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1년이 가고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수출 호조와 1인당 국민소득(GNI) 최고치 달성 등 경제지표상 회복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급증한 부채와 물가 상승, 집값 급등과 자영업자 부실 확대에 따른 체감경기 악화는 여전한 리스크로 남아 있다.
아주경제가 마련한 '신년 특별좌담회(거시경제 부문)'에 서면으로 참석한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과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한국 경제가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한 성장 흐름과 전염병 리스크 약화에 따른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대내외 요인과 불확실성 증대로 인해 정상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대출 전망과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이 다소 엇갈렸으나, 올해 최대 리스크 요인이 '코로나발(發) 불확실성'과 '고(高)인플레이션'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들은 유동성 확장과 글로벌 공급망 이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물가 상승'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과 정책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타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내용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2021년 한국 경제, 어떻게 평가하는가.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코로나 쇼크 첫해였던) 2020년의 기저효과로 일부 경제지표는 개선됐으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존하는 감염 확산 통제로 인해 대면 소비가 침체돼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 상황은 부진했던 한 해였다. 여기에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양상도 보였다.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동의한다. 빛이 있는 만큼 어둠도 깊은 한 해였다. 수출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3만5000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나 소비 회복세가 미진했고, 이 과정에서 자영업 종사자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가계의 실질구매력에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보였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역시 크게 올랐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2020년 역성장에 따른 기저효과와 선진국의 강력한 통화·재정정책, 백신 접종 확대로 수출이 늘었고 두 차례의 추경과 초저금리하에서 내수도 점차 회복되며 비교적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감염병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대면 서비스 등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일부 부문의 부진이 심화됐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임인년 새해를 맞아 한국 경제를 전망해 본다면.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올해 경제성장 속도가 예년 대비 둔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나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양호한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근 미국 등에서 신규 확진자 수가 연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중국의 강력한 봉쇄 조치 지속 등 팬데믹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국내외 경기 회복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코로나19가 연중 종식되지 않겠지만 감염병이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아지고 풍토병화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경기 회복 국면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감염병 관련 위험,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리나라와 주요국의 긴축 움직임, 높아진 자산 가격과 부채 누적에 따른 금융 불균형 등 불확실성이 높아 테일리스크(tail risks·극히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리스크) 가능성도 높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기준금리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작년 하반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인상했다. 이주열 총재는 여전히 통화정책이 완화적이라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고, 미국 연준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긴축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국내외 금리 향방,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연준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서두르는 것은 성장과 물가, 고용 등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정책 정상화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선회했기 때문이다. 미국 인플레이션의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연준은 앞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 흐름에 맞춰 정상화 시점과 속도를 조절하는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기조를 강화할 것이다. 특히 올 하반기 이후 인플레이션 안정화 여부에 따라 통화정책 정상화 정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역시 기준금리 상승으로 대변되는 통화정책 정상화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세 차례 정도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한다. 다만 올 하반기까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지속한다면 연준이 현재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 물가 상승이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미국 역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통화당국의 자산 매입 축소를 앞당겨 국내외적으로 금리 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박성욱 실장과 의견을 같이한다. 급하게 기준금리를 올리면 국내 경기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점진적으로 올리더라도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는 유동성 요인과 글로벌 공급망 교란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함께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가계대출 이슈도 우리 경제에 뜨거운 감자였다. 저금리에 돈을 빌리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한때 은행권에선 대출 중단 사태까지 일었고 최근에는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가 도래했다. 앞으로도 가계부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아울러 정부의 대출 억제 정책에 대해서도 평가해 달라.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지난해 팬데믹 상황에서도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쏠리고 가계부채가 누증됨에 따라 금융 불균형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가계대출은 △대출금리 상승 △가계부채 관리 강화 △집값 추가 상승 기대 약화 등으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금리 상승은 분명히 올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는 요인 중 하나지만 아직 절대적인 금리 수준은 높지 않다. 따라서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주택에 대한 투기 수요는 지속돼 가계부채 상승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 가계부채 규제는 궁극적으로 가계 상환 능력 범위 내에서 투기적 수요를 차단하면서 실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총량 규제와 같은 강력한 대출 억제 수단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는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결국 차주들이 금리가 더 높은 위험한 대출에 의존하게 돼 전반적인 금융시장의 위험 요인을 증가시킬 수 있어서다. 