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 플래시] '천황제'를 들여다보면 일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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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입력 2022-01-0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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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한 국가의 헌법 제1조1항은 그 나라의 체제나 정체성, 또는 공동체로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고, 미국 헌법 제1조는 “모든 입법 권한은 연방 의회에 귀속되며, 연방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종교와 언론 등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없음을 천명).

중국 헌법 제1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민 민주 전제정치의 사회주의 국가”이며 “어떠한 조직 또는 개인도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북한 헌법 제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헌법 제1조는 어떨까.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

천황이 일본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헌법은 천황을 국가원수로 규정하지는 않았고 주권이 국민에 있음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 헌법 제3조는 “국사에 관한 천황의 모든 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고 규정했다. 천황에게 아무런 실권이 없음을 명시한 것이다. 나아가 천황은 정치적인 발언이나 국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발언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본 천황을 말 그대로 상징적인 존재로만 여겨서는 일본 정치와 사회, 문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제도상 천황의 실권은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일본 국민의 의식과 정서에 기반한 천황의 권위는 어느 입헌군주국의 군주보다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천황제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일본 그 자체라고 말하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천황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꾸준히 지지도가 오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5년마다 실시하는 천황제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1973년의 경우 천황에 대한 존경심이 33%, 호감은 20%, 어떤 감정도 없음 43%, 반감이 2%였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8년의 경우 존경심이 41%, 호감이 36%로 늘어난 반면 어떤 감정도 없음은 22%, 반감은 0%로 줄어들었다. 존경과 호감을 합친 반응이 53%에서 45년 만에 77%로 오른 것이다.

천황에 대한 존경심이 상승한 데에는 특히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상처를 입은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온 것이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천황이 절대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말과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얼마나 다가가느냐에 따라 국민적 지지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일본공산당마저 과거에는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지만, 지금은 당 강령에 “천황제는 헌법상의 제도이며 그 존폐는 앞으로의 정세가 무르익었을 때 국민 총의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천황제를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나루히토(徳仁) 천황 동생의 딸인 마코(眞子) 공주의 결혼 문제가 4~5년간 큰 화제와 논란이 돼 왔다. 마코 공주는 대학 동기생과 약혼과 결혼을 몇 차례 연기하다 작년 10월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혼인신고만 하고는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이 미국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미국 변호사 시험에 낙방한데다 마코 공주가 황실에서 나오는 결혼 지참금 약 15억원도 거절해 이들의 미국 신혼생활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들의 결혼이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한 여론조사(2021년 3월 주간아사히)에서 일본 국민의 97.6%가 이 결혼에 반대할 정도로 여론이 나빴기 때문이다. 반대 여론은 신랑 측 집안이 변변치 않은데다 신랑의 어머니가 남편과의 사별 후 이성 관계와 금전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일본 황실의 여성은 평민과 결혼하면 어차피 황실을 떠나 평민 신분이 되게 돼 있다. 마코 공주는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여론과 황실에 맞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주위 시선에 주눅들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한 마코 공주의 사랑과 결혼을 웬만하면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여겨줄 만도 하지만 일본 국민들이 바라는 황실의 완벽성은 조그만 흠결도 좀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황실의 보수적 남성 우위 성격도 분명해 여성은 아예 천황 승계 대상이 되지 못한다. 현재의 나루히토 천황에게는 무남독녀의 공주만 있어 천황 승계 1순위는 나루히토의 동생이자 마코 공주의 아버지인 후미히토(文仁) 친왕(천황의 남자 가족 칭호), 2순위는 그의 아들인 히사히토(悠仁) 친왕으로 돼 있다. 한때 나루히토에게 아들은 물론 남자 조카도 없어 공주에게도 천황 승계권을 주어 여성 천황을 허용하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2006년 후미히토가 아들을 낳자 이 논의도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황족 23명 가운데 남자는 7명뿐인 데다 일본 사회의 남녀평등 의식이 높아지면서 여성 천황을 허용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새로운 일왕의 즉위를 앞두고 2019년 실시된 NHK 조사에서는 74%에 달했다. 일본 황실은 성(姓)도 없다. 이른바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 해서 황실의 혈통이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믿는다. 어쨌든 일본 황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이기는 하다.

천황과 천황제에 대한 비판이나 모욕은 일본 정치나 공론의 무대에서는 금기시된다. 자칫 삐끗하면 정치적 생명은 물론 육체적 생명까지 위협받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가사키(長崎) 시장을 네 번 역임한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의 경우다. 자민당 소속이던 그는 1988년 나가사키 시의회에서 일본공산당 소속 의원에게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전쟁 책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천황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고,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는 “천황이 종전을 더 빨리 결단했다면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도 없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당장 우익단체의 위협이 가해졌고 그는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시청 청사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결국은 1990년 극우단체 행동대원의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그는 “범인을 용서한다”고 했다. 그의 후임이었던 이토 잇초(伊藤一長) 시장은 천황 관련 발언이 아니라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했다가 2007년 나가사키역 앞에서 폭력조직원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2013년 10월에는 당시 39세의 배우 출신 참의원 의원 야마모토 타로(山本太郎)가 천황의 관저인 ‘황거’에서 열린 가든파티에서 아키히토 당시 천황에게 건의서를 올리는 바람에 좌중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정치인이 천황에게 공개석상에서 문건을 건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건의서는 현장에 있던 천황의 시종장이 곧바로 챙겼고 천황은 내용을 보지도 않았다. 건의서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처리에 관한 의견을 적은 것이었다. 이 일로 야마모토 의원은 참의원 의장으로부터 “앞으로 황실 행사에 참가하지 말라”는 처분을 받고 국회에서 사죄해야 했다. 그의 행동은 천황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과 천황제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에는 역사 문제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국과 일본 간에는 적잖은 거리가 존재한다. 일본 역사에서 천황에게 정치적 권위가 부여된 시기는 매우 짧았다.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1945년)까지의 80년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일본 천황의 이미지는 이때가 전부이다시피했고 또한 강렬했다. 어쨌든 천황의 결정으로 한반도의 식민통치가 시작됐고 태평양전쟁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에게는 이 시기의 천황마저도 정치적 실권자라기보다는 종교적 성격의 ‘신비’, ‘신성’의 이미지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이 옅을 수밖에 없다.

히로히토 천황이 사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천황의 전쟁 책임에 관해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이 없지 않았다.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도 의원 시절 일본 국회에서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에게 “천황이 과거 전쟁에 대해 고뇌할 수 있다. 천황이 퇴위할 의사가 있다면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한 적도 있다. 일본공산당은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천황에 대한 비판은 여기까지였다.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천황이 1989년 사망하면서 천황의 전쟁책임론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 국회의장, 주일대사에 이르기까지 천황에 대한 언급으로 한·일 관계에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할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천황이 일본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발언의 효과와 파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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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일왕? 텐노?


​일본 국왕의 호칭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 정부는 1998년부터 공식적으로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9월 일본 국빈방문을 앞두고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취지에 따라 ‘천황’을 정부의 공식 호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는 ‘천황’을 쓰면서도 ‘일황(日皇)’이라는 표현도 사용하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와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을 맞아 보낸 서한에서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 등에서는 문정부의 반일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으로는 ‘천황’이 관례화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언론이나 개인 차원에서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일부에서는 ‘천황’의 일본어 발언인 ‘텐노(또는 덴노)’라고 하자는 주장도 있다. 일본 국왕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친일-반일로 나누는 단순 이분법만은 탈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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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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