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광주시와 광주 화정아이파크 실종자 가족 대책위원회, 이 아파트 입주예정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정 회장의 사퇴에 대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분노와 실망감만 안겨준 사과문"이라고 평가했다.
정 회장은 17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이파크몰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1999년 현대자동차에서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취임해 23년간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이번 사고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두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이 시간 이후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지 엿새 만에 내놓은 정 회장의 첫 공식 입장이다.
그는 이날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사장, 하원기 HDC현대산업개발 전무 등과 함께 참담한 표정으로 등장해 사과문을 읽어내렸다. 그는 "회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사고를 수습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그룹 차원에서의 모든 노력은 약속하겠다"면서 "다시 한번 광주사고의 피해자와 가족,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대책을 수립해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광주시와 실종자 대책위, 입주예정자 대책위는 정 회장의 사퇴에 대해 "책임회피를 위한 보여주식 쇼"라는 비난이 나왔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날 SNS를 통해 "(정 회장의) 사퇴는 책임지는 모습도, 사태해결의 능사도 아니다"라면서 "사고 발생 1주일 만에 현장도 아니고 서울 본사에서 사퇴를 발표하는 것은 실망을 넘어 분노와 울분만 줄 뿐"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해당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대국민 사과를 외치면서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보상계획이나 방법, 향후 절차 등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면서 "대기업 총수의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분노했다.
실제 정 회장은 지주사인 HDC 등을 비롯해 주요계열사에서 등기임원을 맡고 있지만 현산 회장직만 반납했다. 또 회장직에서 물러나더라도 대주주로서의 역할은 계속한다는 점에서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식의 형식상 퇴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또 무조건적 재시공보다는 '안전진단 후 이상있을 경우'라는 조건부 보상을 달아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한편, 이번 사고로 5명 이상의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부실공사가 사고원인으로 드러나면 현산은 최장 1년의 영업정지를 받을 수 있다. '고의나 과실로 건설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야기하여 공중(公衆)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가 인정되면 임의적 등록말소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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