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이게 아빠가 봤던 동화책이에요?”
30년 전 나와 닮은 아이가 물었다.
“응 맞아. 아빠도 이 책으로 ‘흥부와 놀부’ 봤었어.” 다섯 살이 된 아이가 신기해하며 깔깔깔 웃었다.
2021년 기획특별전 ‘친구들아, 잘 있었니?–교과서 한글 동화’가 오는 11월 30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옛이야기와 교과서가 자아내는 세대를 아우르는 정서적인 연대가, 길어지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소외를 이겨내는 위로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됐다.
윤지현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에는 많은 가족 단위 관람객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1시간 당 90명의 인원만 입장 가능하다.
교과서는 세대를 넘어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통해 어린이가 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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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의 지혜’에서는 선조들의 기록들로부터 교과서로 이어져 예로부터 옳게 여겨진 가치를 일깨워 주는 옛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2부 ‘소망이 이루어지는 세상의 친구들’에서는 도깨비와 산신령, 뱀과 까치, 호랑이와 토끼 등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하는 교과서 속 한글 동화를 통해 용기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세심한 구성이 눈에 띈다. 전시장 곳곳에는 이야기의 내용과 교훈의 이해를 돕는 영상과 음원 자료는 물론, 열어보거나 굴리고 돌리며 만지는 체험 장치가 마련됐다.
전시의 1부에서는 옛이야기를 따라 역사적 기록들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가장 가깝고 평생을 함께하는 관계인 가족 안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쳐 주는 옛이야기들은 대부분 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과거의 기록에서부터 유래해 지금은 교과서에 동화로 실려 있다.
전시에서는 ‘국어 2-2‘(1964)에 실린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유래가 된 충남 예산 효제비(孝悌碑)에 관한 『세종실록』7권의 기록을 살펴보고, ‘말하기·듣기 3-1‘(2000)에 수록된 <금을 버린 형과 아우>의 배경이 된 한강 공암나루(지금의 가양동 일대)를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 ‘공암층탑(孔岩層塔)’도 만나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백성들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나라에서 펴냈던 생활 교과서인 ‘행실도(行實圖)‘도 소개된다.
숭고한 희생이 수반되는 ‘삼강행실도언해(三綱行實圖諺解)’(1581) 속의 효행담과, ‘국어 3-2‘(2006)에 실린, 일상에서 부모의 작은 부탁에 정성을 다하는 이야기 <짧아진 바지>를 비교해 보며 효에 대해 느끼게 된다.
1부의 마지막 공간에서는 아름드리 나무를 배경으로 한 영상이 펼쳐지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배려를 다룬 동화를 소개한다.
마을 사람 모두의 것인 나무 그늘을 독차지하려 하는 욕심쟁이를 재치 있게 혼내 주거나(‘읽기 5-2‘(2013)의 <나무 그늘을 산 젊은이>), 이웃과 주고받는 말에서 삼가야 할 교훈을 주는(‘읽기 3-1‘(1995)의 <누렁 소와 검정 소>) 옛이야기를 마치 그림책 같은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윤 학예연구사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귀띔했다.
1부와 2부 사이 ‘심화학습’은 교과서를 통하여 시대와 역사를 바라보는 공간이다. 어른들은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해방 직후 군정청에서 펴낸 최초의 국정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1948)부터 제1~7차 교과과정별 국어 교과서와,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을 중심으로 한글 정서법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자료가 전시됐다.
또한 재미있는 체험을 통하여 달라진 생활상을 드러내는 교과서 삽화를 비교해 보고, 한글을 바르게 적는 맞춤법의 변화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도 마련됐다.
2부에서는 교과서의 한글 동화에 등장한 뱀과 까치, 호랑이와 토끼의 성격을 이들에 대한 옛사람들의 인식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묘지 둘레석의 십이지신상이나 민속극의 <뱀 신 가면>을 보면 뱀은 기괴하게 보여 피하고 싶은 동물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은 뱀을 해친 사람이 화를 입는 교과서의 동화 <은혜 갚은 까치>(‘쓰기 5-1‘(1991) 수록)와 같은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호랑이는 전통적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맹수이자 신령스러운 수호신이라는 두 얼굴을 가졌다.
무서운 호랑이에 대한 기록은 『태종실록』 3권(1402년)의 기사와 1909년 12월 프랑스 신문 ‘르 프티 저널’(Le Petit Journal)의 삽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호랑이 무늬 베갯모>와 <호랑이 무늬 가마 덮개>에는 호랑이의 기백이 나쁜 기운을 쫓아준다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호랑이는 현실에서는 가장 무섭고 강한 존재이지만, 옛이야기에서는 어리석은 존재로 뒤집어진다.
‘읽기 3-1‘(1995)에 실린 옛이야기 <토끼의 재판>에서는 영리한 토끼가 악독한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반전을 발견할 수 있다. 1920년대에 펼쳐진 전래동화 모집 운동으로 수집된 <토끼의 재판>이 오늘날 교과서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통해 구전되던 옛이야기가 한글로 정착되고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다듬어진 과정을 살펴본다.
2부 전시장에서는 동화 속 세상을 환상적인 영상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 동물들뿐 아니라 도깨비와 산신령과 같이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캐릭터들이 전시장을 생동감 있게 꾸민다.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하는 공간이다.
심동섭 국립한글박물관 관장은 “어릴 적에 배웠던 교과서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다. 표지와 삽화, 반듯한 글자들을 보면 나란히 앉았던 짝꿍 얼굴도 떠오르는 듯하다”며 “친구들과의 정겨운 만남이 그리운 시기에, 교과서 속 한글 동화를 꺼내 보는 전시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 관장은 “공동체의 연결과 회복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나날에 옛이야기와 교과서가 자아내는 세대를 아우르는 정서적인 연대가 누구에게나 반갑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며 “동화 속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루는 관계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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