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종전선언 '임기말 짝사랑' 매달릴 때가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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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1-11-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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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임기를 약 4개월 남긴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우리 외교사에 한 획을 긋고 싶어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련국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심지어 그가 믿었던 북한마저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탈리아 로마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교황에게까지 평양방문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 모든 행보가 시대적 상황과 동떨어진 데 있다.

세상은 변하는데 유독 우리나라 최고지도자의 북한에 대한 생각만 변하지 않았다. 재임기간 내내 종전선언에 왜 매달리는지 납득하는 국민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속 시원하게 국민을 설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 교황에게 북한 방문을 요청한 것에도 국민은 의아해한다. 교황의 방북이 한반도의 평화 모멘텀이 유지될 것이라는 그의 설명이 짤막하게 보도되었다.

그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 모멘텀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북한의 도발이 하루가 멀다하면서 끊이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 모멘텀은 벌써 사라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임기 말 종전선언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9월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또다시 종전선언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이틀 뒤 한국 시각 24일에 북한의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종전선언은 ‘허상’이라며 북측의 종전선언 채택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리고 7시간 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종전이 선언되자면 쌍방간 한 존중이 보장되고 적대시정책, 불공평한 이중기준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며 “선결 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전제조건으로  국가 안보를 위한 우리의 모든 군사적 행위의 중단을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여기에는 한·미군사훈련을 포함한 군사훈련뿐 아니라 우리의 안보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개발하는 무기개발사업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이중기준’ 요구는 우리의 안보주권마저 포기하라는 언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모든 국가는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국가적 사명이다. 그렇기에 북한도 방어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선의 수단을 모색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이를 핵무기개발에서 찾았다.

대신 우리는 국제정치학에서 통용되는 국가간의 일반적인 동맹을 그 해답으로 찾았다. 과거 우리의 국방력은 구조적 역학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동맹을 통해 우리의 국방력 강화 노력을 지속해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동맹이 더욱 더 절실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중국의 군사적 부상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중국과 북한이 아직도 사실상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은 동맹을 부정한다. 왜냐면 동맹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고, 연합군사훈련도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거래는 안한 지 더 오래되었다. 그러나 북·중 양국 동맹관계의 근간이 되는 이른바 ‘북중우호협력조약’이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동 조약은 어느 일방이 침공을 받을 경우 다른 일방이 군사적으로 도와줘야하는 임무와 사명을 부여한다. 이런 보장으로 북한이 침공을 받을 때 중국의 자동 개입이 보장된다. 북한이 침공 받는 규정은 유권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이 침공을 했어도 이를 촉발시킨 원인을 적국의 도발로 간주했을 때 중국은 일방적으로 개입을 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발발 기원을 두고 오늘날까지 일각에서 북침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금 세상은 변했다. 70년 전만 해도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확신할 수 있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100여 년 동안 수없는 외세와의 전쟁, 그리고 내전을 계속 겪으면서 참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개입을 단행했다. 오늘날 중국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경제력도 막강하고 군사력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과거처럼 인해전술이 아닌 원거리에서 적군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화력과 무기를 다양하게 구비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 유사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가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상황도 과거와 현저히 다르다. 막강한 중국과 동맹을 유지하고 있고, 여기에 핵무기까지 '보유'했다고 자처한다. 이제는 군사적으로 막강한 중국이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하여 러시아와도 군사훈련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러시아도 어떠한 식으로든 중국에 동조해 북한을 돕겠다는 결의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지정학 전략의 판도가 본질적으로 변했다. 세계 수준의 중국 군사력, 북한의 핵무기, 러시아의 합세 의지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런 변화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려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아직도 주한미군을 어떻게 하면 철수시키고 어떻게 하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려는 구상에만 매몰되어 있다. 이들은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 발전이 우리의 주권, 생존권과 안보를 담보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오늘날까지 북한과 중국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중국은 우리의 정체성, 주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를 부정하고 우리의 주권을 부인하고 있다. 중국의 군함과 군용기는 우리의 영해와 영공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한다. 이들에게 국제법과 국제규범은 무의미하다. 중국은 사드 제재의 효과를 배가하려 한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을 아직도 일삼고 핵무기의 완성도를 위한 노력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안보상황이 변한 가운데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주장은 우리의 안보기반을 흔들어대고 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주장은 희대의 자가당착이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남북한 간만의 의제가 아니다. 주변국의 다자적인 협력의 보장 없이 이뤄질 수 없다. 한국전쟁 참전국의 협력 없이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북한의 비핵화가 선제되어야 하고 북·중동맹관계의 폐기도 주장되어야 한다. 심지어 한반도 유사시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훈련도 한반도 주변지역에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만 고집한다. 이런 연유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시기상조이고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적국과의 평화는 상호주의만이 보장할 수 있다. 상호주의는 신뢰를 전제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상호주의는 물론 상대의 위협마저도 무시하면서 우리의 일방적인 양보만을 고집한다. 그것도 아무런 대안 없이 말이다. 그래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대내외적으로 설득력이 없고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안전보장을 무장해제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과 생존권 포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로마 교황에게 북한을 방문해서 한반도 평화 모멘텀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런 그의 발언이 교황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교황은 아마도 속으로 북한 방문이 실현성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은 코로나 사태 이후 외교관을 포함한 외국인을 모두 추방시켰다. 국경도 모두 폐쇄시켰다. 심지어 중국에 퇴임한 대사의 귀환도 불허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를 안고 들어올까봐 취한 조치다. 그래서 현재 주중 북한대사관에 신임과 퇴임 대사 두 명이 모두 상주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국경개방을 알리는 신호탄은 퇴임한 주중 북한대사 지재룡의 귀환조치가 될 수 있겠다. 북한에 올인하는 이 정부가 북한의 상황을 모르고 교황에게까지 북한 방문을 종용한 것 보면 아마추어 외교로 우리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린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것 같지 않다.

우리말에 ‘유종의 미’가 있다. 시작을 잘했어도, 과정에서 과오를 범했어도, 마무리는 잘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최선의 결실을 얻자는 의기투합의 의미를 내포한다. 지난 4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정부는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임기 4개월,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국가발전의 기반에 집중하는 것이 유종의 미가 될 것이다. 이제는 날로 치솟는 유가와 환율 방어에 집중할 때다. 대장동과 같은 희대의 사기극을 해결함으로써 무너진 사법과 경제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길 한 국민으로서 희망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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