따라서 안정적인 소득이 있고 신용도가 양호한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대출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금융정책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기업대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금융당국이 내년 3월 중 금융 지원 조치를 예정대로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일각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4번째 재연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기업대출은 경기 회복에 따른 자금 수요 증대로 올해에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경험을 보면 기업대출은 금융 지원 종료 여부에도 일부 영향을 받겠지만,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느냐에 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와 같이 물가 상승 압력에 따른 유동성 회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업대출에 대한 기존의 금융 지원 조치를 또다시 연장하는 것은 물가 불안 가중과 함께 추후 금리를 급격히 높여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연장한다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임과 동시에 급격한 금리 조정이 불가피하게 돼 오히려 금융시장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당분간 기업대출이 금융시스템 전체에 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코로나19 피해가 집중된 일부 대면 서비스업의 부실 위험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3월 기업대출에 대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고 금리가 점진적으로 상승할 경우 개인사업자대출을 중심으로 일부 기업대출 자산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지원 조치 종료 후 충분한 거치· 상환 기간을 부여해 상환 부담을 낮추고, 잠재 부실이 우려되는 분야에 선제적인 채무 조정을 지원하는 등 연착륙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전문가 세 분이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 국내외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거세다. 올해 물가 전망과 물가 안정화를 위한 해법이 있다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유동성 확대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교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부 물가 상승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전반적인 유동성 확대가 물가 상승의 최대 원인으로 판단되는 만큼 유동성 회수를 위한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것만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병목현상 등 공급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은 정부가 정책을 통해 안정시키는 데 한계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안정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현재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가계와 기업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끌어올려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시장과의 활발한 소통, 정책 정상화를 통해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올해 국내외 물가는 글로벌 경기 회복 과정에서 상당 기간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에는 물가에 대한 관심이 원자재와 공급망 이슈에 집중됐다면, 연내에는 서비스 요금, 임금 등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 차질 문제가 점차 완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높은 물가 오름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작년 초만 하더라도 국내외 경제학자들이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예측이 틀린 주 요인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이 경제 내 공급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미국 달러화 환율이 5일 기준 1200원에 육박하는 등 강달러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향후 환율 전망과 환율 흐름을 좌우할 최대 변수가 무엇이라고 보나.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상반기에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기대 등으로 외환시장이 강달러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미국이 글로벌 경기 회복을 주도하고 연준의 금리 인상 기대도 높은 반면 유럽의 경기 회복세는 미국만큼 빠르지 않고 중국은 성장 둔화 우려가 있어서다. 다만 하반기 이후 유럽, 신흥국 등의 성장 추격(catch-up)으로 미국과 여타 글로벌 경제 간에 성장 격차가 좁혀지고,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 논의에 따라 강달러 흐름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연준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거나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강달러가 지속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의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 상황에서 중국 등 미국 이외의 주변 국가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상황이 환율 흐름을 좌우할 변동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준호 아주경제 금융부장: 올해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그에 따른 제언을 덧붙인다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올해는 물가 상승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 그 과정에서 가계대출이 부실화돼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가능성이 중요한 위험 요인이다. 이와 함께 정부 재정지출이 확대되면서 국채 공급이 증가하고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며 가산금리가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에 추가로 위험 요소가 상존한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 글로벌 고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주요국 중앙은행의 대응으로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그 충격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및 에너지 전환, 글로벌 지역주의, 경제 불균형 확대 등 전환기적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올해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이전의 잠재성장 경로로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데 기저효과에 따른 경기 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에도 성장을 이어가려면 잠재성장률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
이지호 한국은행 국제경제부장: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리스크를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공통점은 경기 회복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 여전히 코로나19 전개 양상이라는 점, 그리고 차이점은 그간 코로나19 전개 양상이 경기 흐름을 전적으로 좌우해왔다면 올해는 다수 리스크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올해는 중국 경제 둔화,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공급 병목현상 완화 등 각 이슈의 추이와 속도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미·중 갈등 시즌2,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같이 늘상 도처에 깔려 있어 간과하기 쉬운 ‘회색 코뿔소’ 리스크 조짐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기는 우리 일상에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오는데 코로나19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주체들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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