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심서 2021] 저(低)체온의 한국경제를 덥히는 新국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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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10-2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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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이주열 대화 (서울=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경쟁력의 우열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전환기다. 이 점에서 한국의 위치는 몹시 애매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한국경제는 지난 10년 이상 그다지 활기를 띠지 못한 채 세계의 흐름에 끌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10년간 평균 3%대를 유지할 때 우리는 2%대로 약 1% 포인트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힘겹게 뒤쫓아 왔다. 성장력이 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성을 부린 작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3%를 기록할 때 우리는 마이너스 0.9%로 선방했으나 올 들어 세계가 5.8% 이상으로 반등할 때 우리는 4%만 올랐다. 경제 부진에서 치고 올라오는 반등력도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전체로는 역시 4% 대 3%의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수치들은 한마디로 한국경제가 활기를 못 찾고 있는 소위 만성적인 저(低)체온증에 걸려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게 한다.

지난 9월 29일 스위스의 국제개발경영연구소(IMD)는 ‘2021년 세계 디지털경쟁력 랭킹’을 발표했다. 한국은 지난해 8위에서 12위로 4단계가 떨어졌다. 랭킹 발표가 시작된 2017년 19위에서 매년 순위가 상승했으나 작년에 뚝 떨어진 것이다. IMD는 디지털 경쟁력 랭킹을 통해 정부와 기업을 포함한 폭넓은 사회에서 경제변혁의 주요한 추진력으로서 64개국·지역의 디지털경제와 디지털 기술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4년 연속 세계 랭킹의 톱을 지키고 있다. 중국은 2018년 30위에서 5위로 급상승했다. 일본은 2년째 28위로 낮은 랭킹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과거 십수년간 수많은 성장전략, 산업정책, 교육정책을 실행해 오고 있는데 디지털경쟁력 랭킹이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글로벌화, ICT화, 디지털인재 육성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이번에 추락한 이유를 보면 디지털 인재 부족, 교육·훈련 부진, 과학기술 체계의 약점이 주로 지적된다. 작년 10월 K-방역의 성공이 디지털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던 온갖 뉴스를 무색게 한다.

IMD는 이에 앞서 6월 17일 ‘2021년 세계경쟁력랭킹’을 발표했다. 한국은 작년과 같은 23위를 기록했다. 작년 3위였던 스위스가 수위로 올라섰다. 2위는 스웨덴(작년 6위), 3위는 덴마크였다. 미국은 미·중무역전쟁의 영향으로 작년과 같이 그대로 10위를 유지했고, 중국은 20위에서 16위로 올랐다. 홍콩은 중국의 통제강화로 5위에서 7위로 후퇴했다. 대만은 작년 11위에서 8위로 약진했다. 일본은 작년에 과거 최저인 34위에서 31위로 약간 올랐다. 이노베이션에의 투자와 디지털화 촉진, 사회복지정책의 충실과 리더십의 자질, 사회적인 결속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국가들이 상위에 올라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IMD 세계 경쟁력 랭킹에서는 코로나19 재난에 대응해 새로운 ‘경제복잡성지수’를 개설했다. 이 지표는 주로 한 나라 수출품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측정하는 것으로 대만은 세계 2위로 평가됐다.

