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시중은행 보신주의, 사모펀드 수탁 IBK 이외 전멸…생보사가 대행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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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기자
입력 2021-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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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은행이란 말을 요새는 하지 않습니다. IBK(기업은행)라고만 할 뿐. 시중은행이 신규 수탁을 받아주지 않으니까요."
 

[사진=각사 제공]


한 사모펀드 직원의 하소연이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중소형 사모펀드의 신규 수탁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그는 "KB은행이 수탁 업무를 하지만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맡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펀드 수탁 업무는 펀드 운용사와 은행(수탁자) 간의 신탁 계약을 통해 성사되며, 은행은 수탁자산을 보관하며 사무를 대신해 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은행 13곳과 삼성증권과 같은 대형 증권사 6곳 등 총 20곳만 수탁 업무를 맡을 수 있는데, 사모펀드 운용사(PEF)들은 만약 수탁사를 구하지 못하면 펀드를 출시할 수 없다.

'수탁 대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라임·옵티머스 등 대규모 사모펀드 사태의 후폭풍 여파로 시작된 '수탁 대란'은 문제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수탁 수수료 급등을 넘어서 '수탁 거부' 사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수탁 업무를 거부하며 몸을 사리고 있는 데에는 변경된 법의 시행일이 임박했다는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6월 금융당국이 마련한 수탁사 가이드라인으로 시중은행 등 수탁사들은 펀드 운용 행위 관리·감시, 집합투자재산 대사 등 의무 감시 조항이 대폭 늘어났다. 게다가 이달 21일부터는 개정된 '사모펀드 투자자 보호 강화 및 체계 개편을 위한 자본시장법 및 하위법규'가 시행되는데, 이로 인해 수탁사들은 관련 법에 따른 의무를 부여받는다.

수탁사의 법적 책임도 커지는 모양새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의 경우, 책임 소재를 두고 수탁사에도 법적 책임을 지우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어 은행들의 '수탁 꺼리기'를 심화시켰다.

여기에 시중은행들이 굳이 수탁 업무를 맡지 않아도 될 이유가 또 있다. 신한은행, KB은행, 우리은행 등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이다. 굳이 나서서 먼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금리, 저출산 등으로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명보험사에서 수탁 업무를 대행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은 흥국생명이다.

생명보험사 입장에서는 새 먹거리 발굴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펀드의 수탁 수수료는 일정하지는 않지만 약정 총액 기준으로 20bp(0.2%), 최저 1억원 등으로 책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펀드 설정액이 1000억원이고, 수수료율이 20bp라면 2억원을 매년 고정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약정 총액 기준이기에 투자를 집행하지 않더라도 수수료는 내야 한다.

투자활동은 기업의 순환에 필수적이다. 산업 기반 기업은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기업의 영업활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투자업 기반 기업들의 주된 영업활동은 산업 기반 기업의 자금 공급이다. 이 과정에서 벤처캐피털(VC), 중소형 사모펀드들은 '투자의 목표와 성격'을 드러내고 실적으로 성과를 증명한다. 이는 실적(트랙레코드)과 평판(레퓨테이션)이 되고, 더 큰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소규모 투자가 사실상 고사 직전에 놓임에 따라 자본 시장의 모세혈관이 막히게 됐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해결책으로 관련 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으며, 모험 자본으로 성장해야 할 스타트업 기업들은 자금줄이 막히게 됐고, 고용 시장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

금융당국도 지난 4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부행장을 소집해 비공개 간담회를 여는 등 문제 해결을 고민했지만 구조적으로 꼬인 문제는 아직 해결 기미가 없다. 정부(기획재정부)가 최대주주인 IBK기업은행만 수탁은행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소형 사모펀드의 한 관계자는 "우리 같은 작은 사모펀드들은 시중은행에 협상력이 전혀 없다"면서 "사모펀드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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