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번째 빚은 솽스이 라방(라이브상거래 방송)에서 시작된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라 불리는 광군제(光棍節), 중국어로 11월 11일, 쌍십일이라는 뜻으로 솽스이(雙十一)라고도 불린다.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 광군제는 매년 수십조, 수백조원의 거래 신기록을 세우며 중국 최대 쇼핑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인들의 광군제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고 중국 제몐망, 베이징상보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중소기업 광군제 딜레마 "참가하면 '적자'···참가 안하면 '매출 0'"
지난해 말부터 몇몇 전자상거래, 쇼트클립(짧은 동영상) 플랫폼에 입점해 건강차(茶)를 판해매오던 즈청씨. 그는 올해는 알리바바 산하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 플랫폼을 통해 광군제에 참가했다. 플랫폼 규정에 따라 그는 '2+1'과 '40% 할인'이라는 혜택을 내놓았지만, 업체간 경쟁이 워낙 심해 페이지에 상품이 거의 노출도 되지 못했다고 현지 매체에 불만을 토로했다. 즈씨는 "그래도 광군제에 참가하면 주문량이 조금 늘긴 한다. 하지만 각종 할인 혜택을 제하면 결국 물건을 팔 때마다 손해가 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즈씨에 따르면 적자액만 매출의 최소 10%에 달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참가한다는 게 즈씨의 말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물건을 팔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결국 광군제 때 제공되는 모든 할인 혜택은 상인들이 부담한다"며 "광군제 기간엔 오히려 평소보다 75% 적게 번다. 25% 이익은 소비자와 플랫폼에 양보하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솽스이에 불참하면 중소업체로선 매출이 생기질 않으니 판매 데이터 자체가 없어 사실상 플랫폼에서 생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광군제 때 이득을 보는 건 대형 유명 브랜드다. 실제 광군제만 되면 '몇 초 만에 몇 억개 팔렸다'는 등과 같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몇몇 극소수 대기업이다. 이들도 적자를 입긴 하지만, 그만큼 매출이 늘어나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브랜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65일 라방에 밀려 '광군제' 약발 식었다···트래픽도 들쑥날쑥
광군제에 대한 사회적 피로감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과거 11월 11일 딱 하루만 진행했던 솽스이가 최근엔 사실상 지난 1일부터 시작해 열흘 넘게 길어졌다. 그렇다고 트래픽이 열흘 내내 폭주하는 건 아니다. 일부 집중 시간대만 빼놓고는 트래픽이 저조하다. 결국 따져보면 쇼핑축제 기간이 늘어나도 전체 트래픽 규모는 크게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 패션브랜드 책임자 장씨는 "오히려 10월 말에는 매출이 너무 저조했다. 다들 11월 1일 시작되는 광군제 행사를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11월 1일 '반짝' 매출이 늘었다가, 4~10일까지는 또 매출이 저조하다가, 또 11일 당일에는 급증하는 등 판매 기복이 심해 오히려 더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라이양 중국 베이징상업경제학회 상무부회장은 그동안 영세업체들은 시장점유율이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군제 때 무리하게 대대적 할인을 내걸고 적자를 내더라도 참여를 했다며, 하지만 최근 광군제 열기가 예전만 못해 참가 효과도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라방까지 성행하면서 광군제 때 트래픽을 끌어모으기도 예전처럼 쉽지 않다. 특히 웨이야(薇婭), 리자치(李佳琦) 같은 유명 왕훙(網紅·온라인스타) 라방으로 트래픽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온라인쇼핑 방문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학자 쑹칭후이는 온라인쇼핑몰마다 연중 할인행사를 하고 게다가 라방이 보급되면서 광군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매력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실제 광군제 이외에도 중국엔 12·12 '솽스얼(雙十二)', 6·18 징둥 쇼핑축제 등 각종 온라인 쇼핑축제가 넘쳐 난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전자상거래 플랫폼마다 쇼핑 축제를 너무 많이 만들어 소비자들도 이제 무뎌졌다"며 "게다가 이미 웨이야, 리자치 같은 유명 왕훙의 라방에서 파는 물건이 가장 싸다는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어서 굳이 광군제를 기다려 물건을 살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광군제 마케팅에 '신물'···청년 빚 부추기는 원흉 비난도
광군제만 되면 업체들이 사치·낭비를 조장하는 과열 마케팅에 소비자들도 점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중국 소셜커뮤니티 사이트 더우반의 '미니멀라이프(極簡生活)' 소모임에 '아이차이'라는 누리꾼이 쓴 "올해 솽스이에는 쇼핑하지 않겠다"는 제목의 글을 보자.
그가 광군제 '보이콧'을 선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격이 싸지도 않고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쇼핑해야 하고, 둘째, 매년 광군제 때마다 쇼핑을 했는데 결국 쓰레기만 잔뜩 쌓였고, 셋째, 필요한 것만 사야지 싸다고 무조건 사지 않기 위해서다.
중국 젊은층 사이에서는 실제로 아이차이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중국 아이메이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광군제때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응답한 누리꾼이 23%로, 전체 응답자의 4분의1에 육박했다.
청년들의 빚을 부추기는 광군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크다.
광군제만 되면 펀치러(分期樂, 할부의 즐거움) 등처럼 전자상거래 업체 산하 대출 플랫폼에서 쏟아내는 할부소비 신용대출 서비스에 처음 눈을 떠서 젊은 나이에 거액의 빚을 진 청년들도 상당수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도 나중에 차차 나눠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 물건을 계속 사다가 결국엔 빚더미에 앉은 것이다.
더우반의 '부채자연맹(負債者聯盟)'이라는 소모임에서는 광군제 쇼핑으로 어떻게 거액의 빚을 지게 됐는지 아픈 사연을 공유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중국은행소비금융연합이 발표한 '청년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주링허우(90後, 1990년대 이후 출생자) 1억7500만명 가운데 대출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응답자는 13.4%에 불과했다. 최소 한 번 이상 신용대출을 받은 주링허우가 86.6%에 달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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