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제심서] 21세기 국가건설을 위한 신아지구방론(新我之舊邦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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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2-01-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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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사 블랙스톤이 37년째 해오고 있는 바이런 윈 (Byron Wien) 보고서는 올해 놀랄 만한 10대 뉴스로 인플레이션 지속에 따른 고금리, 주가 약세, 자원 가격 상승, 그리고 원자력 개발에 대한 재평가 등을 꼽았다. 의외의 내용은 아니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2022년 대예측’과 미국 유라시아그룹의 10대 리스크도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의 등장과 중국의 면역 실패 등을 꼽았지만 새로운 사항은 없었다. 따라서 2022년은 각국이 예상한 범위의 리스크 내에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힘을 쏟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경제학자들은 보다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즉 세계 자본주의가 지금 제3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제1의 위기는 1929년 미국 주가 폭락을 촉발한 대공황이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의 이론에 따라 큰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제2의 위기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축으로 하는 냉전기에 닥친 위기다. 재정 팽창이나 과도한 규제 등 ‘너무 커진 정부’가 경제의 활력을 빼앗고, 베트남전 등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비용이 자본주의의 피폐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작은 정부’가 민간의 경쟁을 촉진해 성장력을 되찾자 소련은 무너지고 민주주의에 승리를 가져왔다.
 
지금 맞고 있는 제3의 위기를 살펴보자. 지나친 시장 원리주의가 부의 편재와 왜곡을 낳고 격차가 커졌다. 격차는 사람들의 불만을 고조시켰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도 불리는 상황을 낳았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게 되면서 세계에선 중국을 필두로 한 권위주의가 대두했다.

혼돈의 세계에서 각국은 일제히 생존전략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의 GDP 성장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아래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다.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339(2019년)로 OECD 평균 0.3보다 약간 높지만 고령자층에선 한층 높게 나타난다. 또한 행복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대단히 낮다. 그렇다고 다시 정부 역할을 키워 무한정 재정 지출을 늘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는 한국 경제를 다른 나라들보다 더 심하게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
 
2022년은 한국 경제의 재건을 가늠하는 1년이 된다. 한국은 저성장에서의 탈각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사회 불안 요인인 일자리 문제도 여기서 해결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금융 완화와 정책 남발로 정책 효과가 급격히 떨어졌다.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한 이유다. 저성장-잠재성장률 하락-생산성 저하는 같은 고리에 물려 있는 난제다.
 
그렇다면 성장전략으로서 근원적으로 요구되는 시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가 가속해 나가는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하락을 어떻게 멈추게 할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 방책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방해하고 있는 요인을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테이지에 입각해 총점검하고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장기전이다.
둘째,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술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자원의 재분배가 적기에 이뤄져야 한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면 임금도 당연히 오르지 않는다.
셋째, 정부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대목에선 정부의 크기가 논란이 된다. 정부 지출 규모와 채무 잔액의 규모,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연구개발이나 출산·육아 지원, 인재교육 등에 대한 투자적 지출이 적정한지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짜야 한다. 승수효과가 기대되는 부문에 대한 재정 투입이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재앙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30년간 지속된 저인플레이션 환경이 고인플레이션 환경으로 바뀌는 레짐 체인지가 예상된다. 예를 들어 1970년대의 고인플레이션 체질을 (금융 긴축 등으로) 바꾸려면 큰 경제적 충격이 일어나기 때문에 바꿀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당시 볼커 FRB 의장이 강력한 금융 긴축을 실시했으며, 미국 행정부도 지지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레짐 체인지가 일어났다. 그 반대의 레짐 체인지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정부가 국채를 증발하면서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는 이른바 재정 금융의 일체화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된다고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코로나19 위기 전에 지적되던 저인플레이션 요인, 즉 세계화의 진전과 정보통신 혁명으로 인해 기업들이 가격 결정력을 잃어버렸다는 기본적인 환경에 변화가 있었는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공급 쇼크가 가라앉아 인플레이션 경향이 다시 원상 회복될 것인지도 점검해야 한다.
 
일본 내각부는 2022년도에 재정 정책의 효과가 얼마나 골고루 미치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조사·점검하기 위한 검증 모델을 만든다고 한다. 현재는 나라 전체의 평균치로밖에 조사할 수 없지만 저소득층이나 젊은 층 등으로 나눠 정밀하게 파악함으로써 이를 적절한 정책 개선으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경제 재정 모델'로 필요한 추계와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이 모델로는 소득과 임금, 재정의 상황 등을 국가 전체의 평균치로밖에 볼 수 없다. 연령, 성별, 소득 계층에 따라 정책이 가져오는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각부는 향후 민간기업과 협력해 새로운 모델에 필요한 소득 상황과 인구 데이터 등에 대한 수집·분석을 실시한다고 한다.
 
