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테스트’와 ‘개 사과’
이번 대선이 사실상 이재명과 윤석열(이하 李와 尹)의 맞대결로 굳어진 5일, 불현듯 떠오른 건 경선과정에서 두 후보가 보여준 ‘로봇 학대 논란’과 ‘개 사과’ 사건이었다. 해프닝 차원을 넘어 그 어떤 장면보다도 많은 걸 암시하는 ‘상징’으로 비쳤다.
李는 지난달 28일 ‘2021 로봇월드’ 행사장에서 로봇개의 성능을 시험해본다며 이 로봇개를 밀치고, 뒤집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거칠게 보였던지, “아무리 로봇이지만 그렇게 ‘학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李는 “로봇 테스트는 원래 그런 거”라며 “언론이 복원 장면은 뺀 채 넘어뜨리는 장면만 보여주고 과격하다는 건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尹은 지난달 21일 자신의 5‧18 발언에 대해 사과(謝過)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유감을 표명하긴 했으나, 사회관계망서비스(인스타그램)에는 반려견에게 사과(沙果)를 주는 모습의 사진을 올렸다. ‘사과하라고? 사과는 개나 주라!’는 뜻으로 읽히기에 충분한 대응이었다.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사진을 누가 올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尹은 “모두가 제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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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尹은 모두 정치초짜다. ‘여의도 정치’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건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모든 게 다 시빗거리가 되는, 적의(敵意)로 충만한 진영(陣營)정치의 한복판에선 조심, 또 조심했어야 했다. ‘여의도 정치’는 비효율의 상징처럼 돼 있지만, ‘묵은 정치’ 특유의 신중함과 안정감도 가르친다. 우리는 대선 내내 두 후보가 한국 정치에 신선한 충격을 줄 거라는 기대감과, 본질보다는 사소한 것들 앞에서 망신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사이에서 가슴을 졸이게 됐다.
정치 엘리트 충원 방식 고민해야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가 될 거라고 한다. 한국갤럽 조사(10월 19∽21일)에 따르면 李와 尹에 대한 비호감도는 각각 60%(호감도 32%), 62%(호감도 28%)에 달한다. 비호감도가 높다는 것은 선뜻 믿고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50.9%에 이른다.(문화일보 10월 29∽30일 조사) 이 또한 ‘역대급 부동층’이다.
이런 ‘비호감’은 선거를 정권 유지와 교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있다. 물론 모든 선거는 교체 여부로 귀결되지만 그 과정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 원래는 좋아하는 후보가 있어서 그 후보를 지지하고, 그 총합의 결과로 정권이 유지, 또는 교체되는 게 맞는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거꾸로다.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가 먼저이고 후보는 그다음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한 피로도와 후보들의 면면에 대한 실망감 탓이 크다.
정치 엘리트의 충원방식과 반(反)엘리트주의 풍조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가 시급하다. 이런 대선이라면 국회의원 선수(選數)는 늘려서 뭘 하나. 4선, 5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여야 가릴 것 없이 직업 정치인들의 통렬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기자들의 속어로 ‘영양가 없이’ 당직만 좇는 다선(多選)의원들은 전직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장동 게이트와 투트랙 특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부터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선거판이 ‘범죄혐의자 대 그 뒤를 쫓는 검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도 국민의 60% 이상은 대장동의 책임이 李에게 있다고 믿는다. 尹 측은 정권교체를 위해 ‘반(反)대장동 연합 국민행동’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국가의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할 선거가 이런 식으로 흘러선 곤란하다.
李의 무대응 전략에도 불구하고 유동규(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에 이어 핵심 피의자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도 배임과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李에 대한 배임 문제는 유동규와 김만배,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만 밝히면 풀린다. 尹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도 철저히 규명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尹은 5일 “대장동과 고발사주 의혹, 둘 다 특검하자”고 치고 나왔다. 李가 선제적으로 특검을 수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李는 대선 레이스의 선두주자답게 좀 더 담대해야 한다. 그가 1989년 변호사를 개업하고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때까지 십수년간의 활동에 대해서도 더 소상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인권변호사로서의 활약상이 재조명되고 조폭연루설도 사라진다. 과거 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판·검사 임용을 포기한 변호사들 중에는 개업−인권‧노동 변호사−시민단체−정치권 진출의 코스를 밟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인권변호사’가 되기 전이다.
