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노벨평화상 언론인 오시에츠키와 나치
국제적인 큰 상을 받는 개인에겐 당연히 영광이겠지만, 그 언론인이 맞서온 국가나 정부의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는 사태이다. 국민의 영광이 국가의 창피에 가까운 일이 되니, 이거야말로 패러독스다. 언론인이 노벨상을 받는 경우는 몹시 드물었다. 85년 전인 1935년에 히틀러 치하의 독일 기자가 받았다. 카를 폰 오시에츠키 벨트뷔네(주간신문) 편집장이었다. 그는 1929년 독일공군이 러시아에서 비밀훈련을 하며 재무장을 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어 반역죄와 간첩죄로 체포된다. 18개월형을 선고받고 사면되었는데, 이후에도 나치 비판을 계속하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힌다.
그런데 노벨상 시즌이 되었을 때 오시에츠키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국제적인 여론이 일어났다. 아인슈타인과 토마스 만, 로망 롤랑 등 당시 저명한 지식인들이 나섰다. 마침내 그가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감옥에 있었기에 시상식에는 갈 수 없었다. 나치는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여, 오시에츠키의 노벨상 지명을 극력 방해했다고 한다. 아예, 독일인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역사적 괴물이 된 이 '정치집단'도, 언론인이 받는 노벨상이 어떤 의미인지 감을 잡았던 것 같다. ‘언론’의 공훈(功勳)은 태생적으로 권력의 워치독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에, 언론의 노벨상 수상은 반사적으로 권력의 결함을 의미하는 패러독스가 생겨난다는 것을.
기자들에게 노벨상을 주는 노벨위원회의 관점은 어떨까. 언론인의 용기와 사명감을 북돋우며 그간의 투쟁을 위로하는 의미를 담을 수 있겠지만, 거기엔 필연적으로 그 언론의 상대편에 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부전지로 함께 붙일 수밖에 없다. 이 위원회로서도 이런 점을 깊이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5년 만의 언론인 수상이라는 점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 '사건'이 올해 일어난 까닭은, 디지털 환경으로 이행하는 저널리즘이 고독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권력과 싸우며 그 정신을 지켜가는 일이 어느 때보다 힘겨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 8일(2021년 10월 8일) “민주주의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해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58)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60)를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2012년 창업)의 설립자인 레사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전횡을 비판하고 소셜미디어를 휘젓는 가짜뉴스와 싸웠다. 무라토프는 반정부 매체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으로 일하며 푸틴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에 주력해왔다. 1993년에 창간한 이 신문사는 24년 동안 소속기자 6명이 살해당할 정도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라이스안데르센 노벨위원장은 수상자를 발표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표현의 자유야말로 평화에 필수적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실에 기반한 언론은 권력 남용, 거짓말, 전쟁 선동에 맞서는 힘이다.” 이 평화상은 즉각 두 사람의 권력자를 ‘자유언론의 적(敵)’으로 공표한 셈이 됐다. 하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고 다른 하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특히 이 노벨평화상은 두테르테의 악명을 높이고 그의 권위적 정치의 부적절함을 자연스럽게 공론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는 “지금까지는 언론인이 겪고 있는 일이 주목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상을 받게 되니) 우리가 직면한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의 언론단체들은 “언론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전 세계 저널리즘과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이 수상의 의미를 정리하기도 한다. 국경없는기자회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노벨평화상은 저널리즘에 대한 특별한 찬사이다. 현재 저널리즘은 위험에 처했고, 약화되었고, 위협을 받고 있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과 언론인 레사
우선 언론인 레사와 권력자 두테르테 사이의 ‘끝없는 전쟁’을 들여다보자.
필리핀 태생인 레사는 미국 뉴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980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의 실각 이후 고국에 돌아온다. CNN지국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래플러를 창업했다. 2015년 레사는 두테르테가 다바오 시장 시절에 세 사람을 살인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 일을 보도함으로써 래플러는 더욱 주목받는 매체가 되었고 두테르테는 언론에 대해 더욱 히스테리컬한 태도를 지니게 된다. 2016년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는 “많은 언론인들은 죽어도 싸다”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집권 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수천명을 처형한 두테르테를 향해, 래플러는 “독재자” “인권유린자”라고 비판했다. 두테르테는 2017년 첫 국정연설에서 근거를 대지도 않은 채 래플러가 외국자본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1월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는 래플러가 외국계 회사 2곳에 채권을 발행해 외국인의 필리핀 국내언론 소유권 금지 법규를 위반했다며 법인 등록을 취소했다.
고통스런 날들이 계속됐다. 레사와 래플러 직원들은, 두테르테 정권으로부터 살인과 강간 협박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2018년 한해에 이들에게 제기된 소송만 11건이었다. 레사는 탈세 혐의로 두 번 체포된 바 있다. 레사는 이 시절을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많은 전쟁을 보도했고, 테러리스트도 취재했지만, 최근 2년만큼 도전적이고 힘겨웠던 때는 없었습니다.”
2020년 6월 필리핀 법원은 레사와 집필자를 온라인 비방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문제가 된 기사는 8년 전인 2012년 기업인(윌프레도 켕)이 전직 판사와 유착관계임을 폭로한 것이었다. 기사가 나온 지 넉달 뒤인 9월에 발표된 사이버 모독법의 첫 위반으로 기소됐다. 래플러는 2014년에 기사 일부를 정정했다. 고소기한은 1년이었는데 5년이 지난 뒤에야 당사자가 고소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기소했다. 법원은 “언론자유가 타인을 모략하는 데 방패막이로 이용될 수는 없다”면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런 공격과 핍박을 거듭 받아온 가운데, 레사는 문득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다.
