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마주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가 그의 ‘내면의 거울’을 건넨다.
국제갤러리는 2021년의 마지막 전시로 프랑스 태생의 미국작가인 부르주아의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The Smell of Eucalyptus)’를 지난 12월 16일부터 열고 있다.
조각 및 평면 작품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2012년에 이어 10여 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부르주아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부르주아는 2002년을 시작으로 2005년, 2007년, 2010년, 2012년에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99세를 일기로 타계한 부르주아는 전 생애 동안 예술적 실험과 도전을 거듭해왔으며, 현재 활동하는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감을 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 작가는 다양한 재료를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기존 미술의 형태적, 개념적 한계는 물론 초현실주의와 모더니즘 등의 주류 미술사조를 초월하는 사적이고도 독창적인 언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구축했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부르주아의 드로잉과 조각, 판화 작품은 상호 작용을 통해 연결돼 있다”라며 “작품 간의 대화는 부르주아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라고 짚었다.
작품에는 부르주아의 삶이 빼곡히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되는 특정 작품의 개별 제목이기도 한 제목 ‘유칼립투스의 향기 The Smell of Eucalyptus’는 부르주아의 후기 작품에서 특히 주요하게 조명되는 기억, 자연의 순환 및 오감을 강조하는 문구이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젊은 시절의 부르주아는 당시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로써 유칼립투스는 작가에게 있어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게 되었고, 특히나 작가의 노년기에 두드러지게 표면화된 모성 중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 곳곳에서 실질적, 상징적으로 쓰인 유칼립투스는 부르주아에게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유칼립투스 잎 작품은 따뜻했고 포근했다.
전시의 주축을 구성하는 작품은 ‘내면으로 #4 Turning Inwards Set #4’ 연작으로, 부르주아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 간 작업한 일련의 종이 작품군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39점의 대형 소프트그라운드 에칭(soft-ground etching) 작품으로 구성된 본 세트는 부르주아가 해당 시기에 몰두했던 도상, 즉 낙엽 및 식물을 연상시키는 상승 곡선, 씨앗 내지 꼬투리 형상의 기이한 성장 모습, 다수의 눈을 달고 있는 인물 형상, 힘차게 똬리 틀고 있는 신체 장기 등 작가의 조각 작품을 참조하는 추상 및 반추상 모티프들을 언급한다.
마치 시 같은 부르주아 작품의 제목은 관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2007년 제작한 ‘TURNING INWARDS SET #4 (I SEE YOU!!!)’는 작가의 초현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아슬아슬함이 느껴지는 ‘POIDS’와 후기 작업에서 중요한 꽃을 볼 수 있는 ‘TURNING INWARDS SET #4(LES FLEURS)도 전시됐다. 조각 ‘TORSADE’의 나선형에서는 혼돈과 이중성이 느껴진다.
모두 각기 다른 것 같지만 복잡한 인간 내면을 구성하는 다양한 개념들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세계는 조각부터 드로잉, 설치, 바느질 작업까지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업을 통해 시대적 특성이나 흐름으로 규정지을 수도, 한마디로 정의하기도 불가한 고유성을 드러낸다.
기억, 사랑, 두려움, 유기 등 그의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관객 역시 자신의 내면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전시는 2022년 1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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