尹의 근현대사 인식은?
尹은 후보 수락연설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정권교체의 당위성과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강조했을 뿐이다. 반면 李는 이번 대선을 “부패 기득권과 최후의 대첩”으로 다시 규정했다. 그가 즐겨 쓰던 ‘친일파’라는 단어는 빠졌지만 부패 기득권 세력의 뿌리가 친일파에 있다고 믿고 있음은 자명했다.
그는 2017년 촛불혁명 당시 펴낸 『대한민국 혁명하라』는 저서에서 “해방 후 70년이 넘도록 청산되지 않은 친일 기득권 세력, 분단을 고착하고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분단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서문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백성을 수탈하고 폭정을 자행한 권력자가 스스로 물러난 적은 없다.··· 탱크를 몰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이 국민 수백 명의 가슴팍에 총알과 대검을 찔러 넣었고, 쇠심 든 몽둥이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런 자들이 지금껏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가히 치열한 역사인식이다.
尹에게 인터뷰어가 물었다. "당신은 재학시절 학내 모의재판에서 5‧18을 무력 진압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는데···." 尹이 답했다. “나는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12·12는 군사반란이고, 5·18은 군사반란과 헌정파괴 행위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결론이 내린 사건임에도 그 정신을 왜곡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는 차단할 필요가 있다. 5·16에 대해서도 쿠데타 내지 군사정변이라는 의견에 공감한다.”
정책과 공약, 실용주의로 수렴돼야
李와 尹의 정책과 공약을 알려면 국가(정부)에 대한 그들의 인식부터 살펴야 한다. 尹은 젊어서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년)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여러 번 숙독했다고 한다. 2019년 尹이 검찰총장에 취임했을 때 대검은 그가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왔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불완전한 시장이 불완전한 정부보다 낫다”는 게 프리드먼의 기본 철학이다.(이경욱 『윤석열의 진심』 2021년) 프리드먼은 “평등을 자유보다 앞에 놓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를 다 잃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李는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에서 드러나듯이 국가의 더 적극적인 개입을 지지한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거다. 그가 발표한 부동산 공약 중에는 △개발이익 완전 환수제 △국토보유세 신설 △건설원가 분양원가 공개 전국 확대 △주식 백지신탁제도의 부동산 자산 확대 등과 같은 정책들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국가론은 정책화 과정에서 실용주의로 수렴될 것이고, 또 되어야 한다.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듯이, 국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李는 “경제에, 민생에 파란색, 빨간색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유용하고 효율적이면 박정희, 김대중 정책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했다. 양자 사이에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두 후보 및 양 캠프 간 건강한 논전(論戰)을 기대한다.
1∽2% 박빙 승부, ‘깐부’에 달렸다?
李, 尹의 맞대결 속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장동 특검을 요구하며 李에게 각을 세우고 있다. 2년 전 선거법 개정과 꼼수 비례정당 파문의 앙금이 여전하다. 중도 보수, 혹은 중도 진보로 치부되는 안철수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완주를 다짐하고 있다. 2017년 대선처럼 5파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후보가 도중에 교체되지 않는다면 李와 尹이 일단 40%씩 나눠 갖고, 나머지 20% 부동층(스윙보터)를 놓고 다투게 돼 결국 1∽2% 차이로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봤다. 결국 누구와 ‘깐부’가 되느냐가 관건이다.
흔히 한국 선거는 ‘누가 누가 잘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누가 덜 못하느냐’의 게임이라고 한다. 실수를 덜 하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정치 신인들이어서 당(黨)을 장악할 카리스마도 기대하기 어렵고 보면, 그 공백을 진영(陣營)이 밀고 들어와 진영 간 대결이 더 격화될 개연성도 있다. 역대 어떤 선거보다도 포퓰리즘 경쟁도 거셀 것이다.
한국갤럽이 5일 내놓은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한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李와 尹은 각각 26%, 24%로 접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尹이 후보로 확정되기 전의 조사여서 적실성은 다소 떨어지나 홍준표 15%, 유승민 3%, 이낙연, 심상정, 안철수가 2%로 그 뒤를 이었다. 李나 尹은 이들과 연대하거나 찰떡 케미를 이뤄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 조사에선 ‘정권교체론’이 57%로 ‘정권유지론’ 33%보다 월등히 높았다. 尹은 자신의 지지율을 정권교체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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