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가 예상외로 거침없는 강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인민은행은 예전처럼 개입을 자제하고 사실상 관망세를 취하고 있다. 그 배경을 놓고 미국의 긴축 움직임 대비,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 대응, 위안화 환율 관리 자신감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펀더멘털과 괴리된 强위안화···3주새 1.4% 가파른 절상
최근 위안화 환율은 중국 경기둔화 우려에도 달러화 약세 여파로 절상 행진을 이어왔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고시한 기준 환율은 달러 대비 약 3주새 1.4% 급락했다. 환율이 내렸다는 건 그만큼 위안화 가치가 올랐다는 뜻이다.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달러당 6.4854위안에 머물렀던 기준환율은 지난 21일 달러당 6.3890위안까지 내려가며 6.4위안이 무너졌다. 6.4위안 선이 붕괴된 건 지난 6월 11일 이후 넉달여 만이다. 22일 위안화 강세가 주춤하며 기준환율이 6.4위안 선을 회복하긴 했지만, 시장에서 위안화는 여전히 달러당 6.38~6.39위안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위안화는 달러뿐만 아니라 주요국 통화 대비로도 강세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외환거래센터(CFETS) 위안화 환율지수는 20일 기준 100포인트를 넘어서며, 약 6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CFETS 위안화 지수는 24개 주요 무역상대국 통화바스켓 대비 위안화 가치를 계산해 산출한다.
최근 전력난,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중국 3분기 경제성장률이 4.9%로 큰 폭 둔화하는 등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진 가운데서도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이다. 최근 달러화 약세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사실 인민은행은 그동안 위안화가 일방적으로 강세 혹은 약세를 보이면 구두 경고 외에 경기대응적 조치, 외화예금 준비금률(지급준비율) 조정, 국유은행 동원 등의 방식으로 외환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하지만 최근 위안화 강세에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현재 위안화 강세가 시장에 따른 정상적인 움직임으로, 전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큰 변동성에 직면한다면 적절한 시기에 경기대응적 조정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美 테이퍼링, 미중 정상회담 앞둔 신중한 행보
인민은행이 위안화 강세를 관망하는 것을 놓고 시장에선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우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움직임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준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하면 시중에 풀린 달러가 줄고 글로벌 자금 유입이 줄어 위안화가 약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위안화 약세로 중국 기업들은 달러화 표시 채권과 이자를 갚는 데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지금으로선 보수적인 통화정책과 충분한 외화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진단했다. 인민은행이 최근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금리 인하나 지급준비율 인하 카드를 꺼내 들기보다는 중단기 유동성을 적절히 공급하며 통화정책 완화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체결된 미·중 1단계 무역 합의 준수 이행을 검토하고 있는 데다가 연내 미·중 정상회담 개최도 앞둔 시기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중국이 시장 개입에 신중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선 이는 중국의 위안화 환율 관리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환율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인민은행의 발언이 현실화하는 것으로도 보고있다.
쑨궈펑 인민은행 통화정책사 사장(국장급)도 앞서 15일 기자회견에서 "위안화 환율 유연성을 강화할 것"이라며 "글로벌 자본의 쌍방향 유출입이 계속 이어지면서 위안화 환율은 합리적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기본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미 셰 OCBC은행의 중화권 연구책임자는 로이터를 통해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에) 자신감이 넘치고 편안해진 모습"이라며 "이는 자본의 외부 유출 리스크가 낮고 유동성도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수출 호조에 따른 무역흑자 증가, 글로벌 자본 유입, 넘쳐나는 달러 유동성 덕분에 위안화는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관리에 도움···수출 견조세도 뒷받침
뿐만 아니라 최근 전 세계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급등세 우려 속 위안화 강세는 수입품 가격을 떨어뜨려 인플레이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중국의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10.7%로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6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위안화 강세는 중국의 수출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크긴 하지만, 현재로선 중국 수출이 여전히 호조세를 보이고 있어 중국이 위안화 강세를 용인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켄청 홍콩 미즈호은행 아시아 외환 수석전략가는 로이터를 통해 “보통 CFETS 위안화 환율지수가 100을 넘으면 중국 수출에 압박이 되지만, 현재 중국 선적량은 예상 밖에 견조세를 보인다”며 "이것이 인민은행이 위안화 강세를 용인할 수 있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밖에 수출 호조에 따른 무역 흑자, 글로벌 자본 유입으로 중국 내 넘쳐나는 달러 유동성도 중국이 위안화 강세를 묵인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말 기준 중국 달러화 예금은 1조 달러를 돌파했다.
타오촨 둥우증권 거시 수석 분석가는 "역내 달러 유동성 과잉으로 위안화가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상태"라며 "해외 투자 채널 부족, 중국 내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로 달러를 비롯한 외화가 중국 내 은행권 계좌에 쌓여만 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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