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우주·항공, 첨단 소재·제조 등 10대 분야를 '국가 필수전략기술'로 선정하고 투자·세제혜택·기술보호·인력공급 등 전방위 지원을 강화한다. 우리나라의 기술주권 확보와 미래 국익을 담보할 신성장·원천기술을 집중 육성해 오는 2030년까지 선도국 대비 90% 이상의 기술수준을 달성할 계획이다.
정부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20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관계부처 합동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글로벌 기술패권 구도 안에서 우리가 집중 육성·보호할 필수전략기술로 AI, 5G·6G, 첨단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 등 10대 분야 기술을 선정했다.
이날 정부는 10대 국가 필수전략기술의 수준이 최고 기술국 대비 60~90%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들 기술의 수준을 오는 2030년까지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민·관 협업을 통해 대체불가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다각적 육성·보호 수단을 마련할 예정이다.
필수전략기술 선정, 육성, 보호 전략 수립·추진·이행점검 주체로 장관급 '국가필수전략기술 특별위원회(가칭)'를 신설하고 공급망·산업지형 변화, 경쟁국 분석, 국제표준화 동향 등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강구해 나간다. 민간전문가와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민관합동 기술별 협의회'를 통해 기술별 연구개발(R&D) 로드맵과 상세 종합전략을 구체화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필수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을 추진해 이 전략의 추진성과를 내기 위한 제도 기반을 마련한다.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5G와 6G 분야에선 기술·산업을 주도하는 민간혁신활동에 집중하는 '선도형' 전략으로 지원한다. AI, 첨단로봇·제조, 수소, 사이버보안에는 도전적 연구개발로 신속한 기술확보·상용화에 집중하는 '경쟁형' 전략으로 지원한다.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에는 공공 주도의 개방협력축적 기조로 중장기 육성에 집중하는 '추격형' 전략으로 지원한다. 향후 민관 협업체계를 통해 필수전략기술 분야별로 더욱 집중해야 할 3~5개의 세부 중점기술을 선별하고 R&D로드맵, 실증·사업화, 규제개선, 기술보호 등을 아우르는 육성·보호 종합전략을 수립한다.
10대 분야 필수전략기술에 대한 기존 R&D 투자를 확대한다. 관련 예산을 올해 2조7000억원 규모에서 내년 3조3000억원으로 늘린다.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대규모 R&D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R&D예타 간소화(특정평가 실시를 전제로 기획·예타 1년 내 완료), 산학연 거점 연구기관 지정·육성 등 기술개발 인센티브 강화를 추진한다. 기업 투자 세제지원, 핵심인력 양성·확보, 특허 확보를 지원해 민간 혁신활동을 촉진한다. 국제표준화 기구 리더직 진출을 지원하고 국가핵심기술(산업기술보호법) 지정 확대와 인력관리를 통해 기술보호 조치를 강화한다.
도전적 목표달성 R&D를 본격화해 대체불가 원천기술 확보를 추진한다. 자율주행, 전령 리보핵산(mRNA) 백신 등 혁신적 연구성과를 창출한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방식을 지향해 시작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도전프로젝트'와 산업통상자원부 '알키미스트' 등을 점검해 실효성에 초점을 맞춘 제도개선에 나선다. 산학연 전문가들과 논의해 과감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다. 다수경쟁, 중도탈락, 외부자원 활용, 인수합병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목표대비 달성도를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 운영한다.
세부 중점기술이 부처별 지원으로 이어지도록 기술체계 간 연동을 강화한다. 예를 들어 민간 투자가 필요한 세부기술을 세액공제 대상기술로 추가하고, 이미 확보돼 보호할 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다. 이밖에 경제, 통상, 안보 여건의 변화와 정책적 수요를 반영해 필수전략기술을 추가 지정하거나 변경하는 등 주기적으로 보완한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기술경쟁력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기술패권 경쟁시대, ‘기술주권’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민·관이 힘을 모아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국가적 임무"라며 "이번 전략을 통해 미래 국익을 좌우할 필수전략기술 분야에 국가역량을 결집, 대체 불가한 독보적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함으로써, 기술주권 확보라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정부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6G·양자·우주 등 첨단기술에 대한 포괄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기술패권 경쟁 레이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은 글로벌 산업지형과 공급망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과 이후 주변국으로까지 번진 산업·안보·동맹 등의 국제질서 재편 양상을 배경으로 이뤄졌다.
이날 정부는 "미국·중국·유럽·일본 등 선도국들은 패권경쟁의 출발점이자 승패를 판가름할 열쇠를 기술로 보고,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선도국 간에만 기술을 공유하고 외부에 통제하는 '기술블록화' 움직임이 본격화돼, 공유할 첨단기술을 갖지 못한 국가는 기술결속 구도에서 철저히 소외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간 기존 산업별 성장동력 발굴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 정책과 기술체계는 시장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공급망·통상, 외교·안보 역학관계의 수단으로 떠오른 기술을 국익 관점에서 육성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갖추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미국의 10분의1, 중국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한 R&D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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