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요소수 부족으로 난리다. 이뿐만 아니다. 제설용 염화칼슘도 심상치 않다고 한다. 모두 중국발 위기다. 이는 예상치 못한 가운데 큰 위협으로 찾아든 ‘검은 백조’(black swan)가 아니라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대비하지 못해 맞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다.
이 같은 현상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규모와 범위 면에서 엄첨난 기술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예컨대 지난 50년간 자동차 회사들이 채용해 온 엔지니어들의 전공을 보면 시대의 변화가 한눈에 읽힌다. 주류가 기계공학에서 전자공학으로, 그리고 재료공학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화학공학이 강세다. 자동차가 가솔린에서 전기차(EV), 수소차(HV) 시대로 이행되는 가운데 나타난 현상이다. 엔진의 시대에서 배터리의 시대로 가는 것이다. 이는 화학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준다. 화학의 모든 것은 이른바 ‘주기율표’에 담겨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계에서는 ‘주파수(周波數)’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에서는 ‘주기율(週期律)’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경제학에서 볼 때 이 주기율 전쟁은 첨단소재·부품·장비의 근간을 이루는 원소(元素)를 재빨리 안정적으로 확보해 국가경쟁력에서 우위를 지키려는 기술패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원소 기술경제’가 지금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의 키워드다. 최근 새로운 정책영역으로 등장한 경제안전보장(경제안보)에서도 전략 강화가 필요불가결한 부문으로 꼽히고 있다.
경제안전보장이란 ‘나라의 독립과 생존·번영을 경제면에서 확보하는 것’이다. 경제안보와 관련된 몇 개의 국제뉴스를 읽어 보자.
#(2021년 10월 5일, 도쿄)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산화탄소(CO₂)를 배출하지 않는 연료용 암모니아의 국제거래 활성화를 위해 가격지표 만들기로 했다. 지금은 비료용 거래만으로 지표가 없는 미성숙 시장이다. 제조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과 연동시키는 등 새로운 지표를 관민이 만든다. 탈탄소 연료로서 수요 확대를 전망하고 거래 환경을 갖춘다. 상사와 전력회사 등이 참여하는 관민의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1년에 걸쳐 논의한다. 10월 6일에 열리는 제1회 연료 암모니아 국제회의에서 이를 표명한다. 기업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는 방책을 각국 정부나 기업과 만든다. 석탄 화력발전에 암모니아를 혼합하면 CO₂의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기술은 확립되어 가고 있지만 국제시장이 아직 없다. 경제산업성은 연료 암모니아의 국내 수요를 2030년에 연 300만t, 50년에 3000만t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2050년에 세계 전체에서 1억t 규모의 연료용 암모니아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1년 10월 6일, 뉴욕)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와 제너럴 일렉트릭(GE)은 6일 희토류(rear earth) 등의 공동 조달에서 제휴한다고 발표했다. EV와 신재생에너지 기기 등 두 회사의 제조업 부문에서 사용하는 희토류를 공동으로 조달한다. 2개 미국 대기업이 손을 잡음으로써 희소 자원을 둘러싼 글로벌 조달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전기 모터 등에 이용하는 희토류와 자석, 변압기에 이용하는 전자강(鋼) 등이 공동 조달 대상이며, 두 회사의 부품·소재 메이커도 조달에 참가한다. EV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이용하는 전기모터에는 디스프로슘 등의 희토류를 사용한다. 세계적인 환경 규제의 강화와 더불어 희토류 시세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대통령령에 서명해 반도체와 의약품, EV용 전지, 희토류를 중점 4개 품목으로 정했다.
