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지난해 임원인사를 통해 '세대 교체' '창의적 인재 발굴'에 힘을 줬다. 직급도 간소화하고 연공을 타파하며 오로지 실력 있는 인재를 과감하게 승진시켰다. 미래 리더 발굴을 향한 인재 혁신을 기점으로 새해 새로운 성장동력에 가속 페달을 밟겠다는 각오에서다.
특히 주요 대기업은 오너가 가장 신뢰하는 중량감 있는 리더를 전면에 전면에 배치하며 신사업으로 무게추를 확실히 옮겼다. 안정 대신 변화, 고객 만족을 향한 과감한 결단이다. 2022년은 그러한 미션을 받아든 CEO들의 활약이 특히 주목되는 해다.
지난해 말 재계에 가장 충격을 준 임원인사는 삼성전자였다. 그동안 트로이카 체제로 공고했던 3인 대표이사 부회장 체제를 과감히 타파하고, 투톱 대표이사 체제로 탈바꿈했다.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을 전면에 내세운 삼성전자는 2022년을 이재용 부회장이 강조하는 '뉴삼성'의 최대 분기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투톱 전열을 갖춘 삼성전자는 즉각 과감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의 CE(Consumer Electronics), IM(IT & Mobile Communications), DS(Device Solutions) 등 3개 사 업분야 체제에서 DX부문, DS부문(메모리, 시스템LSI, 삼성 파운드리 분야) 등 2개 사업 분야 체제로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 투톱 체제에 걸맞은 효율적인 의사 결정 체계를 수립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명칭 변경은 중장기 사업 구조와 미래지향성, 글로벌 리더십 강화 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이를 기점으로 고객 경험을 새해 중요한 경영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통합 탄생한 DX부문에서 D(Device)는 세트 부문의 업(業) 개념을 표현했고, X(eXperience)는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한 ‘고객 경험 중심’이라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DX부문에 속하는 기존 무선사업부 명칭도 MX(Mobile eXperience)사업부로 바꿨다.
삼성은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경영 기조를 바탕으로 새해부터 향후 3년을 새로운 미래 질서가 재편하는 시기로 삼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와 바이오, 6G, 인공지능(AI)에 방점을 둬서 성장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은 가석방 후 11일 만에 총 24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통신도 백신만큼 중요한 인프라”라며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아쉬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내부 대비 중이라고 밝혀 올해 유의미한 투자와 기술력 입증이 주목된다.
LG그룹 역시 새로운 수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새 먹거리 발굴에 나선다. 지난해 말 임원인사에서 권봉석 LG전자 CEO(최고경영자·사장)를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으로 선임한 것. 권 부회장은 지난 1987년 LG전자에 입사한 정통 'LG맨'으로 전략이나 기획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냉철한 분석과 발 빠른 실행력으로 비교적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성공 신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특히 과감한 결단을 통해 LG전자의 체질 개선을 이끌었다. '아픈 손가락'이던 스마트폰 사업 철수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누적 영업적자만 5조원에 달하던 스마트폰 사업을 지난 7월 말 종료했다.
대신 전장(電裝·자동차 전기전자부품) 사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새해에도 과감한 투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LG전자는 VS사업본부(인포테인먼트), ZKW(램프), 마그나(파워트레인) 등 3개 축으로 나눠 전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2년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있어 혹독한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혁신은 예상보다 과감했다. 내연조직 기관을 완전 개편하고 전기차 연구개발(R&D) 전담조직을 출범했다. 엔진개발센터는 아예 없애고, 파워트레인 관련 센터는 모두 전동화 관련 조직으로 전환한 것. 동시에 배터리개발센터를 신설해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인 배터리 기술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연구개발본부 내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기 위한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개별 신차 단위의 개발을 총괄하던 프로젝트매니지먼트(PM)담당과 현대차·기아가 생산하는 차량 전체에 적용하는 기술을 연구하던 제품통합개발담당이 통합된다. 유럽의 유수 완성차 업체를 제치고 글로벌 톱5에 오른 그룹은 모든 역량을 전동화에 집중해 톱3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2’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비전도 발표할 계획이다. 정 회장이 제시한 궁극의 목표인 '모든 인류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기치 아래 자동차를 넘어선 현대차그룹의 신사업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동차 사업은 전동화에 집중하면서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신사업 개발을 통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배터리를 미래 먹거리로 정한 SK그룹과 LG그룹은 각각 오너와 가장 가까운 '믿을맨'을 전면에 투입했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을 분리해 글로벌 배터리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을 SK온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로 발탁했다. 최 부회장과 지동섭 사장을 각자대표로 내세운 SK온은 고객사와 네트워크 강화, 외형 확대에 집중한다. 포드 등과 파트너십을 강화해 결국 합작 공장 건립까지 성공시킨 지 대표는 고객사 확보에 더욱 열을 올릴 전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그동안 그룹 2인자였던 권영수 부회장을 LG에너지솔루션 대표로 발탁했다. 권 부회장의 최우선 과제는 1월 중으로 예정된 IPO의 성공이다. 이는 구 회장의 의중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공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상장을 통해 8조6729억원을 조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중 74%가량인 6조4235억원을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에 투입한다. 현재 연 120GWh 수준인 배터리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3.4배가량인 40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권 부회장이 LG에너지솔루션 대표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 개편이었다. 기존 3~4개였던 프로젝트매니지먼트(PM) 팀을 센터로 승격시켰으며, 센터장은 배터리 셀 전문가인 정근창 부사장이 맡았다. 이는 테슬라·제너럴모터스(GM) 등 파트너와 추진하는 대형 배터리 프로젝트를 더욱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철강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지주사 전환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기존 철강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다.
배터리 소재 사업을 담당할 포스코케미칼은 2030년 배터리 소재 매출 20조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포스코그룹 전체 매출로 보면 3분의 1을 배터리 소재로 채우겠다는 방침이다. 수소 사업과 관련해서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50년까지 500만톤(t) 체제를 구축해 매출 3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이달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전환 안건이 통과하면 본격적인 조직·인사 개편이 시작된다. 그룹은 철강사업 책임자로는 김학동 부회장을 내세웠으며, 수소·배터리 소재 사업을 이끌 인재 물색에 한창이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대규모 외부 인사 영입이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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