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NK어프로치] 北의 대선 개입, 이번엔 어떻게 불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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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1-11-1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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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주요 정당의 후보가 확정되면서 대통령선거가 본격적인 각축전에 돌입했다. 한국의 대선 국면을 북한 정권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수정당이 ‘궤멸’당하고 진보정당이 집권하기를 바라는 북한 정권의 내심은 북한의 공식·비공식 매체들을 통해 이번에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대선이나 총선 때면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모든 매체들이 총동원돼 한국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 애쓰는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북한 정권은 왜 이러는 것일까.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한국 선거에 개입하고 있을까. 이것을 주도하는 기구는 어디일까. 북한은 자신들의 노력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일까.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생각은 아예 없는 것일까. 북한의 깊은 속셈을 정확히 읽어내기는 어렵겠지만, 대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실마리들은 의외로 여러 곳에 널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지난 1월 규약을 개정했다. 잘 알다시피 조선노동당은 북한의 최고 통치기구이고, 당규약은 헌법 위에 위치하는 통치 규범이다. 조선노동당의 개정 규약은 당의 당면 목적에 대해 일부를 고쳤다.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을 수행한다’는 내용을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한다’고 수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이 남조선혁명을 포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이는 과한 해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기존의 ‘남조선혁명론’을 합법적 정치 공간을 활용한 선거혁명의 영역까지 확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북한의 노선에 동조하는 친북적 성향의 정당들이 한국 국회에 진출하거나 나아가 집권 가능성까지 열어가는 일련의 과정들도 ‘남조선혁명’의 실현 과정으로 본다는 것이다. 

‘남조선 인민들’의 혁명 역량을 높여 나가면서 ‘전 조선반도의 사회주의화’를 이루는 것은 조선노동당의 존재 이유이자 궁극의 목표임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남조선 인민들’의 정치의식과 역량이 고조되는 각종 선거, 그중에서도 전 국민의 이념적 구도와 집권세력이 결정되는 대선은 북한의 대남 전략이 총동원되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이 대남 전략 차원에서 한국 정치인을 포섭하는 등의 작업은 오래전부터 이어왔지만, 대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권 때부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전에는 사실상 한국의 정권교체가 없었던데다 진보세력의 집권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북한 정권으로서도 체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 등을 겪으면서 한국에 진보정권이 들어섰을 때의 효과를 톡톡히 맛본 북한으로서는 이후 한국의 대선에 개입하고픈 유혹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대남 선거공작을 담당하는 중심 기구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남 관련 여러 부서들이 모여 태스크포스(TF)를 결성하고, 주요 사항은 최고지도자에게 직보한다고 한다. 한국의 선거 관련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는지는 극비사항이라 알 수가 없지만, 평소의 대남 정보기구들이 총동원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조국통일연구원이 한국 및 전 세계 각종 언론 보도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걸로 전해진다. 여기에 한국의 각계 각층 인사들과 접촉하는 요원들을 통해서 파악한 정치 동향 등도 당연히 분석에 포함된다. 통일전선부는 이렇게 수집한 자료와 분석 등을 갖고 선거 개입을 위한 기본지침을 만들고 최고지도자의 비준을 받은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은 한국의 대선이 끝난 직후 북한의 대남관련 연구기관의 책임자급 인사를 만난 적이 있는 한 언론인은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우리는 노무현이 이길 줄 알았다.”
“아니, 한국에서도 누가 이길 줄 몰랐는데 북쪽에서 어떻게 알았나?”
“우리 연구소에서 연구원 전원에게 누가 이길 것인지 써내라고 했는데 노무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상 득표수까지 써내라고 해서 집계했더니 노무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내가 좀 줄여서 상부에 보고했다. 근데 개표해 보니 원래 연구원들이 예상했던 득표수가 정확했다.”
“거참.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예측할 수가 있었나?”
“우리는 그저 남조선 신문들을 열심히 보고 분석했다. 특히 선생이 있는 신문을 많이 봤다.”

북한 인사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고, 허풍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의 언론을 통해 얻는 공개된 정보들이 선거 정세 분석의 주요 자료로 쓰이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북한의 선거 개입 방식은 북한 매체를 통한 보수정당 후보의 비방이 기본 사업이다. 이것이 실제 한국 선거에서 진보정당에 도움이 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통일전선부가 반드시 해야 하는 기본 사업으로 확정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겨냥한 북한 매체들의 스피커는 이미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12일 북한 선전 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국힘(국민의힘)이 터뜨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저들의 최대 적수를 거꾸러뜨리고 대선 국면을 저들에게 유리하게 돌려보려는 술수에서 비롯된 희대의 정치드라마”라고 외쳤다. 대선 후보도 정조준한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을 일으킨 윤석열 후보를 ‘파쇼독재통치에 현혹된 미치광이’라고 욕했다. 이런 비난이 한국의 일반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칠지는 회의적이지만 최소한 북한 추종자들에게는 강한 메시지를 줄 것으로 북한은 기대할 것이다. 예상대로 진보진영의 후보에 대해서는 아직 별다른 말이 없다. 

그렇다고 북한이 진보정당에 유리해 보이는 행동만 취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작년 4월 총선 때 북한은 선거일을 하루 앞둔 4월 14일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여러 발을 발사했다. 북한 도발로 긴장이 고조되면 보수정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 예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으로서는 핵과 미사일 개발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계획표대로 실행해 나간다는 의지를 과시하면서, 한편으로는 필요할 경우 진보집권층에도 일정 수준의 경고를 발한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으로서는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의 실패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속에서 청와대와 여당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를 느꼈고 타이밍을 총선 직전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사람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는 ‘접견자’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난 수위가 낮았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비교적 이념성향이 덜한 실용적 스타일인데다, 어차피 집권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집권 이후의 관계를 고려해 비난 수위가 조절된 것으로 여겨졌다.

북한이 한국 선거에 개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의 하나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아마도 지금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문제를 숙고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한국 측에 주는 하나의 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반드시 보답을 받으려 하고, 보답의 규모에 따라 회담 성사 여부가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대남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한국 선거에 악용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 어려운 만큼 북한발 의외의 ‘돌발 사건’이 터져 나올 위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에 비추어 북한의 선거 개입이 갈수록 무력화되고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마냥 방심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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