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 칼럼] 이분에겐 있고 그분<文대통령>에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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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경제부 부국장 겸 경제에디터
입력 2021-11-0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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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다리·직언 마다않는 '포용의 리더십'

  • 한편에만 서있다간 '不文可知' 됩니다

 

[김진오 경제부 부국장]

2005년부터 16년간 독일을 이끈 '무티(Mutti·엄마)'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국가 경제를 놓고 양다리 걸치는 학자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다'라고 논리를 펴는 그들에게 "경제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라고 거들며 오히려 '딱 한편'만 밀어붙이는 학자들과 거리를 뒀다.

메르켈은 또 직언을 할 수 있는 경제 참모를 곁에 두고 무한 신뢰했다. 이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정확한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최적화된 대책을 추출해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기민당이 기치로 내건 '모두가 잘사는 나라'에다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혜택', 즉 일자리 창출과 함께 성장에 기여하는 사람에 대한 혜택을 강조한 '신사회적 시장경제'가 이렇게 탄생했다.

메르켈의 평전을 쓴 작가이자 독일 최대 일간지 '쥐트도이체 자이퉁'의 외교정치보도국 국장인 슈테판 코르넬리우스는 이러한 그의 실사구시·포용적 리더십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메르켈은 동독 출신, 과학자, 여성이라는 삼중의 아웃사이더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비주류'라는 한계를 벗어났다.

메르켈과의 20년 인연을 바탕으로 메르켈 리더십을 펴낸 미국 저널리스트 케이티 머튼은 "메르켈은 수석보좌관 베아테 바우만 등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참모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기를 바랐다. 잠재적 라이벌이던 같은 기민당의 볼프강 쇼이블레를 자신의 첫 내무장관, 그리고 8년 동안 재무 장관으로 둬 유럽 재정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임기를 6개월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미래는 밝다는 '한편'에 서 있다. 우려하고 경고하는 '다른 한편'을 좀처럼 수용하지 않는다. 경제 성적표가 형편없다는 '다른 한편'의 평가를 어떻게든 뒤집으려고만 한다.

하도 많이 들어 마치 성경 구절처럼 익숙한 경제 어젠다. 임금과 소득을 높여 수요를 일으키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내용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정책은 문 정부 출범 당시 경제정책의 큰 틀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는 바람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고용이 위축되는 극심한 부작용을 불렀다. 이미 시장에서 실패가 입증된 정책으로 꼽힌다.

진보좌파 학자들조차 소주성이 기존 일자리만 보호하고, 있던 일자리는 없앴다고 비판을 쏟아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죽하면 소주성의 파탄을 속된 말로 '불문가지(不文可知)'라고 할까' 누구나 다 아는데 문 대통령만 모른다'라는 의미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한 행사에서 자리한 이인호 전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교수)은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은 종교적 기적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정부는 누가 뭐라든 귀를 닫고 "경제는 제대로 길로 가고 있다"는 자기 주문만 왼다는 얘기다. 빗나간 정책에 계속 집착한다면 편협한 오기(傲氣)정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으로 방향타를 돌리면 입은 더 벌어진다. 정부는 세금과 금융, 행정 규제를 강화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나섰지만 급증하는 수요 압력을 무시한 반시장 정책이 집값 폭등을 불렀다. 무엇보다 임대차 3법을 통해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입법 만능주의 정책은 전셋집 씨를 마르게 하고 세입자 부담을 대폭 키웠다.

집값 폭등과 함께 공시가격 인상까지 겹쳐 재산세와 종부세가 크게 올라 무주택자나 유주택자 모두 정부 대책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국책연구기관들이 나서 "실정 책임을 국민 탓으로 전가"한다며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조목조목 꼬집었지만 만시지탄이라는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마지막 시정연설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여전한 과제' '풀지 못한 숙제' 등으로 뭉뚱그리며 사실상 실패를 자인했다. 경제, 백신 등에 자찬하면서도 부동산 문제는 30분 넘는 시정연설 중 단 7초가 걸렸다. 언급 하자니 괜한 것 같고, 안 하자니 찜찜한 그런 심정이었을까.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바라보는 산업계 시각은 답답함을 넘어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 외면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지만, 현실적인 제약은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 설정으로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산업 구조와 관련 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따져봐야 한다. 태양광을 비롯한 각종 신재생 에너지를 급격히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탄소배출을 대폭 줄이려면 생산라인을 멈추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마주한 대한상의 한 간부는 "방법론 없이 기업들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목표를 일방적으로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며 "이런 중대 사안을 결정하면서 업계와 협의는커녕 의견조차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한숨 쉬었다.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쏠린다. 한국이 이번에 확정한 2030년 40% 감축을 연평균 감축률로 계산하면 4.17%에 달한다. 미국 2.81%, 유럽연합(EU), 일본 3.56% 등 주요국에 비해 훨씬 높다. 세계 1, 3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인도는 아예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4위 러시아는 2060년까지로 마감 시한을 고수했다.

국가 정책은 개인적인 신념이나 믿음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실과 미래에 일어날 파급효과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패를 맛볼 경우, 정책적 과오를 반성하고 진취적인 개선 방안을 도출하면 일정 부분 만회가 가능하다. 이런 과정이 닥칠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던 유권자들은 정직한 리더의 기본 덕목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언제쯤 임기를 마치고 박수받고 떠나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EU 정상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의 미학을 보여준 메르켈을 떠올리며 대선 투표 때까지 나에게 씌워진 유력 대권 후보 편견 걷어내기를 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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