이러한 경제수치와 글로벌 평가 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대선정국과 맞물려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금에 돌아가는 세계 동향에 주목하면 한 나라의 안정발전을 위해 국가경영의 이념을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지난 10월 4일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전임 자민당 출신 총리들이 견지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는 성장과 규제개혁·구조개혁 일변도에서 ‘부유한 사람과 부유하지 않은 사람,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분단을 막는 경제’를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다. 그 상징으로 중산층에 대한 분배를 후하게 하는 ‘레이와(일본 연호) 소득배증계획’을 내세웠다. 기시다 총리의 신자본주의는 세계에서도 볼 수 있는 조류다. 기시다 총리가 전환하겠다는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하는 케인스주의와 대조적으로 자유방임이나 개인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하이에크나 미국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 등이 주창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정부, 마거릿 대처 영국 정부가 이 사상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중국에서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 정책도 넓은 의미에서 이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것은 격차를 인정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2008년 가을의 리먼 쇼크를 계기로 큰 물결로 나타났다. 자유방임 경제로 돈을 번 사람과 성장에서 뒤처진 사람의 격차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우리 99%’를 슬로건으로 젊은이들이 뉴욕 월가를 점거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이런 격차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피케티는 실증연구에서 주식 부동산 등 자산에서 얻는 이익의 신장이 길게 보면 임금 상승률을 웃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자본주의 아래서는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부(富)가 모이고, 무자산의 격차가 필연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으로서 국제 협력에 의한 자산 과세의 강화를 촉구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재조정하는 세계적 조류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 배경 속에서 미국과 독일에서도 보수계의 강한 리더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어 격차 시정을 호소하는 리버럴 정권이 탄생했다. 예컨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후보는 모두 부유층에 대한 대규모 증세와 약자에 대한 분배의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제기하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보면 성장과 분배를 중시하는 기시다 정권의 등장은 시대의 필연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2010년대 이후 주가 상승 그리고 2020년 이후의 코로나19 펜데믹에 의한 경제위기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수행하는 역할을 거시경제의 안정과 공공재의 공급 그리고 소득재분배에 의한 격차시정 등 3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경제추락, 공중보건문제, 저소득층 증가 등의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세계는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역사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그 성패는 ‘잠재성장률’을 여하히 높이느냐가 관건이다. 다시 말해 한국경제의 저(低)체온화는 곧 잠재성장률의 저미(低迷)를 의미하고, 잠재성장률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경제의 체온을 올리는 길이다.

여기서 지난 2012년 12월- 2020년 8월까지 8년 7개월간 최장기 집권했던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살펴보면 좋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아베노믹스는 과감한 금융완화와 신속한 재정지출 확대, 경제성장 전략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저성장탈출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평가를 할 수 있으나 국가부채 증대, 기업투자 부진 등에선 비판을 받는다. 아베노믹스의 가장 큰 결점으로는 성장전략의 실패가 꼽힌다. 아베노믹스를 반면교사로 삼자면 확실한 성장전략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를 이어받은 스가 히데오 총리가 만들고, 기시다 총리가 9월부터 가동하고 있는 ‘디지털청’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디지털청은 국가의 총체적인 디지털 전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책임진다. 내년 3월말까지 성장전략으로서 총 1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대학 지원, 창업 벤처 육성, 디지털 기술과 녹색에너지기술 개발에 투입하겠다는 내용도 아베총리 때와는 차별화 된다. 결국 기시다 정권의 경제정책은 아베노믹스를 보완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AI(인공지능), 양자기술 등과, 우주·해양과 갚은 빅 사이언스에 힘을 쏟는 것이다.

지난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지 5년이 넘은 지금 그 첨단기술들은 산업의 제조, 연구 현장으로 깊숙이 침투해 다양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2022년 1월에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제4차 산업혁명을 훨씬 진화시킬 새로운 기술과 혁신적인 정책, 글로벌 파트너십을 논의의 중점 테마로 잡았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전자상거래·포털, 게임·미디어, 원격교육 등의 디지털 기반 산업과 관련 서비스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은 13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AI, 클라우드, 메타버스 등과 같은 디지털 기술은 우리 삶의 기본 인프라이자 경제 혁신과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됐다. 정부는 지난 7월 ‘디지털 뉴딜 2.0’을 통해 2025년까지 49조원을 투자해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이고 메타버스·클라우드 등 초연결 신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 의료 등의 분야로 디지털 혁신을 확산시키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런 계획들이 구두선에 그쳐선 안된다. 경쟁국들은 모두 출발선을 지났다. 우리는 앞으로 1년 가까이 이어질 정치 혼란기에 들어있다. 기술혁신을 중심으로 한 국가 산업전략만이 경제 체온을 올리고 미래로의 길을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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