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이런 옛 성현들의 가르침은 까맣게 잊힌 지 오래다.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막무가내로 몰아붙인 정책에 서민들의 등은 터지고, 해결하겠다고 기껏 내놓은 정책이 ‘땜질’에 불과하다 보니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정책에 신뢰의 둑은 이미 허물어졌다.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정책으로 국민 고통은 언제 끝날지 끝이 안 보이니 답답함도 그지없다. 부동산정책을 20여차례나 내놓았다가 실패한 전철을 되풀이하는 듯하다. 또 어떤 미봉책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최근에 소란스러웠던 ‘대출 절벽’ 사태는 정부의 지나침이 가져온 대표적인 참사다.
새롭게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 9일 만에 대출 창구를 닫았다. 시중은행 대출 규제로 수요가 몰려 열흘도 안 돼 5000억원의 한도를 다 소진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어느 은행에선 대출을 선착순으로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은행의 대출 한도가 금융당국이 정한 목표치까지 얼마 남지 않아, 대출이 중단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자 새벽부터 은행 지점 앞에는 대출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인근 신축 입주 예정자들이 100m 이상 긴 줄을 섰고, 대기번호가 200번을 넘어서기도 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선 5만명 넘는 입주자가 집단대출 중단 대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고, 심지어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데, 집단대출 막아놓으면 실수요자는 죽어야 하나요?”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문제는 서민들의 원성에 정부가 단번에 입장을 선회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서민 실수요자 대상 전세 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당부하자,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같은날 전세대출을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일부 시중은행들은 중단했던 전세대출을 재개했다.
얼핏 보면 서민들의 발목을 잡던 문제가 해소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오는 연말까지만 운영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당장 내년이 되면 이 문제는 반복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겠다며 은행들에 주문한 총량 규제 정책을 정부가 스스로 오류를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시스템 자체가 허점 투성이라는 의미다. 이렇다보니 서민들은 언제 또 갈팡질팡하는 정책과 금융시스템에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불신을 안게 됐다.
정책에 오류가 생기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임기가 반년 남짓 남은 이번 정부의 허술한 경제 전망을 지목한다. 오락가락 경제 정책이 시장 혼선을 부추기고 있고,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못하니 '헛다리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원칙 없이 시행과 취소가 반복돼 애먼 피해자만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세수 추계 실패는 이번 정부 경제 관료의 무능함을 나타내는 단편적인 사례다.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3대 핵심 세수의 추계가 대부분 잘못된 데서 발생해, 세수의 급격한 증가가 목표 세수 달성률(진도율)을 크게 끌어올렸고, 역대급 초과 세수 오류가 발생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초래됐다.
27번이나 내놓은 부동산 대책만 봐도, 이번 정부의 경제 관료들이 얼마나 '헛다리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잘못 설계된 반시장적 정책이 부동산 참사를 불렀고, 가계부채와 '대출 난민'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부동산은 자신있다"고 외쳤던 대통령과 정부의 민낯을 보여줬고, 국민들은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정책 난맥상은 공무원들의 고질적인 정치권 눈치 보기와 안이한 대응 등이 겹친 결과이기도 하다. 금융위만 해도 고승범 위원장 취임 이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방침에 따라 가계부채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3년 이상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홍남기 부총리 역시 당청 입김에 너무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무원들이 이미 대선 국면에 접어든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소신 있게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애꿎은 국민들의 반복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현명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가계대출 급증을 유발하는 부동산가격 상승이나 전셋값 급등을 막을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무리한 고율양도세를 완화하는 등 잠겨있는 주택이 시장에 나오게 해야 한다.
금융이 경제의 혈관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흐름이 잘못됐다면 강제로 막기보다 지나침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바꿔주는 게 옳다. 획일적 기준으로 가계대출 증가세를 잠시 묶어둘 수 있겠지만 상당수 국민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글로벌 흐름은 물론 우리의 경제·사회적 구조와도 맞물린 사안이다. 좀 더 큰 그림에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 그런 근본적인 처방은 외면하고 허둥대기만 한다.
무턱대고 내지르는 정책보다는 좀더 숙고를 거듭해야 한다. 내놓은 정책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땜질하는 탁상공론이 계속되면 서민들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허둥대는 모습을 국민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정책에 세심함과 아낌이 필요한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