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야스 신화' 일군 내의산업 거목 한영대 BYC 창업주 별세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다이 기자
입력 2022-01-17 14:4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한영대 BYC 회장 [사진=BYC]

내의전문업체 BYC 창업주 한영대 회장이 16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17일 BYC에 따르면, 한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나 북면 소재 4년제 소학교와 정읍에 있는 6년제 정읍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광복 1주년이 되던 1946년 8월 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해 내의 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한 회장은 오직 내의 산업에 헌신해 국민 보건과 의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와 신념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광복 직후, 국내 상황은 물자 부족 등으로 극심하게 피폐해져 있었다. 당시 남쪽 인구는 약 2000만명이었지만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약 52만매에 불과해 국민 37.6명당 내의 1매꼴로 보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에 한 회장은 더 이상 국민들이 추위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않도록 서둘러 메리야스 내의 생산 착수에 나섰다.

한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의 생산을 위한 한 회장의 강인한 의지와 집념, 노력으로 편직기의 성능과 수를 증설했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여 나갔다.

광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6·25전쟁은 사업의 기반을 잘 다져나가던 한 회장에게 큰 위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 회장은 좌절하지 않고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전쟁이 끝난 후의 미래를 위한 전략을 세웠다.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운영자금으로 다량의 원사를 구입해 보관했으며 전북 경제∙상권의 중심지이자 도청 소재지였던 전주로 사업장을 이전했다. 이후 한 회장은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물 내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으며 대∙중∙소로 구분했던 속옷 사이즈를 4단계(85·90·95·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섰다.

BYC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원칙은 ‘속옷 외길’, ‘품질 제일주의’ 정신이었다. 이는 곧 기업의 경영 방침이 됐으며 76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한 회장은 BYC를 국민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만들며 내의 산업을 선도해왔다. 과거 미쓰비시상사가 국내시장에서 은밀히 샘플을 수거, 검토한 후 BYC 제품의 품질을 높이 사 일본으로 수출을 제안했지만 한 회장이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BYC는 또한 1975년 6월 상장했으며, 1990년 6월 대신경제연구에서 선정한 최우수 상장기업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한 회장은 1985년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 산 76-12번지 소재 평택동중학교와 평택동고등학교의 학교법인을 한영학원으로 명의변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학교명도 신한중학교와 신한고등학교로 개명했다. 한 회장은 또 이사장 취임과 동시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재학생과 대학 진학 학생에 대한 장학금으로 7억원을 출연하고 학교 시설을 대폭 증설했다. 신한중·고등학교는 한 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10년 만에 제반 교육시설의 신설 및 확장이 이뤄졌으며, 한 회장은 지금도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여건 강화를 통해 국내 상위 명문 고등학교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1985년, 한 회장은 주식회사 백양(현 BYC)의 간부회의에서 기업의 명운을 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수출 상품에 해외 유명 업체 브랜드를 부착하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백양의 독자적인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시장에 진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회사의 경쟁력 강화와 장래성을 주장하는 수출부,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영업부의 대립과 설전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이사회 회부와 기립투표까지 진행된 이 안건에 대해 키를 쥔 한영대 회장은 고심 끝에 수출부 손을 들었다. 큰 어려움이 예견되지만 독자 브랜드 개발을 통해 백양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 전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 ‘BYC’의 탄생이었다.

국내 및 해외시장에 진출한 BYC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상표를 넣은 로고와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장해 나갔다. 전성기에는 세계 78개국에 8000만 달러어치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꾸준히 상승한 인기와 인지도에 한 회장은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이후 BYC는 1998년 한국투신이 선정한 ‘생존능력이 뛰어난 상장회사 28개사’ 10위 안에 선정됐으며 2000년에는 대한상의와 중앙일보가 공동제정한 제1회 새천년새기업상 부가가치 창출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또한 능률협회가 주는 ‘최우량 기업상’, ‘최우수중견기업상’, ‘한국섬유대상’ 등을 수상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VIP 2호실이며 발인은 19일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