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모 중학교 국어 교사 A씨(27·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즌이 다가오면 겁이 난다. 수능 감독관으로 차출이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A씨는 “수능 감독관으로 참여하면 (감독) 수당(15만원)을 받긴 하지만, 이걸 뛰어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며 “수능이 수험생 인생의 갈림길에 있는 중대한 시험이기에 부담감이 크고, 수험생의 민원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피로감이 상당히 높다. 가능하면 수능 감독관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근무하는 B씨(45)는 그간 10여차례 이상 수능 감독을 봐 왔다. 올해도 수능 감독을 하는 B씨는 "다른 교사들이 '몸이 아프다', '친인척이 위독하다' 등 각종 핑계로 차출을 거부해 어쩔 수 없이 내가 교육청 공문에 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하루 종일 긴장감 속에 서 있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수험생들로부터 제기되는 각종 민원들"이라며 "기침을 해 시험을 망쳤다는 등 황당한 민원에도 반드시 교육청에 가 소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교사들 사이에선 다들 빠지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능 감독관 업무가 일선 교사들에게 육체적 어려움뿐 아니라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7일 교육계에 따르면 일선 교사들 중심으로 수능 감독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는 학생을 깨우지 않았다’, ‘발소리가 시끄럽다’ 등 민원이 제기되고, 소명 책임이 전적으로 감독관에게 있는 등 과도한 책임 요구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최근 중·고등학교 교사 4819명을 대상으로 `수능 감독제도 개선을 위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이 같은 분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이에 따르면 `과도한 책임(약 98%)`과 `체력적 힘듦(약 97%)`이 교사들이 수능 감독관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민권익위가 파악한 민원에 따르면 2020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던 2019년에는 290여건, 2020년은 11월까지 약 150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이 중 시험 감독관의 태도 및 운영에 대한 ‘시험 당일 불편·불만’은 총 109건(20학년도)으로 37.6%를 차지했다. 감독관에게 과도한 책임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서울시교육청에 접수된 민원에는 감독 교사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민원도 있었다.
민원인 B씨는 “아이에게 듣기로는 40대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하체는 완전히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상체는 허리선까지 오는 옷을 입고 시험장으로 들어왔다고 한다”며 “남자분이시니 달라붙은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지만 너무 선정적이어서 시험을 보는 내내 혐오감 때문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민원이라는 지적이다. 감독 교사의 옷차림이 시험에 직접적으로 방해가 되는 행위가 아닌데다 혐오감을 주는 의상의 기준이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감독관으로 차출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적잖다.
권익위에 따르면 2020학년도 수능 관련 민원 총 290여건 중 30건은 감독관 처우 개선, 감독 정보 유출 등 감독관 차출에 대한 불만이었다. 2021학년도 수능 관련 민원에서도 150여건 중 13건은 감독관 회피 사유 문의, 처우 개선 등 감독관 차출 불만에 대한 민원으로 파악됐다.
대다수의 교사 및 단체는 수능 감독관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중등교사노조)은 지난 5일 `수능 감독관 서약서 폐지 및 감독관석 의자 배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능 감독관을 기피하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다. 체력적 부담과 함께 시험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해당 감독관이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등 부담이 과중하다’는 것이 골자다.
교원단체들은 최우선 개선 과제로 규정 절차와 작은 실수만으로도 민원이 제기되는 점을 꼽았다. 조윤희 대한민국교원조합 상임위원장은 “종료 5분 전 답안지 교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규정에 따라 교체를 안 해줬다는 이유로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는 폭언을 듣기 예사”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관의 구두 소리에 방해를 받았다거나 화장품 향기 때문에 시험을 치는 데 방해가 됐다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맹보영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은 “지난해도 한 감독관이 시험 중 기절을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든 업무다. 하지만 감독관들이 힘들어서 발을 잘못 디딘 것 갖고도 민원이 들어온다”며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해도 작은 사건은 생길 수 있다. 개선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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