#(2021.10.15, 런던) 중국과 유럽에서 심각해지는 전력 위기가 비철금속에 파급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력 부족과 유럽의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급등을 배경으로 제조할 때 전력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비철금속의 생산 시설에서는 감산이나 생산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공급 우려로 재고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수급 압박 우려로 알루미늄, 구리 등의 국제 가격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국제 지표가 되는 런던금속거래소(LME)의 알루미늄 3개월 선물 가격은 15일에 일시 t당 3200달러대로 상승하면서 2008년 7월 기록한 3380달러의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 구리도 t당 1만300달러대까지 상승해 올 5월 기록한 최고치인 747.50달러 경신이 눈앞에 보인다. 아연도 15일 장중 한때 t당 3900달러대로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전력 부족이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면서 다양한 상품의 제조비용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근거지를 둔 아연·납 생산업체 닐스터는 13일 전력비용의 대폭 상승 등에 따라 공장을 풀가동하는 것은 이제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며 유럽 3개 제련소의 생산을 이날부터 최대 5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의 알루미늄, 불가리아의 아연 제련소 등도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알루미늄이나 아연만큼은 아니지만 구리도 제조 때에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리에도 연쇄적으로 공급부족 우려가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다. 인플레 우려 고조에 주목하는 투기머니가 금속가격 상승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세계 대형 자동차업체가 심각한 알루미늄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란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전력위기로 알루미늄 합금 첨가제인 마그네슘 공급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합금은 변속기와 핸들 조작을 바퀴에 전달하는 스티어링 칼럼, 좌석 프레임, 연료탱크 커버까지 모든 자동차 부품에 쓰인다. 마그네슘은 그 알루미늄 합금의 강도를 높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원재료다. 희귀금속인 마그네슘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중국이 생산을 억제하고 있어 유럽 전 국토에서 재고량은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중국의 전력위기가 세계 공급망에 영향을 미쳐 주요 공업원료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 우려를 부추기고 있는 양상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올해 반도체 부족이 큰 문제가 돼왔지만 마그네슘 부족이 새로운 초점이 되고 있다. 독일의 비철금속 업계 단체는 성명을 발표하고, 빠른 시일 안에 중국과의 외교 협의를 시작하도록 독일 정부에 요구했다. 북미의 알루미늄 생산업체들은 마그네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스크랩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각종 금속 재고가 줄고 있다.
#(2021년 10월 23일, 베이징) 중국 정부는 3개 희토류 국유기업을 통합한다. 자원 개발과 가공 기술 등 개발을 가속화한다. 재편 후에 탄생하는 새 회사는 하이테크 제품에 불가결한 희토류의 중국 내 생산량 점유율이 70% 가까이 된다. 미국과의 대립이 장기화하는 것을 겨냥한 통제 강화다. 희토류의 주요 기업을 재편해 생산뿐 아니라 수출을 포함한 공급망 전체까지 통제를 넓힌다. 국유기업을 소관하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20일 희토류 기업 재편을 추진해 세계 일류기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9년에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 자원이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1월에 희토류 원소 관리 조례안을 공표했다.
이러한 도쿄, 뉴욕, 런던, 베이징발 공급망 관련 뉴스는 표면적인 사례다. 이런 사실들이 세계 경제 환경과 맞물리며 그 마이너스 영향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주요 경제국에 번지고 있는 공급망 혼란이 잠자고 있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동시 진행)을 깨우고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세계 시장은 줄곧 인플레 우려가 따라 다녔다. 게다가 원유가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으며, 세계 식량가격이 전년보다 30% 급등했다. 국제 상품 시황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성장 둔화가 겹쳐지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와 투자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퍼졌던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의 상황과 비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시 인플레이션율과 금리가 두 자릿수에 달해 실업률이 급상승했으며, 국내총생산(GDP)은 거듭된 후퇴 끝에 천천히 회복됐다. 하지만 지금은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막기 위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어 경제성장 둔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970년대와는 다른 이 시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가벼운 타입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데 많은 나라가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급망 제약이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 세계는 정책당국의 예상보다 장기간의 저성장과 고인플레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계의 시각도 나온다.
한국은 3개의 난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공급망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시대에 경쟁력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끼여 있는 형국이다. 둘째는 극도로 빈약한 자원(원소) 국가의 실태가 완전히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우리 경제가 ‘스태그’와 ‘인플레이션’에 포위된 상황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신산업정책에 의한 경제안전보장 강화뿐이다. 경제안보에는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경제외교 전문가들의 정의에 따르면 전략적 자율성이란 ‘국민생활과 사회·경제활동의 유지에 없어서는 안되는 기반을 강화해 어떤 상황에서도 타국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국민생활과 정상적인 경제운영이라는 나라의 안전보장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전략적 불가결성이란 ‘국제사회 전체의 산업구조 가운데서 자국의 존재가 국제사회에서 불가결한 분야를 전략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자국의 장기적 지속적인 번영과 국가안전보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 두 개의 개념을 가지고 첨단기술 연구개발, 반도체와 희토류 확보, 전력·가스·석유·통신과 육해공 상의 물류·의료 등의 공급망 강화를 통해 자율성과 우위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기술정보 보전과 공유, 활용을 꾀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 규제를 빠른 시일 안에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원소기술 경제시대에 진입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국가 차원에서 한국 경제의 생존을 위한 전방위적인 공급망 전략을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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