)
"영어보다 뛰어난 한글" 1889년 미국인의 긴급 타전
2년 뒤인 1928년 가갸날은 한글날로 바뀐다. 날짜도 양력으로 바뀌어 10월28일로 결정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날짜를 현재의 10월9일로 다시 바꾼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에 ‘정통 십일년 구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이라는 정인지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한(上澣)은 상순의 마지막 날을 가리키므로 음력 9월10일이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니 10월9일이 나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글이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이 문자(文字)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창제(創製, 창조적으로 만들어진) 문자’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과학적인 검토를 거쳐 만들어낸 놀라운 글자체계다.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11,000개 이상의 문자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1886년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 육영공원 교사로 내한한 호머 헐버트는 고종황제의 자문역을 맡은 사람이다. 그는 1889년 뉴욕트리뷴에 ‘조선어(Korean Language)’라는 제목을 글을 기고했다.
“글자 구조상 한글에 필적할 만한 단순성을 가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음은 하나만 빼고 모두 짧은 가로선과 세로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그토록 갈망하고 식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이곳 조선에서는 수백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 표음문자 체계의 모든 장점이 여기 한글에 녹아 있다. 영어는 모음 5개를 각각 여러 개의 다른 방법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러한 체계가 절대 불가능하다. 조선어는 영어가 라틴어보다 앞서 있는 만큼 영어보다 앞서 있다. 조선어에 불규칙 동사 따위는 없다. 어미를 한번 배우고 나면 누구든지 곧바로 모든 동사의 어형 변화표를 어간만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다.”
이방인의 눈으로 접한 한글에 대한 놀라움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글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글 체계를 접했지만, 다른 문자를 쓰던 그에게는 그 쉽고도 효율적인 씀씀이가 경이에 가까웠던 듯 하다. 헐버트는 이 문자를 보고, 이 나라가 얼마나 문화적인 수준을 지닌 나라인지 파악했을 것이다. 영어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긴급 타전할 만큼 그는 경탄의 비명을 지른 것이다. 그는 일본, 중국, 서구, 산스크리트 문자보다 한글이 낫다고 했다. 아이가 영어 e 하나의 발음 및 용법의 규칙과 예외를 읽히는 시간보다, 한글 전체를 떼는 시간이 더 죽게 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류영모 "훈민정음은 신의 복음과도 같다"
다석 류영모(1890~1981)는, 헐버트가 파악한 ‘한글의 뛰어남’ 그 이상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는 이 문자가 지닌, 철학적 상징과 내면을 읽어냈다. 세종이 이 문자를 만들 때, 한국 고유의 철학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천지인(天地人)의 사유’를 기호화하여 만들어나간 점을 주목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말의 의미가, 단순히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하늘이 인간을 깨닫게 하는 참의 말씀(복음)으로 읽어내 문자가 지닌 영성적인 깊이를 포착했다. 류영모는 그가 펼치는 사상 전부를 ‘한글’이라는 높은 수준의 문자 위에 설계하려는 뜻을 보였다.
류영모는 수제자(首弟子)인 박영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대개의 종교 이름은 자신이 붙이는 것이 아니고 남이 붙여서 된 이름이 많은데 나를 보고 ‘바른소리치김(正音敎)’이라고 해준다면 싫어하지 않겠어요.” 사상 전체를 ‘훈민정음 가르침’으로 불러줘도 좋겠다는 놀라운 당부이다. 이 말은 단순히, ‘신의 참말씀을 전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빌린 것이 아니라, 한글과 우리말이 결합하면서 지니게 된 심오한 ‘사상적 터전’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훈민정음교(敎)'를 믿은 사람이다
그는 한글날에 이런 시조를 남겼다.
우리 사리 사리 똑바른 말소리 : 우리 글씨
할우 지슴 맨듬듬! 오랜 우린 앞틸람! 참 잘
암은요 우리 씨알이 터낸 소리 아름답
오오이 오이 부르신 가가장 바른소리 세종
으이 나투신남게 달린 사람 밑이 예수
등걸(단군) 우리 나라님 한울나라 거룩함
의미를 추슬러 풀어보면 이렇다.
우리의 살이살이 정음(正音, 똑바른 말소리)은 우리 글씨
조상(祖上,할우)이 짓고 만들고만드니 오랜 겨레의 앞을 틔웠도다! 참 잘했네
그렇지요 우리 백성이 터를 닦은 소리인지라 아름답습니다
오시게나 오시게 부르신 으뜸의 으뜸 정음(正音) 세종
위(하늘)로 나타난 나무에 매달린 인자(人子, 사람 밑이) 예수
단군 우리 국조(國祖, 나라님) 한울나라 거룩함
류영모는 언어가 삶의 실존을 반영하며, 믿음의 단초를 이룰 뿐 아니라, 최종의 지향까지도 포함하는 종교행위를 담는다고 믿었다. 한글은 그에게 사상의 기틀이자 믿음의 도(道)를 담는 그릇이었다. 한글과 우리말을 복음(福音)으로 노래했다. 그는 훈민정음을 한글 창제의 취지를 밝히는 말로 읽을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하늘이 남긴 말씀을 제대로 읽어내기를 바라는 신(神)의 뜻을 표현하는 말로 받아들인다. 훈민정음을 류영모처럼 풀어낸 사람도 없었고, 신의 말씀을 ‘훈민정음 관점’으로 읽어낸 사람 또한 지구상에 류영모 외에는 없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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