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6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판사 사찰 의혹’으로 전·현직 검찰 관계자 6명을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이들 중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만 지난 달 22일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작년 사건담당 판사 37명의 출신과 세평 등이 기재된 문건(판사사찰 문건)을 작성 및 배포했다는 혐의다.
윤 전 총장이 공수처에 입건된 건 이번이 네 번째로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 수사 방해 의혹 ▲고발 사주 의혹 등으로 각각 입건됐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는 지난 달 14일 윤 후보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청구 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원고(윤석열)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공수처는 1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직접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입건을 결정했다. 서울행정법원의 1심 선고가 공수처의 수사의 계기가 된 것이다.
법원은 해당 문건이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1항’을 위반해 수집된 개인정보들을 토대로 작성됐다고 전제했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제1항에서는 개인정보처리자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제1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제2호) 등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나열한 조항이다.
재판부는 "원고(윤 후보)가 판사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것을 지시했다고 볼 증거는 없으나, 이를 보고받았음에도 위법하게 수집된 개인정보들을 삭제 혹은 수정하도록 조치하지 않고 위 문건을 반부패·강력부 및 공공수사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하였으므로, 이러한 원고의 행위는 검찰총장으로서의 직무권한을 행사하여 직무관련공무원인 수사정보정책관 등에게 그 직무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를 한 것으로서 법령 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윤 후보가 판사사찰을 직접 지시했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판사사찰 문건을 보고도 시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수사에 활용하도록 지시했다는 것 자체로도 범죄가 된다는 판단이다.
검찰청 공무원 행동강령 제 13조의3(직무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 행위의 금지)은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권한을 행사하거나 지위·직책 등에서 유래되는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부당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라고 정하고 있다. 또 같은 조 2호에서 ’직무관련공무원에게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 부당한 지시·요구를 하는 행위'를 금지되는 행위 유형으로 나열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공수처는 대검 감찰부를 압수수색해 ‘고발사주’ 의혹과 ‘장모 대응 문건’ 관련한 감찰 자료를 확보했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었던 시절 대검 대변인들이 사용하던 공용폰의 포렌식 자료도 압수했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절 대검 대변인은 권순정 現부산지검 서부지청장으로, 다음 대변인에게 그대로 넘어갔다가 지난 8월 새 기종으로 교체되면서 기기는 반납을 받은 상태다. 대검 감찰부는 '고발 사주-선거개입의혹'과 관련해 해당 휴대폰을 포렌식했으나 대변인이 바뀔 때마다 초기화되고, 휴대폰이 반납될 때 한번 더 초기되하면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권 前대변인 측은 포렌식 당시 자신이 참관하지 못했다며 '위법한 포렌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공수처가 압수수색해 포렌식하면 번거롭고 정치적 논란이 있다는 점을 우려 대검 감찰부를 우회활용했다는 이른바 '하청감찰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를 두고 김오수 검찰총장과 대검 출입기자단이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한동수 감찰부장은 자신의 SNS에 “공용폰 보관 여부, 확보 과정, 포렌식 절차 등에 있어 공수처와 일체 연락한 바 없고, 공수처도 대검 감찰부의 ‘뉴스버스 보도 의혹’ ,‘ 장모 대응문건 등 작성 관련 의혹’, 진상조사 기록을 압수하여 위 결과보고서만 입수했음”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갈등이 ‘고발 사주’ 의혹을 두고 양측이 장외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손 前정책관, 권 前대변인 등은 공수처나 대검 감찰부의 포렌식에 최대한 흠집을 내 어떻게 든 증거능력을 흔들겠다는 심산이고, 반면 공수처나 대검 감찰부는 두 사람이 명백한 물증 앞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풀이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지만 손 前정책관 측이 선제공격을 한 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반격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와 관련해 공수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장모 비리 의혹과 관련해 손 前정책관이 '성명불상'의 상급간부의 지시를 받았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직제상 손 前정책관의 상급자는 대검차장과 검찰총장 뿐이다.
이 경우, 문제의 문건을 기자들에게 보낸 권 前대변인 역시 곤란한 입장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역시 윗선의 개입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상 윤석열 후보에게 직권남용죄 적용 가능성이 있음을 에둘러 시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공수처로서는 이 카드를 십분활용할 공산이 크다.
권 前대변인은 당시 최씨의 비리 의혹뿐만 아니라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의혹이 함께 제기됐던 만큼 오보를 막기 위해 기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대변인의 정당한 업무였다는 입장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 손 前정책관의 신병 확보에 성공한 뒤윤 후보의 관여 여부까지 입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공수처가 이번 의혹의 실체 규명에 실패해 일부만 기소하거나, 향후 재판에서 유죄 입증에 실패할 시 ’윤석열 수사처‘라는 비난도 커질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