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 vs 공약(空約)
3월 9일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등 4용(龍) 후보들이 공약(公約)을 쏟아내고 있다. 하루에도 서너 개씩 내놓을 정도다.
공약은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선거 후 앞으로 뭘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공약(空約)은 공허한 약속, 헛된 약속이다. 선거 때는 모든 걸 다해주겠다고, 할 수 있다며 공약(公約)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곧바로 입을 싹 씻는다. 공약이 저 하늘 위 허공으로 날아가 공약(空約)이 되기 일쑤다.
공공의 약속, 공약은 법률용어로 계약을 뜻하기도 하는데, 선거의 공약은 후보와 소속 정당 공동으로 국민과 맺는 계약인 셈이다. 계약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이름이다.
후보들이 직접 모든 공약을 낼 수도 없거니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다. 이재명 행정, 윤석열 검찰, 안철수 IT, 심상정 노동 등 각자 자기 전문분야가 있을 뿐 대선 후보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은 아니다. 또 모든 방면에서 다재다능(多才多能)하다고 생각해, 만기친람(萬機親覽)하려 들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한다.
현재 특정 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얼마 전 내가 낸 정책 공약을 후보에게 보고하는 문서에 내 이름과 관련 국회의원 이름이 다 적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런데 정작 그 공약을 후보가 발표할 때는 그 이름들이 다 사라졌더라. 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일부 정당은 공약 발표에 앞서 후보에게 제출하는 최종 보고서에 입안자와 해당 국회의원 이름을 적기도 한다. 그런데 발표할 때는 오로지 후보만 '주인공'이다.
모든 후보들이 특정 공약을 발표할 때, 특히 정당이 대선공약집을 낼 때 공약 아이디어를 제공한 그 분야 전문가의 이름을 꼭 밝혀라. 후보 캠프에 영입된 인재, 전문가들이 공약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걸 명확히 하는 거다. 그게 공신력을 높이는 길이다.
덧붙여 공약을 실제로 이뤄낼 법을 만드는 국회 입법 전문가 이름도 병기해야 한다. 입법 전문가? 그 공약에 해당되는 국회 상임위 소속 자기 당 국회의원 이름 말이다.
후보 본인이 낸 '개론 성격의 공약' 외에 탈모 건강보험 적용, 병사 월급 200만원, 게임 관련 공약 등 구체적이고 세세한 전문 공약에 위 공약실명제를 적용해 보라.
공약(空約)에 속아온 유권자들에게 공약(公約)을 지키겠다면 계약서에 갑(유권자), 을(후보-국회의원-전문가) 각자 이름을 써야 마땅하다.
▶지자체·이익단체·시민단체, 공약 치부책 작성
각 후보와 정당은 조만간 ‘대선 정책 공약집’을 펴낼 거다. 그 때 우리 유권자들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지역이나 업종 관련된 부분을 잘 살펴봐야 한다. 전문가들의 이름, 국회의원 성명이 기록돼 있는지를 말이다.
2단계, 유권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갖가지 이익단체, 시민단체 장(長)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공약 치부책’을 별도로 만들어 두는 거다. 돈이나 물건이 오가는 것을 기록하는 치부책에, 공약을 그렇게 남기란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혹은 KTX를 연장하거나 역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떠올려 보자.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반드시 관련 공약을 내놓은 당과 후보들의 디테일한 내용을 잘 비교해 지역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대선 이후 주민들은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도지사와 시장을, 2024년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등을 고스란히 표로 평가하면 된다.
또 유권자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에는 대부분 ○○협회, ○○연합회 등 이익단체가 있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수시로 그런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해서 하는 발언도 일종의 공약이다. 이 단체들의 장(長)은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자기 업종에 내놓은 공약을 면밀히 비교, 분석해 회원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환경문제, 젠더이슈 등 유권자 본인이 지향하는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탈모, 병역과 같은 생활형 공약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들은 후보들의 공약과 발언, 전문가와 국회의원 이름을 꼼꼼히 기록해 공개해야 한다.
▶공약이행 상황판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당선인은 ‘공약실명제-공약치부책’의 다음 단계로 공약상황판을 설치해야 한다. 대선 직후 가동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 먼저 설치하고 취임식 이후 대통령 집무실에 가져다 놓길 바란다.
청와대에 걸린 전직 대통령들의 사진 아래 각각 공약이행률을 적어 놓고, 그 아래 공약상황판을 부착하면 더 좋겠다. 분기별 혹은 연도별, 정례적으로 그 상황판 숫자를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건 기본이다. 계약을 잘 지키고 있는지 계약서를 자주 꺼내봐야 한다. 계약 당사자들인 대통령과 정당, 우리 국민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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