일자리 문제는 세계 각국이 경험하고 있는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일본경제신문은 1월 1일부터 ‘자본주의 새로운 위기 헤쳐나갈 성장의 미래도’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 시리즈를 연재했다. ‘성장의 미래도’ 첫 기사는 일자리였다. 덴마크 모델인 ‘플렉시큐리티’를 소개했다.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는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조합한 말로 유연성, 노동시장과 탄탄한 실업급여, 실천적인 공적 직업훈련 등 3가지를 결합한 고용정책이다. 해고 규제가 영미 수준처럼 느슨한 덴마크는 1990년대 이 플렉시큐리티 정책으로 실업 억제에 성공했다. 유럽연합(EU)은 2007년 플렉시큐리티를 지역 내 고용전략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덴마크의 실업급여 공적 지출액은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직업훈련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도록 하는 등 취업 지원과 일체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단기의 직업 훈련을 확충했다. 근로자들이 커리어 전환에 도전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다. 덴마크의 직업훈련은 노·사·정 3자가 긴밀히 연계되는 것도 특징이다. 교과과정 내용은 경영자단체와 산업별·직업별 노조가 협의해 결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직업훈련학교에서 실시된다. 기업도 강사를 파견한다. 커리큘럼은 매년 갱신되어 디지털화 등 기술 혁신이나 노동시장 요구의 변화에 대응한다. 덴마크 모델은 한국에도 유융한 방책이 될 수 있다.
 
기업과 산업도 신진대사를 촉진해 성장력을 높이고 한국 자본주의의 활력을 되찾을 때다. 사람과 돈이 성장 산업으로 향하는 역동성을 찾아야 한다. 노동력을 잘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을 올리는 선순환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정책과 경영 양면의 변혁이 중요하다. 예컨대 OECD는 각국이 새로운 기업의 진출과 생산성이 낮은 기업의 퇴출을 종용하기 위해 도산 시 사업주 개인의 자산을 보호하도록 권장한다. 법인을 위한 투·융자는 개인 보증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면 퇴직 후 몇 년이 지나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창업 후의 성장도 과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설립 후 10년이 지나도 사원 수가 일정 규모를 밑도는 중소기업의 비율은 일본과 한국이 두드러지게 높다. 비효율 경영을 지속해도 지켜지는 중소기업 정책을 재검토해 투자 등을 우대하는 성장 촉진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적인 히트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국제 감각이 필수다. 이노베이션은 인재의 다양성이 높은 조직에서 잘 일어난다는 것은 경영학에서도 드러난다. 구글은 초창기부터 근무시간의 20%를 본업 이외에 사용하는 것을 의무화해 신사업 창출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조직의 벽을 넘는 발상의 교류를 이노베이션으로 이끈다. 한국도 겸업과 부업에 유연한 시스템을 정돈해 혁신을 재촉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5~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가전전시회 CES 2022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기술시대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자업체인 일본 소니그룹은 전기자동차(EV)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기술과 사업의 영역 파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22년에는 기업의 기술 개발 동향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스마트폰에 이은 기술의 최대 메가트렌드가 모빌리티다. 기존 플랫폼들이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다. 미국 애플은 앞으로 2~3년 안에 완전 자율주행차를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화웨이도 마찬가지로 2024~2025년에 걸쳐 패권 다툼이 시작된다.

탈탄소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은 각국의 에너지 정책과 표리일체다. 하나의 기업, 하나의 산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국내에서 자동차를 제조해서는 카본 뉴트럴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제조 거점의 해외 이전이 진행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종래의 산업·사회 변혁의 테두리를 넘어 지구·인간 변혁에 임하고 있다. 달 탐사는 로켓 발사 비용이 싸지고 있어 10년 안에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우주 분야에서 미국·중국·유럽의 각축이 한창이다.

스마트폰 다음으로 증강현실(AR) 단말기도 기대된다. 올해는 AR의 실용화 원년이 될지 모른다. 유저 인터페이스에 자신있는 애플이 단말을 발매하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사진·동영상 공유 앱의 스냅챗으로 AR 기능의 이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기회는 무르익어 가고 있다.

초유행기에 접어든 가상공간 메타버스는 그냥 유행으로 끝날 얘기가 아니다. 가상현실(VR) 단말기가 주목받고 있지만 현실 세계의 디지털화가 본질이고 인터넷이 차세대로 전환되는 혁명적인 이야기다. 미국 메타(페이스북)가 여기에 브레이크스루를 요구한 것은 획기적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초광속의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기술 변혁의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기술 변혁의 대열에서 낙오해서는 안 된다. 기술 변혁의 가속화는 차기 정부가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개별 기술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고 임팩트를 파악하면서 투자해야 한다. 독일 폭스바겐(VW)은 2025년까지 차세대 기술에 약 90조원을 투자한다. 제품뿐 아니라 공장까지 풀 디지털로 만드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투자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자원 배분 기능, 소득 재분배 기능, 경제 안정화 기능 등 3개로 대별할 수 있다. 차기 대통령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거시적·미시적 변화를 세밀하게 파악해 정부의 역할에 맞춘 충실한 전략을 수립해 이를 기동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국가 미래 건설을 위한 비전과 방책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의 재도약에 전념하면서 특히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국가 지도자의 자질을 보여주어야 한다. 21세기 국가 건설을 위한 신아지구방론(新我之舊邦論)은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다산이 절박한 심정으로 1817년 남긴 경세유표(經世遺表)가 우리 가슴에 절절이 다가오는 오늘이다.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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