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거친 파고로 밀려오는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호주행을 선택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화상으로 주재한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미국의 대표적 우방국인 호주 국빈 순방에 나선 것이다. 호주는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미국의 최우방국 기밀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속해 있다.
문 대통령은 국내 코로나19 대확산 국면에서도 미래성장 동력 확보와 임기 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복원을 위해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호주에 도착했다. 우리 정상이 호주를 국빈 방문하는 것은 지난 2009년 이래 12년 만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호주 정부가 최초로 초청하는 외국 정상이기도 하다.
◆광물·수소 등 글로벌 공급망 확충…1조원대 K-9 자주포 수출 성과
한국과 호주 정부는 13일 호주 수도 캔버라에서 한·호주 간 핵심 광물 공급망, 탄소중립기술과 수소경제 협력, 방산물자와 방위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 등 3건의 업무협정(MOU)과 1건의 국산 자주포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호주 국회의사당서 진행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올해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한·호주 양국 관계 장관은 문 대통령과 모리슨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탄소중립 및 수소 협력 △방위산업 및 방산물자 협력 MOU에 서명했다.
특히 1조원대 규모의 국산 K-9 자주포 수출계약도 체결됐다. 호주는 한국을 포함해 8번째로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국가가 됐다. 호주와의 계약 전 K-9 자주포는 한국을 제외한 6개국에 약 600여 문이 계약돼 납품, 전력화 중이었다.
호주는 철광석·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전통적인 자원과 에너지 부국임과 동시에 세계적 핵심 광물 보유국가다. 호주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니켈·코발트의 전 세계 매장량 2위, 반도체 핵심소재인 희토류의 매장량은 세계 6위에 달한다.
글로벌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향후 핵심광물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호주와의 협력을 추진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정부는 향후 2040년까지 전기차 관련 소재의 경우 리튬은 42배, 흑연 25배, 코발트 21배, 니켈 19배, 희토류 7배 이상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미 동맹 강조하면서도 中 언급 최대한 자제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했다. 대신 모리슨 총리가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모리슨 총리는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강화에 대해 “양국 간 그리고 유사 입장국 간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와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의 대중국견제 협의체)에 대해서도 “역내에서 주권을 훼손당하는 경우에는 파트너십을 형성해 역내 국가의 주권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오커스와 쿼드의 경우 오랜 세월 동안 형성돼 온 그런 관계”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큰 관심사인 내년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 보이콧 여부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 권유를 받은 바가 없다”면서 “한국 정부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오커스 문제 등은 호주가 주권국가로서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이고 한국은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한 한국과 호주의 입장을 밝혀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양안 관계가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발전해 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文 “종전선언, 북·미·중 원칙적 찬성…비핵화 협의 출발점”
문 대통령은 미·중갈등 문제에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실현을 위한 종전선언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관련국인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모두 원론적인,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역설했다.
다만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회하는 것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대화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북·미 간 조속한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이 기회에 종전선언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자면 종전선언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어 “종전선언이 이뤄지려면 종전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관련국 간 합의가 있어야 하고 종전선언 이후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어떤 프로세스가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공감이 이뤄져야만 하는 문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7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중요한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 북·미 간,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중요한 대화 모멘텀이 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중요한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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