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의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스타트업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모태펀드는 조성금액 7조원을 훌쩍 넘겼고, 벤처투자액은 매 분기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창업-투자-성장-회수-재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구축되면서 창업 생태계에서 큰돈을 번 사람이 늘어나고, 인재 유입도 활발해지고 있다.
현장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대표들도 이 같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아주경제와 얼리슬로스가 스타트업 대표 12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창업자 10명 중 8명은 “2016년 대비 2021년 창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창업 환경의 개선과 별도로 "아직까지 창업하기는 어렵다"고 응답한 대표(31.7%)도 적지 않았으나 “창업할 만하다”, “창업하기 좋다”고 답한 창업자는 48.4%에 달했다.
창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이유로는 “정부의 모태 펀드 등 출자로 인한 투자 환경이 개선됐다”는 점과 함께 “투자 분위기 활성화. 인수합병(M&A)이나 기술상장 등 엑시트(투자회수) 기회가 많아졌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창업하기는 어렵다고 답한 창업자들도 정책적 이슈보다는 코로나19 등 대외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들은 “창업에 대한 정부 지원과 투자 규모는 늘었지만, 코로나 등 경기악화로 전체적인 창업 분위기는 좋지 않다”, “글로벌 패권과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더 많은 지원과 더 많은 자원, 인력이 필요해졌다”고 평가했다.
창업자 10명 중 5명 “자금, 인력 부족”
벤처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모태펀드는 올해 5200억원의 예산이 확정됐다. 모태펀드 예산은 지난해만 7500억원, 2020년에는 9000억원이 투입되며 벤처생태계의 유동성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여전히 “자금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29.9%가 ‘자금 부족’을 꼽았고, 이어 ‘인력 채용’(24.2%), ‘경제·시장 상황’(11.3%), ‘정부 규제’(11.0%) 문제를 선택했다.
차기 정부가 해결하거나 개선해줬으면 하는 창업 생태계 문제에 대해서도 자금이 1순위로 언급됐다. 응답자의 24.6%는 “초기 창업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21.4%는 “스케일업 과정에서의 과감한 투자”를 요청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자금 지원을 차기 정부 벤처 정책 과제로 선택한 것이다.
설문에 참여한 스타트업 대표는 “사업계획에 대한 단계적 투자,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하고 넓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플랫폼 기업뿐만 아니라) 제조기업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표는 “예비 창업에서부터 창업, 성장까지 아우르는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며 “업력 제한으로 지원을 못 받는 기업이 많은데, 스케일업 단계 스타트업을 위한 지원 정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규제, 공무원 인사평가 체계 개선 요구도
정부 규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현행 ‘포지티브 규제 체계’는 법률적으로 허용한 사업만 시도할 수 있고, 그 외에 사업은 불법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다. 이를 법률에서 금지한 사업만 하지 못하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 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과다한 정부 규제를 스타트업에는 완화시켜주면 좋겠다”며 “네거티브 규제로 법을 위반한 것만 아니면 도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응답자는 “톱라인에서 내려오는 좋은 정책이 많지만,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에서는 이런 정책을 체감하기 힘들다”며 “공무원 조직의 인사체계가 혁신에 대한 성과를 보상하기보다 규제 완화 이후에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후책임을 부과하는 문화다. 이런 인사체계가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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