러시아 푸틴에 항거한 무라토프
함께 상을 받은 드미트리 무라토프 또한 역전(歷戰)의 용사다. 그는 1993년 신문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해 줄곧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창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 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고 컴퓨터 8대도 기증받았다. 이 신문은 러시아 정부를 감시하는 맹렬한 워치독이었다. 2006년 10월 7일 안나 폴릿콥스카야 기자가 모스크바의 아파트에서 총격으로 피살되면서, 이 신문의 활약상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노벨위원회는 “무라토프는 살인과 위협에도 저널리즘의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하면서 언론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권리를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평가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에 뜨끔해진 사람이 또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다.
미국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 가짜뉴스 연구자인 니나 잰코위치는 9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레사의 수상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실패에 대한 고발 성격이 짙다”고 평가했다. 레사는 같은 날(수상 다음날인 9일)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증오와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실패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서비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팩트에 앞서서 분노와 증오가 섞인 거짓이 확산되도록 하는 일을 우선했다.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온라인 공격에는 목적이 있다. 목표가 설정되면 SNS는 무기처럼 사용된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마자, 이 얘기부터 털어놓는 레사. 이 소셜네트워크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레사의 영광은 저커버그의 위기?
2016년 두테르테 당시 다바오시장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페이스북에는 그에 관해 꾸며낸 미담을 퍼뜨리는 가짜 계정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 계정들은 두테르테의 반대편을 공격하는 페이크 뉴스를 300만명에게 뿌려댔다. 대선주자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드는 '페북 작업'을 했다. 래플러는 이런 가짜계정을 잡아내고 해당 계정의 삭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레사는 페이스북을 향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미국대선에서도 같은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레사는 저커버그를 직접 만나 가짜 계정문제를 제기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필리핀 국민의 97%가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으니 가짜 계정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이 심각한 말에 대해 저커버그의 응답은 어이가 없을 만큼 한가했다. "그러면 나머지 3%는 페이스북을 안하고 뭘 하고 있습니까?" 레사는 그제서야 페이스북의 철학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 경영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시장 점유율밖에 없구나. 페이스북은 레사의 요구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다가 미국 대선 이후에야 이 계정들을 삭제했다.
노벨평화상 발표 사흘 전인 10월 5일 미국 연방의회 상원 상무위원회 소비자보호소위원회 청문회에 페이스북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인 프랜시스 하우건이 출석했다. 그는 이 기업의 내부자로서 세계 30억명이 사용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 설계 현실에 관해 털어놓았다. “페이스북은 혐오발언이나 허위정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용자의 안전보다 자사 이익을 우선시해왔죠.” 이에 대해 저커버그는 펄쩍 뛰었다. “유해 콘텐츠와 싸우는 데 관심이 없다면 왜 가장 열정적인 전문가를 고용했겠습니까.”
민주주의와 언론 환경을 교란하는, 새로운 적?
하지만 하우건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어온 게 사실이다. 지난 미국 대선 때도 부정선거 주장이 퍼졌고, 초유의 미의회 의사당 점거사태까지 빚었다. 이때도 페이스북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필리핀뿐만 아니라 미얀마에서도 권력자들이 페이스북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여 민주화를 저해했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았다.
2018년 4월 25일 한국기자협회와 국경없는기자회는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아시아 언론자유 현주소’라는 주제로 국제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레사 편집장이 ‘필리핀의 언론자유 탄압과 가짜뉴스 실태’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쓴 뒤, 어떤 사람들이 저를 향해 악플과 성적인 조롱, 모욕적인 말들로 공격을 했습니다. 우리 기사를 뒤엎는 가짜뉴스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운영하는 선거 홈페이지와 정책 홈페이지에 이런 기사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죠. 그들의 공격활동을 보면 매우 체계적이었고 전략이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이들을 분류해보니 지식인과 중산층, 대중이었는데, 중산층과 대중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정부 쪽에서 직접 고용을 했습니다.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가짜뉴스를 퍼뜨렸죠. 이런 일을 주도했던 여성은 나중에 두테르테 대통령의 언론홍보 쪽에서 소셜미디어 담당 총괄이 됐습니다.”
팩트에 근거하는 알고리즘을
레사는 페이스북에 관련해서도 목청을 높였다.
“특히 페이스북은, 팩트에 근거할 수 있도록 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야 합니다. 언론과 시민들이 연대해 국가 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중국의 언론검열처럼 갑자기 공격을 받게 되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현재 NGO와 언론, 시민들이 연대해 싸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존중하는 행위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합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레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페이스북을 상당히 긴장시킬 수 밖에 없다. 언론의 가치와 정당한 기능을 교란하고 훼손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공적인 해악을 생산하는 소셜미디어기업이라는 심각한 오명이 공공연히 굳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나쁜 의도를 필터링하지 않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은, 결국 권력에 야합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사태 속에서 보아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익을 위해 윤리를 저버리는 기업에게 지속가능한 경영을 기대할 수는 없다.
노벨위원회는, 차후의 언론생태계의 중심을 이룰 소셜네트워크의 도덕성까지 '평화'의 범주에 넣어서 비장한 경고를 날렸는지 모른다. 노벨평화상을 언론인이 수상하면서, 권력자가 아닌 네트워크가 '공적(公敵)'으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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