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3~40년을 주기로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 변천해 왔다.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과 광복, 정부 수립이 이뤄진 1910~1950년대는 '독립국' 대한민국 1.0이다. 6‧25 한국전쟁 폐허에서 일어나 급격한 산업화 성장에 성공한 1950~1980년대는 '산업화' 대한민국 2.0으로 부를 수 있다. 소위 '87체제'로 대표되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민주화' 대한민국 3.0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에 그친 '87체제' 한계
'87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구축된 체제를 뜻한다. 다만 군부독재(권위주의 체제) 종식에 집중해 정치·사회·경제의 본질적 개혁에는 다소 소홀했다. 그 결과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화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형식적 민주주의' 한계 역시 극명하다. 87체제를 통해 우리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대통령 직선제'와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 체제', '승자독식 권력구조'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다.
여야 모두 집권을 지상목표로 두고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무책임한 정쟁을 이어왔다. 역대 그 어떤 정부도 정권교체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권교체가 되거나 설령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더라도 전임 정부는 후임 정부의 타도와 심판의 대상이 됐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퇴임 후 '불행한 대통령'이 된 것은 87체제의 근본적 한계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안 돼 개헌안을 발의한 것도 87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수 야당의 전면 불참으로 의결정족수가 미달해 '문재인 개헌안'은 20대 국회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을 바꾼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30년이 지난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우리와 미래 세대가 살아갈 대한민국은 국민의 자유와 안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나라,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나라, 더 정의롭고 공정한, 그리고 중앙과 지방이 함께 잘 사는 나라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정치권 정치혁신 움직임...본질적 '정치개혁'인지는 의문
다시 대한민국 4.0이다. '87체제' 한계를 극복하고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달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개혁 4.0이 선행돼야 한다. 다만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 나오는 방안이 본질적 의미의 '정치개혁'인지는 의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6일 정치혁신 구상을 발표하고 통합정부 구성, 30·40대 장관 기용, 네거티브 공세 중단 등을 약속했다. 이 후보는 "대전환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민주주의, 국민이 승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치교체' 하겠다"며 "불공정, 불평등, 기득권 타파, 세대교체로 국민의 삶을 지키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는 27일 △동일 지역구 연속 4선 금지 △면책특권·불체포특권 제한 △위성정당 창당 방지 △국회의원 소환 △청년 후보자 기탁금 △청년 추천보조금 신설 △국회의원·지자체장 축의금부의금 수수 금지 등 7개 법안을 발의했다. 내부에서는 '86세대 용퇴론'도 거론된다.
국민의힘은 '청와대 사실상 해체론'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27일 정치분야 공약을 발표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구축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청와대 축소 △586 운동권 세력 퇴장 △국회의원 동일 권역 3선 금지 △재보궐 귀책 정당 무공천·선거비용 부담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등 정치개혁 방안 등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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