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주헝가리 대사로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비행기 안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신임장을 수여하며 건네주신 한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019년 한 해 헝가리 내 제1의 투자국이 한국이라고 하던데 할 일이 많겠다”는 격려였다. 나로서는 '경제외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대사직을 수임해야겠구나' 하는 다짐의 계기이기도 했다.
와서 보니 그 현실은 더욱 분명했다. 한국이 2019년도 대(對) 헝가리 투자국 1위로 부상한 데 이어, 올해 1월 말 SK이노베이션의 2조 6000억원(약 22억9000만달러) 투자 결정은 결정은 헝가리 역사상 단일 연도 최대의 그린필드 투자였고, 이로써 한국은 누적 기준으로 헝가리의 5대 투자국이 되었다. 헝가리는 오랜 기간 농업이 중심인 국가였지만 최근에는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첨단 제조업 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에 한국기업 수는 두 배가 훌쩍 넘어 260여개가 되었고, 재외국민 수도 3000명이 늘어 5000명에 가깝다.
헝가리는 탈냉전 하 우리 북방외교의 물꼬를 터준 국가로서, 수교 이래 지난 32년간 양국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고,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가 되었다. 헝가리는 벤츠, 아우디, BMW 등 독일의 3대 완성차를 생산하는 곳이고, 외국 기업들에게 최고의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한국기업들의 신규공장 준공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어김없이 헝가리 투자청장, 외교부 차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 9월 페츠 시에 건설된 한온시스템의 세 번째 공장 가동 기념식에는 시야르토 외교장관이 해외출장 일정까지 조정해 가며 참석했고, 현장에서 회사 사장단과의 긴 시간 추가협의를 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7박 9일 일정으로 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 글래스고 일정을 마치고 2~4일 헝가리를 방문한다. 비세그라드 그룹국가, 그중에서도 한국과의 인연이 깊은 헝가리 방문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문 대통령의 헝가리 국빈방문은 김대중 대통령 방문 이래 20년 만이고, 지난 2015년 프라하에서 개최된 1차 한-비세그라드 정상회의 이후 6년 만의 비세그라드 국가 방문이다. 이번 방문을 시작으로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여의치 못했던 신북방외교가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붙이(아버지), 마마(어머니)라는 표현이 통하고 아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자르인들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고, 130여년 전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수교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 사정이 더욱 나아져서 더 많은 우리 국민들이 이곳을 찾게 되고, 지난 5월 헝가리 정부의 재원으로 조성된 선박사고 희생자 추모공간도 많이 방문해 주기를 바란다. 32년 전 ‘푸른 다뉴브강’이라는 암호로 극비리에 수교 협상을 했던 한국은 이제 헝가리에 없어서는 안 될 전략적 파트너로 우뚝 섰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그래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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