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 입법화 움직임을 보인다. 법안 발의 후 1년 가까이 계류된 만큼 소상공인 사이에서 처리 요구가 커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주무 부처 간 힘겨루기가 끝나지 않은 데다 소상공인계와 스타트업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연내 처리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전날 오후 비공개 당정 협의를 열어 온플법 관련 법안 처리 방향을 논의했다. 공정위와 방통위가 각각 발의한 법안의 중복 규제를 조정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전혜숙 민주당 의원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 법안’을 발의했고, 공정위는 올해 1월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제출했다. 비슷한 법안을 놓고 양 기관과 각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논의는 계속 표류했다.
하지만 여당에서 직접 조율에 나서면서 두 법안을 모두 통과시키되 세부조항을 조정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측도 새로운 온플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어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소상공인계에서도 입법을 재촉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 참여연대 등은 지난 8월부터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온플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해 왔다. 소공연은 지난 9월 30일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위원회’를 발족하며 본격적인 대응 태세도 갖췄다.
이들은 네이버‧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침탈을 막기 위해 법 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배달의민족‧야놀자와 같은 플랫폼 기업이 소상공인에 과도한 수수료와 광고비를 책정하는 불공정행위를 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나아가 소상공인계에서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보다 강도 높은 규제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기재 소공연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위원회 위원장은 “미국의 반독점법안 패키지 법안에는 플랫폼 기업이 자사 상품‧서비스를 경쟁사보다 유리하게 노출하는 ‘자사우대’를 규제하고, 잠재적 경쟁자 인수합병을 금지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며 “온플법에도 이런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선 반발이 거세다. 거대 플랫폼의 횡포를 막겠다는 게 온플법의 입법 취지지만, 전방위적 규제로 혁신의 속도가 더뎌지거나 창업의 싹이 아예 잘릴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공정위가 발의한 온플법의 대상은 연매출 100억원 이상이거나 거래액 1000억원 이상인 플랫폼 기업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의 추산에 따르면 국내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온플법의 규제 대상이 된다. 이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규제 대상 플랫폼 기업이 5~6개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밖에 플랫폼 노출 기준이나 수수료 부과‧광고비 산정 등을 공개하도록 한 온플법의 세부 내용은 영업 기밀 등에 해당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코스포와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전날 성명을 통해 “온플법 처리 중단을 강력하게 요청한다”며 “디지털 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급하게 규제부터 도입하는 것은 전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항의했다.
여당이 온플법 통과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공정위와 방통위도 조율에 나섰지만, 소상공인계와 스타트업계의 의견 차이가 첨예한 만큼 연내 합의안이 도출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온라인 시장 규모와 성장 속도에 비해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법 제정 속도가 늦은 상황”이라며 “정부와 국회에서는 온플법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속도로 보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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